모든 참사는 잊혀서는 안 된다, 기록의 이유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의 '재난을 묻다'를 읽고

등록 2018.11.13 10:02수정 2018.11.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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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큰 화재가 아니었다고 생존자들은 입을 모으지만 1983년 사용 승인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었고 지난 5월 소방점검을 받았음에도 화재경보기가 모두 작동하지 않아 그 피해가 컸다. 감식 결과가 밝혀져야겠지만 화재의 원인이 문제가 아니라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국가가 관리·감독했어야 했다.

4년 전 우리에게 충격을 가져다 준 '세월호'는 그저 침수한 배의 이름만이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참사를 대변하는 말이고,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선 이제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가족들의 아픔이 아물지 않는 한 모든 참사는 잊혀서는 안 된다.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담은 <금요일에는 돌아오렴>, 세월호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를 다룬 <다시 봄이 올거예요>를 쓴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은 지난해 <재난을 묻다>를 발간했다.

세월호 참사도 큰 아픔이지만 참사가 자꾸 반복되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잊히거나 묻어둔 재난의 원인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또다른 참사를 막는 방법이라 생각해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을 구성하였단다. 그리고 약 2년 동안 과거의 재난을 추적하여 기록했다.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이 책의 부제이다. 연대기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되는 우리나라 재난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동일한 원인과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규명되는 과정을 보며,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그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책을 통해 살펴본 재난 역시 사건이 발생한 그 시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가져온 '세월호', 그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반복되는 참사의 원인을 명백히 규명하고 올바른 사회를 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의 절규이다. 지금까지 참사가 반복되었듯 기억하고, 기록하고, 연대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책표지 ⓒ 서해문집

 


<재난을 묻다>는 태안해병대캠프 참사(2013년), 장성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2014년)를 비롯하여 일곱 개의 재난을 추적하여 기록했다.
 
"(참사가 일어나면)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인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니까 정말 의식이 많이 깨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가 인허가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해주지 말아야 할 것을 해줬기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죠. 부패권력, 지역형 토착비리, 부패의 사슬, 규제완화…. 이런 것이 바뀌지 않고 진상규명도 되지 않으니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p.90
 
씨랜드 화재 유족회와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고석씨의 이야기다. 씨랜드의 소유주는 화성군수의 도움으로 무허가 건물의 인허가를 받았으며, 경비절감을 위해 컨테이너 박스를 쌓은 뒤 지붕을 덮고 외벽을 나무로 마감하여 7억3000만 원의 건축비를 7000만 원에 해결한다. 이런 상황은 씨랜드 참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참사의 경우 기존에 산사태가 났던 곳에, 실제 거주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민박으로 허가를 냈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경우 지하철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불연성·난연성 소재가 아니라 불에 취약하고 화재 시 유독물질을 뿜어내는 내외장재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대림산업 폭발은 대규모 정기 보수 첫날 일어났다. 모든 설비를 멈추어야 하기에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공장을 재가동해야 한다. 급한 마음에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하청업체에게 작업 허가를 내주었고 이는 처참한 참사로 이어졌다.

이득을 위해 법을 지키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일차적 원인일 뿐,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의 본질이 숨어있다. 대부분 분야의 안전관리규정이 허술하고, 위급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다.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야 할 곳에 허가를 내주어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부실한 구조나 자재로 피해를 키우며, 위급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사건 발생 후 살펴보면 전조가 있었음에도 관리와 감독이 소홀해 일어난 사고가 많다.

사건의 발생만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사고의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다.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원만한 조기수습' 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원인규명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덮으려 한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의 가능성은 배제한 채 불과 삼일 만에 모기향불이 화재 원인이라고 발표하고 모기향을 붙인 유치원 원장에게 가장 큰 책임을 지웠던 씨랜드 참사, 1인 승무원제로 인해 안전 인력이 부족하고 방재시스템이 취약했음에도 그저 방화범과 기관사를 살인마로 낙인찍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가 그러하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을 주장하는 유가족에게는 보상을 하겠다, 얼마면 되겠냐, 보상금 더 내놓으라고 이러느냐, 가족을 팔아 먹고살려고 시위하냐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어 버린다. 제 발 저린 도둑들이 조속히 사건을 무마하려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정부가 약속했던 일들은 지켜지지 않고 시간에 묻혀 참사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교육과정 중에 일어난 태안해병대캠프 참사는 너무도 참담하다. 파도가 거세고 위험해 수영이 금지된 구역에서, 형식적인 관리감독 아래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여 안전과 전문성은 밀린 상황에서, 바다를 향해 들어가라는 교관의 말대로 한 걸음씩 나아간 아이들. 순간 몰려온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아이들을 어떤 교관도 들어가 찾거나 구하지 않았다. 그런 업체에 아이들을 일임하고 뒷전으로 물러앉았던 학교 측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참사를 둘러싸고 누구는 정의와 단죄를 말하고 누구는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기억과 기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 기억과 기록이 가능할 때만, 그래서 진실이 드러날 때만 합당한 치유와 보상, 유사사건의 재발방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 p.11
 
시간은 흐르고 많은 이들이 눈물 흘렸던 참사일지라도 잊게 마련이다. 눈물은 잠시일 뿐, 그들의 아픔이라 여기며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참사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은 말한다. 무엇보다 기억과 기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여기서 기록은 정부나 기관의 변명이 아닌 진실을 말한다. 진실이 밝혀지고, 원인이 규명되면 위로와 회복은 이후에 해결 할 문제이다.

어느 유가족의 말대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단체가 생겨나길 기대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참사를 꾸준히 알리고 정부와 지자체와의 관계에서 대처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을 연구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유가족의 동료시민이 되어 관심과 지지를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난을 묻다 -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서해문집, 2017


#재난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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