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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 실화예요? 정말 대단하네요" 신촌에서 벌어진 일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14]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신촌, 그 골목길>

18.11.10 20:14최종업데이트18.11.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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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갈등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의 일로 너무 바쁘다며 매일 허덕거리던 아내가 또 다른 공연 제의가 왔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바쁘다고 고사했을 텐데 그 제안이 너무도 매력적인 탓에 아내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서대문구와 신촌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최하고 사회적기업 명랑캠페인이 기획/제작하는 신촌 100년에 관한 뮤지컬. 최근 신촌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인해 공동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지역의 상인 등이 주축이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유, 공생, 대학문화촌 만들기'를 테마로 지역재생사업을 진행 중인데 그 일환으로 뮤지컬 제작을 제안 받았다는 것이다. 
 

▲ 2018 신촌 골목문화 축제 뮤지컬 <신촌, 그 골목> ⓒ 명랑캠페인

 
아내는 망설였다. 물리적인 시간은 없었으나 누구보다 신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동주와 기형도를 공부하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고, 첫사랑과 신촌에서 연애를 했으며, 또한 신촌에서 학창생활을 한 남편을 만나 그곳에서 결혼식까지 올렸으니 작가로서, 연출로서 욕심이 날만도 했다.
 
어쨌든 결정은 아내가 하는 거였지만 난 옆에서 조금씩 그녀를 부추겼다. 20대 초반, 신촌에서 술만 먹으면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한 뒤 불렀던 '청계천 8가'를 흥얼거렸고, 술집에서 나오면 죽어라 외쳤던 학교 응원구호를 보여주었다. 90년대 신촌을 이야기하려면 이 정도의 풍경은 꼭 들어가야 한다며 아내에게 조언 아닌 조언도 해주었다. 
 

꼰대가 되어버린 386 세대 ⓒ 명랑캠페인

 
결국 며칠 뒤 아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내는 곧바로 조합원들과 선후배에게 전화를 돌려 팀을 꾸렸고, 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전체 구성과 연출을 맡고 아이야의 조합원인 이정운 작가가 대본을, 김신아 안무가가 전체 안무를 맡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신촌'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촌, 그 골목길>은 일제 강점기의 윤동주부터 시작해 문화의 중심이 되었던 70년대, 학생운동으로 뜨거웠던 8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이대의 촛불집회까지의 신촌을 그려냈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역사였으며,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기록이었다. 
 
소녀시대의 '다만세'만 아는 사람 vs. '다만세'만 모르는 사람
 
10월 25, 26, 31일로 공연 일정이 잡힌 이후 아내와 아이야는 더욱 바빠졌다. 연습도 연습이었지만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소화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어느 날 아내는 집에 들어오더니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았다.
 
"연습을 하다 보니 너무 웃겨."
"왜?"
"배우가 두 그룹으로 나눠져."
"어떻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만 모르는 배우들과, '다시 만난 세계'만 아는 배우들."

 
공연에는 '서시', '그것만이 내 세상', '왜 불러', '고래사냥', '그날이 오면', '임을 위한 행진곡', '청계천 8가', '그대에게', '신인류의 사랑', '다시 만난 세계' 등의 노래가 나오는데 젊은 배우들은 그 중 소녀시대의 곡만 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웃고 말았다. 당장 나만 해도 소녀시대의 노래만 모르지 않는가. 저 노래들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소위 '꼰대'겠지. 아내의 푸념은 또 이어졌다. 
 

이글이글 타는 눈동자로 시위를 연기하는 배우들 ⓒ 이희동

  
"시위 장면도 문제야."
"그건 또 왜?"
"실제로 시위를 해 본 배우가 몇 없어. 구호를 외치고 팔도 절도 있게 흔들어야 되는데 각이 잘 안 나오네."
"2년 전 촛불집회에도 안 나왔었대? 100만 명 넘게 나왔는데?"
"촛불집회는 거의 다 나왔지. 그런데 그땐 촛불을 들었지 팔을 흔들진 않았잖아."

 
순간 뜨끔했다. 그래, 1987년과 2016년의 노래가 다르듯 시위문화도 다를 수밖에.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모두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꼰대'의 특징이지. 이제 나는 내 안의 '꼰대'와 계속 싸우겠거니.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열심히 연습을 했고, 나는 퇴근 후 짬짬이 그들의 연습을 지켜보았다. 아내의 말마따나 그 시대를 몸으로 겪지 않은 이들의 어색한 부분이 보였지만 그래도 감동이었다. 그것은 바로 나, 우리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가장 젊은 20대 초반의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료 화면에 나오는 학생 운동 이야기가 다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하나도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1시간이 이렇게 짧아?"
 
10월 25일 공연 첫 날.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신촌 '이화쉼터' 야외무대에서 공연 준비를 했고, 나는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공연장을 찾았다.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신촌도시재생이라는 취지에 걸맞은 곳이었다.
 

70년대 젊음의 거리, 신촌 ⓒ 명랑캠페인

 
드디어 공연 시작. 작품은 일제 강점기의 윤동주부터 시작해서 2016년 정유라 사태를 불러일으킨 이대 집회까지 신촌의 근 100년의 역사를 훑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열연을 펼쳤고, 관객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연습 때 봤을 때는 분명 조금 어색한 시위 장면이었는데 배우들은 그것을 현장에서만 펼칠 수 있는 집중력과 열정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호헌철폐'를 외치는 배우들의 그 이글이글 타는 눈망울이란.
 
배우들의 열연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사진과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영상 자료였다. 영상은 우리의 100년의 역사를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격동의 세월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문익환 목사의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되는,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연설은 여전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심금을 우리는 '청계천 8가' ⓒ 명랑캠페인

 
개인적으로 공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역시나 주인공이 기타를 치며 '청계천 8가'를 부를 때였다.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386세대 주인공이 오랜만에 신촌을 찾아와 막걸리 한 잔을 하며 단골집 주인과 함께 부르는 '청계천 8가'. 그것은 결국 20년 전에 내가 그렸던 나의 모습이었고, 아직도 내가 찾아가는 나의 모습이었다.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 어느새 텅 빈 거리여
칠흙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 꽃다지 '청계천 8가'
 

<신촌, 그 골목>의 한 장면 ⓒ 명랑캠페인

 
공연은 신해철의 '그대에게'로 마무리 되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무대 뒷정리를 하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여덟살인 둘째가 엄마에게 가더니 한 마디를 한다.
 
"엄마, 이 공연 1시간이지?"
"응? 응."
"헐. 1시간이 이렇게 짧아? 20분 만에 공연이 끝난 거 같아."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그런데 이게 다 진짜 있었던 일이야?"
"그럼. 실제 다 있었던 일이야. 마지막 영상에서 우리가 나갔던 촛불집회도 나왔잖아."

 
아내는 아이의 칭찬 아닌 칭찬에 힘을 냈고, 나는 그렇게 한 뼘 자란 아이의 모습에 뿌듯해했다. 나의 자식이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주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진정한 세대차이의 극복은 교육이 아니라 이런 일상을 통해서 해나가야 하는 것이리라.
 
감동적인 공연을 만들어준 아내와 문화예술협동조합 아이야와 모든 스태프, 배우,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며, 아이들이 엄마의 작품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갖기를 기대해 본다. 
 

덕분에 감동이었습니다 ⓒ 명랑캠페인

  
신촌, 그 골목 아이야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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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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