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받기로 했죠?"... '상생'에 가려진 은밀한 거래

[대형마트의 이상한 의무휴업 ①] 평일휴업 대가로 전통시장 상인 자녀 채용·지원금 합의

등록 2018.11.23 19:17수정 2018.11.2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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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이마트 하남점이 현수막을 걸고 정기휴점으로 문을 닫았다. 이마트 하남점은 지역 시장의 상인회장들과 협약을 맺고 둘째, 넷째 수요일에 정기 휴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대형마트 의무 휴일제를 수요일로 풀어줘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안양 남부시장상인회장)
"상생협력방안으로 상인자녀 우선채용, 대형마트 휴무시 직원들에 대해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방안 등을 실천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본다." (홈플러스 안양점장)


그들만의 잔치였다. 마트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는 경기 지역 상생협의회는 대형마트와 시장 상인회 위주였다. 협의회에 참여하지 못한 마트 노동자들은 군말 없이 이들이 정해준 대로 평일에 쉬어야만 했다.

<오마이뉴스>는 경기 하남시와 구리시 등 경기 지역 11개 기초지자체들의 상생협의회 회의록을 전수 조사했다. 11곳의 상생협의회는 대부분 전통시장 상인회와 대형마트 관계자들이 주도했다. 각 지자체의 시장 상인회는 '평일 휴업'에 동의해주는 대신 상인자녀 우선채용, 기금 지원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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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7월 30일 경기 안양시청 3층 전자회의실에서 열린 유통업 상생발전협의회의 회의록을 보자. 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한 안양 남부시장상인회장이 "대형마트의 평일 휴업"을 먼저 제안한다. 그러자 홈플러스 관계자는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화답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어 "상인 자녀 우선 채용"이라는 당근까지 제시한다. 대형마트가 상인들 자녀의 앞날까지 책임진다는 거절하기 힘든 약속이다. 협의회에 참석한 한 안양시의원은 "이야기가 다 된 것 같다"며 분위기를 띄운다.

이날 안양시 유통업 상생발전협의회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바꾸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경기 하남 지역 전통시장 상인연합회와 이마트는 아예 협약서에 '전통시장 자녀들의 우선 채용'을 명시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하남시 전통시장과 이마트 상생을 위한 협약서'를 보면, '전통시장 상인 자녀 우선 채용'은 제1조 1항에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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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덕포전통시장에 위치한 덕포시장상인회 사무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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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덕풍전통시장에 물건을 사기 위한 고객들이 붐비고 있다. ⓒ 이희훈

 
아울러 이마트는 상인 자녀를 위한 재능 기부도 해야 한다. 이마트가 전통시장 발전 기금을 지원하고, 전통시장 행사를 할 때 경품도 지원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그 대신 '전통시장상인연합회는 의무 휴일을 매월 2회 수요일로 적용하는 데 합의한다'는 조항이 협약서에 담겼다.

이 협약서는 지난 2014년 2월 하남시 덕풍시장 상인회장과 신장시장 상인회장, 이마트 하남점장이 직접 서명했다. 하남시는 같은 해 5월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수요일'로 공식 지정한다.


경기 구리시의 경우, 의무휴업 지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통시장 상인들에 대한 지원금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상인들은 "액수가 적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래 내용은 2015년 제1회 경기 구리시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회의록 일부 내용이다.

박아무개 위원 : "전통시장 박아무개 회장님께서는 당시 많이 흥분하신 상태로 말씀하셨었는데, 아울렛에서 10억을 지원을 받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시장과 아울렛은 협의 잘하셨는지요?"

박아무개 회장 : "시설현대화사업은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요구한 사항에는 1/3수준으로 모자라지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사항이었고…"


특혜와 맞바꾼 의무휴업... 건강권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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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이마트 하남점이 현수막을 걸고 정기휴점으로 문을 닫았다. 이마트 하남점은 지역 시장의 상인회장들과 협약을 맺고 둘째, 넷째 수요일에 정기 휴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오마이뉴스>는 해당지역 상인회와 대형마트 등을 추가 취재 결과, 실제 자녀 우선채용과 기금 지원이 실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남시의 한 전통시장상인회장은 "(상인회에 가입한)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지원이 이뤄졌다"면서 "(대형마트) 자녀 우선 채용은 주차요원 등 상대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만 우선 채용이 이뤄지고 있어 사실상 혜택이라고 볼 수 없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하남시 상인회와 협약을 체결한 이마트 관계자는 "자녀 우선 채용은 그쪽(전통시장)에서 요청이 없어서 채용된 건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또한 하남시쪽 상인회에 지원한 금액이 20억 수준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마트 관계자는 "20억보다 적은, 낮은 수준의 금액이 지원됐다"고 밝혔다.

안양 지역의 한 시장상인회장은 상생협약 관련 내용을 묻자 "지금 급한 일이 있어 통화가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고, 경기 구리 지역 상인회 관계자는 "상인회장이 예전에 바뀌었다"고만 밝혔다.

경기 안양시에서 '상인 자녀 우선 채용'을 약속한 홈플러스 측 관계자는 "협약 사항에 따라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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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이마트 하남점이 현수막을 걸고 정기휴점으로 문을 닫았다. 이마트 하남점은 지역 시장의 상인회장들과 협약을 맺고 둘째, 넷째 수요일에 정기 휴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김주홍 이마트민주노조 위원장은 "대형마트가 평일 휴업을 조건으로 자녀 채용 등 지역 상인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베푼 것"이라며 "경기도 모 지자체의 경우 시장 점포 1곳당 500만원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마트 휴업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마트 노동자들의 의견은 뒷전이었다. 평일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지정할 때 고려될 것 중 하나가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다.

유통업상생발전법을 보면 기초지자체는 '근로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의무휴업을 규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경기지역 11개 지자체의 상생 협의회 회의록 가운데, 근로자 건강권이 거론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10월 열린 경기 오산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서 홍아무개 위원은 "일요일에 휴업한다면 근무자 휴식권 보장도 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다른 위원들은 지역 발전과 시민 혼란 최소화 등을 이유로 평일 휴업이 낫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협의회에서도 '평일 휴업' 안건은 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찬성 8, 반대 1)를 받아 통과된다. 평일 휴업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 휴식권은 철저하게 '소수 의견'이었다.

하남은 조만간 재논의... 남양주는 검토 중

이마트민주노조는 지난 6월부터 경기 남양주시와 하남시에 '마트 노동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평일 휴업을 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경기 하남시는 마트 휴업과 관련해 시민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조만간 마트 평일 휴업 문제를 재논의할 계획이다.

반면 남양주시는 5개월이 넘도록 '검토 중'인 상태다. 김주홍 이마트민주노조 위원장은 "남양주시청 관계자도 만나고 했는데, 지난 7월 공문을 보낸 뒤에는 특별한 연락이 없다"며 "이렇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을 보면 결국 안하겠다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현재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으로 언제 결론을 낼지도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마트휴업 #이마트 #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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