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을 오고 간 그는 간첩일까 아닐까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된 대북사업가 김호... "분단의 비극"인지 "실정법 위반"인지 재판 중

등록 2018.11.15 15:03수정 2018.11.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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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씨가 지난 9월 1일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호소문. ⓒ '김호아내' 페이스북

 
북한사 전공 A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재판 중인 김호(46)씨의 사연에 "1950년대 대북사업가로 활동하다 간첩으로 몰렸던 '양명산' 사건이 겹쳐 보인다"고 했다. 북한정치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지난 30년간 연구에 몰두해온 A교수는 이것이 "분단의 비극"이라고 부연했다.

양명산은 1959년 유력 대권 후보였던 조봉암에게 댄 선거자금이 북한 쪽 돈이라는 누명을 쓰고 조봉암과 함께 사형 당했다. 그는 재판에서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에선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갑자기 사형이 언도됐다. 판결문은 양명산을 남과 북의 이중간첩으로 규정했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재심을 열고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명산은 함께 재심을 받진 못했지만, 억울한 죽음 이후 52년만에 간접적으로나마 명예를 회복했다.

양명산, 그리고 김호
           
지난 8월 초 체포·구속수감된 김호(46)씨도 양명산처럼 대북사업가다. 김씨는 지난 2002년부터 대북경협사업을 했으며, 2008년부터 북한의 김일성종합대 산하 정보기술연구소와 공동으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김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씨는 박두호 김일성종합대 정보기술연구소장과 사업 초기 2008년 베이징에서 한 차례 만났다. 당시 통일부에 정식으로 북한접촉 신청을 내고 허가받은 것이었다. 박 소장은 지난 2013년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의 방북 당시 그를 수행해 북한의 IT 기술을 소개한 인물로, 얼굴 인식기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후 양아무개라는 중국 국적 조선족과 위챗으로 업무연락을 주고받았다. 양씨는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 초대 의장을 지낸 양영동씨의 아들로, 김씨에게 자신이 조교(중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북한국적자) 출신이나 어릴 때 중국에 귀화했다고 소개했다. 재중총련은 일본 조총련에 비해 세력이 크지 않고, 북한과도 연계가 깊지 않다고 알려졌다.

김씨는 당시 양씨와 주고받은 대화 전체를 캡쳐해 국가정보원 소속 최 이사와 권 이사, 이 실장 등에게 수십 차례 메일로 전송했다. 사실상 '정보원'으로 활동한 셈이다. 장경욱 변호사는 "(김씨가) 국정원에서 뒤를 봐준다는 믿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씨는 국정원 사람들과 2008~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이들은 김씨에게 박두호 소장의 탈북 공작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씨는 2016년 얼굴인식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 국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납품했다. 약 8년간 북한 개발자 10명가량에게 임금 명목으로 개발비 10억 원을 쏟아부은 제품이었다. 검찰은 여기에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이 프로그램을 국내 기관에 납품하며 북한 기술이라고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다.

그가 북한과 공동으로 '배달앱'을 개발하면서 국내 고객 5858명의 정보를 북한 개발자에게 제공하고, 2013년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해안복합감시체계 구축사업 입찰과정에 참여한 것도 모두 북한에 정보를 넘긴 범죄행위로 의심받고 있다. 현재 김씨는 이 혐의들로 지난 9월 5일 구속기소돼 10월 초부터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씨는 결백을 호소한다. 그는 2013년 경찰의 이메일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지만 별 다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5년이나 지난 뒤에 갑작스레 국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점을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김씨를 체포·구속하는 과정에서 '증거 조작'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경찰은 김씨가 체포 당시 공범들에게 증거인멸과 도주를 지시하기 위해 은어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했다. 하지만 이 문자는 "에어컨 수리를 위해 집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영문 문자로, 김씨가 체포되기 18일 전인 7월 22일 경찰 공용 휴대전화로 수신된 것으로 밝혀졌다(관련 기사 : 문자 보낸 적도 없는데... '허위증거'로 구속된 대북사업가).

검경은 지난 8월 초 구속과정에서 허위 증거가 포함됐음을 변호인단을 불러 시인했으나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국보법상 무고·날조,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청 보안수사3대 2팀 수사관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 9월 고소인 조사 및 김씨와 담당 경찰의 대질신문이 이뤄졌다.

김씨는 혐의 사실도 적극 반박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고객정보를 넘긴 것은 배달앱 테스트였을 뿐 '통일전선사업 편의제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 역시 입찰제안서 일부 내용을 북쪽에 전달, 기술 개발이 가능한지 자문을 구한 것뿐이라고 했다. 김씨 아내는 이와 관련해 10월 23일 페이스북에 "방위사업청이 <중앙일보>에 '(김씨 업체는) 낙찰된 곳이 아니라 군사 기밀이 새나가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국정원에 협조하면 사업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여겨 북한 정보를 넘겼는데, 보호는커녕 구속됐다고 억울해 한다. 김씨와 접촉했던 국정원 최 이사와 권 이사는 수사에 협조하며 김씨가 자신들과의 관계를 발설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진다고 서명한 서약서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법정에서 김씨의 행적을 증언해줄 수 있는 조선족 양씨는 현재 연락두절 상태다. 검찰은 양씨가 김씨에게 '지령'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남과 북을 오간 그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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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법무법인 상록 허정택(왼쪽부터),장경욱, 신윤경 변호사가 지난 8월 16일 오후 서울 중앙지검에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운동권 출신 대북사업가 김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엉뚱한 증거를 제출, 구속했다며 고소장 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8.16 ⓒ 연합뉴스

 
북한에 정통한 A교수는 김씨의 혐의 중 악성코드 부분에 주목하며 "남북이 과거 모두 그런 일(사이버 테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리비아가 무너질 때 미 정보기관이 컴퓨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악성코드를 동영상에 심어 무차별로 뿌렸다"며 "이런 종류의 정보전은 남북한뿐 아니라 어느 국가든 다 한다, 그런 일들은 항상 개연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A교수는 김씨가 남북경협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북 모두에 이용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8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국가 안전을 도외시하고 실정법으로서의 국보법을 위반한 사건"이라며 "국내 정세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다음 재판은 11월 16일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서 열린다.
#국가보안법 #국보법 #대북사업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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