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없는 개혁은 실패한다

[서평] 사람을 위한 경제 '협동조합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①

등록 2018.11.14 15:08수정 2018.11.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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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표지 . ⓒ 착한책가게

 
캐나나 브리티시컬럼비아 협동조합연합회 상임이사이자 세계 협동경제 연구자인 존 레스타키스는 책 <협동조합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협동조합운동을 '경제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위기의 징후를 드러냈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온 '반 세계화' 투쟁은 "정치적 민주주의 성장으로 시작된 인류의 혁명이 경제영역의 민주주의 자리를 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15쪽)이다.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은 기업의 경제 권력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강화되면서 지속적으로 침해되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경제 영역의 권위주의적 권력은 결국 정치 영역의 민주적 권력을 압도한다. 따라서 경제 민주주의의 부재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호에 끝없는 위협이 된다." (41쪽)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치에 바람직한 것이라면, 경제에도 똑같이 좋은 것 아닐까?"(41쪽)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실현하려면 정치제도가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가장 깊숙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를 민주화하려면 경제제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장은 소수의 경제권력에 독점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으며, 기업의 구조 또한 독재권력의 모델로 작동되고 있다. 경제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단순한 경제조직이 아니다.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는 무기다. 협동조합은 일개 기업 이상의 역할을 하며 경제 패러다임을 민주적으로 바꿔나가는 수단과 동력을 제공한다. 이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협동경제를 발전시켜온 나라들의 역사가 증명한다.

세계의 선진 협동경제가 보여주는 것

협동조합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 설립된 해가 1844년, 지금으로부터 174년 전이다. 로치데일의 구두수선공들은 초기자본 28파운드, 28명의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호혜'를 경제원리로 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로부터 10년 뒤, 영국 전역에서는 협동조합 수가 1천여개를 육박할 정도로 협동조합운동이 성장했다. 

세계 협동조합을 선도하는 스페인의 '몬드라곤'도 시작은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와 다섯 제자가 만든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인 '울고'였다. 오늘날 '몬드라곤'은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 약 260개 회사가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는 거대한 기업 연합체다.  2010년 한 해 매출액은 22조 원, 자산 규모는 53조 원, 8만4천여 명의 노동자 중 출자금을 낸 조합원은 3만 5천여 명이다.

로치데일로부터 다시 150여 년이 흐른 지금, 국제협동조합운동(ICA)은 현재 협동조합에 가입된 전 세계 조합원 수를 10억명으로 추산한다. 이는 다국적 기업에 고용된 인원보다도 많은 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협동조합들은 세계 경제의 위기와 혼란을 정리하고 약탈적이고 비인간적인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설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탈리아의 협동경제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에밀리아로마냐는 협동조합과 자본주의 기업이 공존하고 협동하면서 대기업 중시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소기업 중심의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을 보여준다. 이 협동조합들은 상호지원 네트워크에 활발하고 사업의 연계, 통합, 소규모 협동조합의 합병 등으로 복합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은 협동조합이 작은 비주류 경제조직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에밀리아로마냐는 8천개의 협동조합이 GDP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100개가 넘는 산업지구가 존재하고 협동조합 부문은 고용, 영업규모, 주요 산업의 시장점유율 등에서 자본주의 기업을 능가한다.

저자는 '에밀리아로마냐' 협동조합 모델이 협동조합운동을 넘어 자본주의 전반의 틀과 작동방식을 변화시킨 거의 유일한 사례로 본다. 에밀리아로마냐는 협동조합 시스템과 비협동조합 시스템이 각각의 강점을 서로에게 전하고 영향을 미침으로써 협동의 방식으로 산업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성공요인을 "이 지역 고유의 사회자본인 협동의 문화 안에서도 생겨날 수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 또는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요인을 기술적으로 잘 관리하는 능력과 정치적인 전망이 어우러진 결과"라고(118쪽) 분석한다.

에밀리아로마냐가 강력하고 자주적인 협동경제를 이뤄낼 수 있었던 힘의 밑바탕에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산업 네트워크 형성을 지원했던 유능한 주 정부가 있었다. 에밀리아로마냐는 지역의 자생적 발전경로인 협동경제 전략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구현하는 데 지방자치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염두해 둬야 할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탈리아 협동경제에 비하면 한국은 한참을 뒤쳐져 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 시행된 한국은 이제 막 사회적 경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후발주자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부문을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적, 사회적 시도들이 늘고는 있지만 '성적표'는 그닥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부문이 기존의 재벌 위주의 경제 질서를 좀 더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만큼의 힘을 가진 경제주체로 성장하려면 아직 멀었다.

경제를 움직이는 구조에 민주주의가 부재한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 없이 정치개혁에만 초점을 두는 전략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반드시 실패한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경제 조직들의 민주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재벌개혁과 같은 과제를 완강히 밀고 나가 시장의 독점과 사유화에 제동을 걸고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육성 강화함으로써 시장의 민주적 공간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저자는 경제 민주주의를 혁명의 '숨은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역사는 혁명의 숨은 얼굴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풀뿌리운동이면서 경제 민주주의의 가장 오래되고 지속가능한 형태는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체제를 조직하는 표준으로서 우위를 점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협동조합이 살아남는 것이다. 암흑시대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한 가지 대안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협동조합은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불후의 증거다."(410쪽)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 사람을 위한 경제, 그 이상과 실천을 만나다

존 레스타키스 지음, 김진환.이세현.전광철 옮김,
착한책가게, 2017


#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경제 #협동경제 #에밀리아로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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