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기지가 엄청난 기만? "부끄러운줄 알라"

3월 위성사진 근거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 쏟아졌지만... 근거 빈약

등록 2018.11.13 14:02수정 2018.11.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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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타임즈가 12일 낸 “엄청난 기만(great deception)을 시사하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 기사. ⓒ The New York Times


"엄청난 기만(great deception)을 시사하는 북한의 미사일 기지" <뉴욕타임스>
"새로 드러난 북한의 미사일 기지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워싱턴포스트>


북한 황해북도 삭간몰 지역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미국 민간연구소 CSIS 보고서를 인용보도한 미국 유력 일간지 기사의 제목이다. 출처는 12일자 '신고되지 않은 북한 :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은 이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하는 와중에 신고도 안 한 20여 개의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고 있는데,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보고서는 위성사진과 탈북자들의 증언, 여러 나라 정부를 통해 북한 내에 '신고되지 않은 미사일 기지 20개 중 13곳을 확인했다'면서 삭간몰 미사일 기지의 사례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이 기지는 단거리 미사일 기지이지만 중거리 미사일 기지로 사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폐기중이며 외부 사찰을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삭간몰 기지 같은 곳이 미군과 한국에 위협이 된다고 썼다. 조지프 버뮤데즈 연구원과 빅터 차 한국 석좌, 리사 콜린스 연구원 등 3명 이름으로 나왔다.
 

“새로 드러난 북한의 미사일 기지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제목의 12일 <워싱턴포스트> 기사. ⓒ The Washington Post


이미 알려진 기지에다 위성사진 날짜는 3월

하지만 삭간몰 지역 일대의 북한 미사일 기지는 이미 외부에 알려져 있다. 북한은 2016년 3월 10일 삭간몰 기지에서 원산 동북방 동해 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약 500km를 비행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에도 2006년 6월 한국 정부 당국자가 이 기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 내용이 인용돼 있다.

이 보고서는 이 기지가 활발히 운용중이란 걸 위성사진을 통해 분석했는데, 위성사진의 촬영일자는 3월 29일이다.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6월 12일보다는 한참 전이고, 북한이 핵·경제 병진을 포기하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한 4월 20일보다 훨씬 앞선 시점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관련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시점의 위성사진이다.


"신고되지 않은 미사일 기지 20개 중 13곳을 확인했다"는 표현에 등장하는 '신고되지 않은'(undeclared)이란 말도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우선 '북한에 있는 미사일 기지를 신고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미사일 기지를 만들고 다른 나라에 신고하는 경우는 없고,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누군가에게 신고하기로 한 적도 없다. 따라서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계속 운용하고 있다고 해서 합의를 깼다거나 협상에 기만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과 미국은 협상을 통해 핵과 핵물질, 미사일을 폐기하고 검증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검증의 절차로 '신고'의 범위도 논의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폐기 대상 미사일의 범위로는 우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 보고서와 이를 인용한 주요 보도들은 사정거리 500km정도의 단거리 미사일 기지를 주요한 핵 위협으로 부각시킨 셈이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정부 비밀문건을 입수해 5.18의 진실을 폭로하는 데에 앞장서온 탐사보도 전문 티모시 셔록 기자는 CSIS 보고서를 인용한 여러 신문과 방송 보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 @TimothyS


"부끄러운줄 알아야... 북한 증오하고 남한 무시"

이같이 내용도 불분명하고 발간 목적도 모호한 CSIS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북한의 기만'을 주장하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국내 언론도 이를 인용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청와대에서도 관련 언급이 나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기사 내용 중에 '기만' 'Great Deception'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북한이 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는 게 의무조항인 어떠한 협정도 어떠한 협상도 맺은 적이 없다"면서 "이걸 기만이라고 하는 건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러한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협상을 조기에 성사시켜야 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CSIS의 보고서를 받아 쓴 보도들이 오히려 더 기만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정부 비밀문건을 입수해 5.18의 진실을 폭로하는 데에 앞장서온 탐사보도 전문 티모시 셔록 기자는 CSIS 보고서를 인용한 여러 신문과 방송 보도를 트위터(@TimothyS)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관련 보도를 한 NBC 방송 기자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한 셔록 기자는 "<뉴욕타임스>가 북한의 '기만'이라고 한 오늘의 가짜 주장은 핵심 전문가들에 의해 하루 종일 부인당하고 있다"고 썼다. CSIS의 석연치 않은 보고서와 이를 인용한 보도가 이어진 데에 셔록 기자는 "그들은 북한을 열정적으로 증오하고 그들이 식민지라 여기는 한국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미사일 #삭간몰 #CSIS #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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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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