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어린이를 위한 꿈과 환상의 나라'는 유료... 차가운 현실

[리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우리 사회 복지가 나아가야 할 길

18.11.13 15:41최종업데이트18.11.13 15:41
원고료로 응원
무료하던 참이었다. 새로운 자동차가 나타났다는 딕키(에이든 말릭 분)의 외침에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분),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분)는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난다. 기대감이 가득한 천진난만한 얼굴로 달려가는 세 아이. 주차장에 곱게 주차된 차는 이내 침 범벅이 되고 만다. 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세 아이는 외설스런 몸짓과 욕설을 날리며 침을 뱉어댄다. 그들만의 환영식이다. 천사같아 보였던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는 교훈은 유효하다. 주모자 격인 무니의 엄마는 역정을 내는 차 주인에게 애들이 한 걸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되려 핀잔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 오드

 
무니, 보라빛 '매직 캐슬'의 공주님  

무니는 보라색이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플로리다 '매직 캐슬'에 산다. 마치 동화 속 성처럼 깔끔하게 채색된 매직 캐슬은 외관과는 달리 좁고 초라하며 남루하다. 이제 막 결혼한, 아직 환상에서 덜 깬 신부가 이런 곳에서 잘 수는 없다며 로비에서 울 정도로 매직 캐슬은 '현실적인 곳'이다. '매직 캐슬' 건너에는 플로리다 올랜드 디즈니랜드 '매직 킹덤'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돈을 내고 환상의 세계로 입장하지만, 매직 캐슬에 사는 무니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나폴레옹도 대적할 만한 이 작은 소녀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온종일 놀며 트림에 방귀를 맘껏 뀌어대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외설스런 말도, 분노를 표현하며 욕설도 거침이 없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거스름을 청하고, 빈 집에 들어가 불을 내는 사건까지 저지른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무니는 밝고 순수하며 꾸밈이 없다.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무니의 '자기 긍정'은 하늘을 찌른다. 매직 캐슬의 삶은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그로 인해 무니가 느끼는 좌절감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무니는 보랏빛 매직 캐슬의 공주님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한 장면 ⓒ 오드

 
무니의 유년은 충만하고 행복하다. 비록 보랏빛 페인트로 성을 가장한 매직 캐슬이지만, 무니에게는 진정 아름다운 성이다. 그 안에서 무니는 행복한 공주님이다. 아이들에게 쥐어져야 할 환상은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는 매직 킹덤의 캐릭터들이 아니다. 무니에게 남겨지는 매직 캐슬의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핼리, 무니를 받아내는 무늬

무니의 뒤에는 딸의 작은 욕망들을 지지하는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분)가 있다. 무슨 색깔인지 알 수 없는 머리 색깔, 온 몸을 차지한 무늬(문신)며, 피어싱 등 외모만으로도 핼리는 '불량'스럽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무니는 그대로 핼리의 복사판이다.

차이가 있다면 핼리는 '엄마'라는 것이다. 매우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핼리는 무니를 그렇게 감각적이고 본능적으로 키운다. 직장을 얻지 못해 겨우겨우 일주일치 방세를 마련해 매직 캐슬에서의 생활을 이어가지만, 무니와의 삶을 본능적으로 지켜낸다. 불량 청소년이 아이를 키우듯 핼리의 모습은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보통의 엄마들 중 그녀만큼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핼리는 무니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지 않으며, 무니를 자신의 의지대로 형상하려 하지 않는다. 핼리는 무니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다.

핼리와 무니가 친구 젠시(발레리아 코토 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장면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매직 킹덤의 퍼레이드의 일환으로 터질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세 사람은 차를 얻어 타고는 자리를 잡는다. 까만 밤하늘에 펑펑 터지는 아름다운 불꽃을 보며 "생일 축하해, 젠시, 너를 위한 불꽃이야"라고 속삭이는 무니의 작은 목소리는 위안을 전해준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한 장면 ⓒ 오드

 
세 사람이 이루어내는 교감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핼리의 지지로 이루어낸 무니의 자기 긍정은 젠시에게까지 아름다운 영향을 미칠 터이다. 외롭고 나약한 존재를 위로하는 무니의 따뜻한 목소리는 두고두고 기억날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명장면이다.

무수한 우리들은 찬란한 불꽃처럼 아름다운 하나의 존재이다. 영화에는 전혀 아름답지 못한 현실과 그 안에 외롭게 자리한 존재에 대한 아름다운 위안이 공존한다. 각박한 현실과 씨름하는 존재에 대한 조건없는 긍정은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바비, 호위 무사처럼 우직한 이웃

매직 캐슬의 공주님, 무니에게는 핼리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니의 곁에는 자신들의 시간에 충실한 이웃들이 있다.

매직 캐슬의 매니저인 바비(윌렘 데포 분)는 늘 바쁘다. 모텔 회계에서 투숙객들의 컴플레인 처리를 하며 틈틈이 매직 캐슬에 페인트 칠도 한다. 바비는 아이들 곁을 배회하는 수상한 남자를 쫓아내고, 가슴을 드러낸 글로리아에게 잔소리를 하고, 핼리의 방문객을 제한한다. 마치 플로리다를 정찰하는 헬기처럼 매직 캐슬과 주변의 안전을 주시한다. 짐짓 무심해 보이는 바비는 말이 없는 호위 무사처럼 매직 캐슬 주변과 핼리, 무니를 보호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한 장면 ⓒ 오드

 
과도한 자기 희생이 없는 바비의 보호는 그 과하지 않음으로 이상적인 이웃의 상을 제시한다. 허용될 것과 금지될 것을 구분하는 바비는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늘 최선을 다한다. 규정을 준수하는 바비는 과하게 자유스런 핼리의 육아가 야기할 무니의 방종에 일말의 질서를 마련한다. 그러면서도 바비는 자신의 금지에 상처받을 이웃들에 대한 미안함도 간직하는 마음 따뜻한 남자이다. 이 우직한 남자는 아들과의 관계에서는 매끄럽지 못한 무뚝뚝한 아버지이다. 세계를 지켜내지만 핼리처럼 무니와 교감할 수 없는 이 아버지는 완벽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 있으면 싶은 바로 그런 이웃이다.

핼리의 친구 애슐리(멜라 머더 분) 역시 아들 스쿠티을 혼자 키워내며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스쿠티를 위해 핼리와 무니를 외면하지만, 핼리와 무니의 삶의 빠질 수없는 조력자이다. 젠시의 할머니는 또 어떤가. 처음 만남에서 핼리와 티격태격하지만 하룻밤 잘 곳이 필요한 무니 모녀를 푸근하게 품어준다. 핼리와 포옹하는 세탁실의 직원 등 무니 곁에는 이웃들이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의 생활은 남루할 망정, 이들의 삶은 하나도 남루하지 않다.

유년의 강제 종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매직 캐슬의 보랏빛으로 처음부터 영화의 끝이 어떨지를 예고한다. '보라'는 종말과 죽음을 상징하며 무지개의 맨 끝 자리를 차지한다. 무니의 찬란한 유년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암시와 복선이 영화 내내 나타난다. 낡은 모텔을 태워버린 무니의 방화, 그로 인한 스쿠티와의 분리, 샤워 커튼으로 핼리와 차단되는 무니, 무지개 링이 낡았다는 무니의 중얼거림, 무지개 끝을 이야기하는 젠시와의 대화 등은 무니가 이제 다른 세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방세를 마련하지 못한 핼리의 불법적인 선택은 무니와의 분리로 이어진다. 사회는 이 부도덕한 엄마에게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결정한다. 매직 캐슬의 무니는 교양있는 복지사들의 손에 이끌려 위탁 가정에 맡겨질 예정이다. 핼리도 무니도 원하지 않은 이별이다. 사회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두 모녀를 '복지'라는 이름으로 보호해 주려 한다. 사회가 제공하는 복지는 핼리와 무니의 바램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방세를 마련하기 위해 분투하는 핼리의 모습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선택하고마는 것이 과연 그녀만의 잘못인가를 되묻는다.

무니와의 이별을 예감하며, 무니와 빗속에서 뛰놀며 눈물을 흘리는 핼리의 모습은 가슴이 아프다. 핼리에게 필요한 도움은 무니와의 분리가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도록, 자립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했다. 무니의 유년은 핼리와 무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심한 행정에 의해 강제 종료될 예정이다. 어딘가의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아닌 강제 집행의 형식으로 복지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아 안타깝다. 이 시대의 복지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복지가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들이다.

현실의 다른 이름, 매직 킹덤

무니의 동화는 이제 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 매직 캐슬의 공주님을 위기로부터 구해내는 것은 왕자님이 아니다. 무니에게 자신만의 찬란한 불꽃을 선물 받은 젠시이다. 두 손을 맞잡고 복지사들로부터 도망친 두 소녀 앞에는 매직 킹덤이 우뚝 솟아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한 장면 ⓒ 오드

 
매직 킹덤은 매직 캐슬과 대비되는 곳이다. 킹덤과 캐슬의 사이에는 현격한 '빈부'의 차가 존재한다. 캐슬은 킹덤의 일부인 듯 곱게 채색되지만, 둘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있다. 킹덤이 마련한 꿈과 환상의 무대는 유료이며, 캐슬의 아이들은 지불하기가 쉽지 않다.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0년대 플로리다에 디즈니랜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명인 동시에, 홈리스들이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도록 플로리다 주의 사업명이기도 하다. 같은 이름의 두 사업은 빈부의 차를 현격하게 드러낸다. 캐슬의 미미한 재력은 킹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환상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디즈니랜드는 과연 얼마만큼을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되돌려주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캐슬과 킹덤은 무니의 유년과 그 이후의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캐슬은 궁핍할 현실을 대체하는 정서적인 충만함이 가득했던 곳이다. 킹덤은 환상만 가득한 불만족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매직 킹덤은 결코 무니가 꿈꾸는 무지개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없다. 그 곳은 꿈과 환상을 가장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이다. 이제 무니는 가난했으나 충만했던 매직 캐슬을 떠나, 가득 찼으나 불만족이 지배하는 매직 킹덤의 세상으로 편입될 것이다. 자본으로 재현된 동화 속 낙원인 저 휘황찬란한 세계는 유년기를 지난 무니가 맞닥트릴 현실이다. 무니의 유년은 끝에 이르렀으며, 무니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야 한다.

무니는 젠시와 무지개 다리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를 이야기했다. 무지개 너머에 황금이 있지만, 그것을 난쟁이 요정이 빼앗는다고 젠시는 말한다. 무니는 젠시에게 난쟁이 요정을 물리치러 가자고 대꾸힌다. 자본으로 대변되는 욕심쟁이 난쟁이는 자본으로 만들어낸 환상과 무니 내면의 충만함을 맞바꾸려 할 것이다. 유년기를 지난 무니는 가질 수 없어서, 가지지 못해서 괴로울 것이다. 녹록치 않을 현실이 무니를 좌절에 빠트릴 것이란 확신이 들어 서글프기만 하다. 화면 속의 무니가 너무나 밝고 순수해 더욱 안타깝다.

무니는 젠시와 옆으로 쓰러진 나무 위에서 놀면서 이렇게 말한다. "난 이 나무가 좋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잖아." 어쨌든 나무는 크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좌절과 함께 유년의 충만함에서 밀려나며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 무니와 젠시는 핼리, 바비, 애슐리로 자라날 것이다. 빈곤 속에서도 대다수는 쓰러진 나무처럼 삶을 이어나간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환상의 시기를 지날 현실에 편입될 아이들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 어른들이, 그리고 사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한 장면 ⓒ 오드

 
디즈니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나 캘리포니아 주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듯하다. 매직 킹덤이 만들어내는 꿈과 환상은 거짓이며, 매직 캐슬을 향한 도움은 거창할 뿐 적절하지 못했다. 두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직 킹덤과 매직 캐슬의 사이의 이질감이 감소되어야 할 것이다. 두 세계를 잇는 꿈같은 무지개 다리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제3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절실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플로리다프로젝트 월렘데포 브루클린 프린스 브리아비나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