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_는_시_간_을_팝_니_다

[4860원부터 7530원까지, 한 시간의 기록] 언제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 될까

등록 2018.11.15 17:57수정 2018.11.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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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곳이 없어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에 대한 스물다섯살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처음으로 제 시간을 팔 수 있게 됐을 때는 2013년이었습니다. 스무 살이었던 제가 팔게 될 한 시간은 486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 4860원이지만 5000원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가 돈이 필요했던 저는 안산의 작은 공장에 찾아갔습니다. 최저임금 시급보다 무려 140원을 더 쳐주는 그 공장은, 어느 유명한 전자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게 될 일은 불량품을 골라내고 부품 개수를 맞춰 포장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중국, 필리핀계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제 시급이 5000원인 것을 알자 필리핀 언니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공장주를 흘겨보았습니다. 아마 저보다 적은 시급을 받고 일을 하는 듯했습니다. 어린 저를 유독 살갑게 대해줬던 그 언니에게 최저임금의 존재를 차마 알리지 못했습니다.

공장주는 종종 아침에 출근한 아르바이트생들을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일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귀찮은 듯 허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는 그 표정은 중세시대에 노예를 부리는 권태로운 귀족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공장주에게는 우리의 사라진 아침 시간과 하루 일당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번번이 계속됐지만, 저는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밉보였다간 다음 주에 출근하지 못하리라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비굴함을 배웠습니다.

# 5210원


2014년, 21살의 한 시간은 350원이 올라 5210원이 됐습니다. 저는 친구의 소개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자체규정상 초반 3개월은 수습기간이므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일당이 계산됐습니다. 저의 시간은 자체규정이라는 명목하에 2013년보다 가치가 낮아졌습니다.

그곳의 계산법은 아주 이상했습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히 하기 위해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지문만은 정시에 찍어야 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검정 구두와 정장 바지, 화사한 색깔의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모두 제 돈으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곳은 3년이 지나 제게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 원 정도를 입금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 싸워 받아내준 돈이겠지요. 저와 친구는 마치 공돈이 생긴 기분이라며 깔깔 웃었지만, 그 돈이 우리가 실제 근무한 것에 비해 적게 책정됐다는 사실은 굳이 서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 6030원이지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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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3살의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이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편의점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습니다. (사진은 영화 <리틀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016년 23살의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이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편의점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습니다. 일자리가 아쉬웠던 터라 그렇게 5000원에 제 시간을 팔았습니다.

편의점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심심하면 편의점에 찾아와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괴롭히는 주정뱅이 아저씨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자주 오는 민머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자기가 이 빌딩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사장님이 그에게 매우 상냥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저씨는 제가 대학생인 것을 알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너 나랑 데이트하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줄게."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너무 무서워 손이 떨렸습니다. 눈물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웃는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분위기상 그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생각해보라며 제게 비타민 음료를 건넨 후 편의점을 나갔고, 저는 일주일 후 편의점을 그만두었습니다.

# 6470원

2017년 24살의 한 시간은 6470원이었습니다. 장거리 통학에 지쳐 있던 저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싱글 침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가는 조그만 공간의 방세는 보증금 700만 원 에 월세 46만 원. 보증금은 부모님이 마련해주셨습니다.

저는 방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평일은 호프집, 주말은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잘 봐주신 교수님이 일감을 주셔서 한 주에 3개의 일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잠을 못 자 눈은 충혈되고 피부는 푸석해졌습니다.

피곤한 눈으로는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는 속으로 중얼중얼 욕만 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졸았고, 근무지에서는 웃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을 버텨내는 사이 학점은 엉망진창이 됐고, 저는 국가장학금을 놓쳤습니다.

일하며 모은 돈은 모두 등록금과 대출이자로 나갔습니다. 몹시도 춥던 그해 겨울, 큰맘 먹고 패딩 점퍼를 마련하고 나니, 제 손에 남은 돈은 30여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 7530원이지만 7600원

올해 저의 한 시간은 7530원입니다. 인심 좋은 호프집은 70원을 더 쳐주어 7600원에 제 한 시간을 샀습니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제 또래의 손님들이었습니다. 그 손님들은 자신의 시간을 팔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용돈'이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저는 고를 수 없는 선택지가 그 친구들에게는 당연하단 듯이 장착돼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일하는 제가 안쓰럽다는 듯이 웃는 친구가 얄미웠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자 호프집은 갑작스레 문을 닫았고, 저는 그렇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한 학기에 15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는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대출 버튼이 저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학자금대출 원금에 차곡차곡 쌓이는 이자가 저를 압박했습니다. 저는 생활비대출 버튼 대신 부모님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시간을 파는 사람

성의 없는 공장주의 태도, 대기업의 부당한 갈취, 징그러운 아저씨의 제안, 피곤에 찌든 일상. 성인이 된 제가 힘든 시간들을 겪은 이유는 제가 시간을 파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한 시간에 대해 저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가격을 매깁니다. 가격을 매긴다고 그 돈을 보장해주는 사업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늘 일을 하고 있는데 남은 것은 학자금대출뿐입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 대학에 온 것이 아닌데, 어느새 졸업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됐습니다. 제가 시간을 파느라 놓친 봉사시간, 영어점수, 자격증을 가진 친구들은 좋은 곳에 취직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의 시간을 사준다는 곳이 있으면 썩 내키진 않지만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또 시간을 팔겠지요.

저는 오늘도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계산대 앞에 섭니다. 꼬질꼬질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온몸의 세포가 다 꼬질꼬질해지는 기분입니다. 눈은 풀리고, 입꼬리는 내려가며, 상냥한 마음씨는 도망갑니다. 과거와 현재의 꼬질꼬질한 시간들이 싫지만 앞으로의 시간들도 꼬질꼬질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에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정해놓은 가격에 저의 시간을 팔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팔아야만 저는 제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 #아르바이트 #최저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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