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를 쓰고 읽는 어른은 상냥합니다

[꾸러미 읽기]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핫도그 팔아요', '꼭 하고 싶은 말'

등록 2018.11.15 09:43수정 2018.11.1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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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최종규


ㄱ.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시

오순택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9.27.
봄은 / 세 살배기 아기다. // 이제 막 말을 하려고 / 입을 여는 / 아기다. // 봄은 (봄은/80쪽)

손녀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 손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 나의 손을 잡아끌었지요. (쉬/104쪽)

우리는 다 다르게 태어나서 다 다르게 자랐어요. 어릴 적에 겪은 하루가 다르고, 저마다 누린 놀이가 다릅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다르기 마련이고, 무엇이든 다들 신나게 맞아들여서 기쁘게 하루를 짓기 마련압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를 쓴 분은 책이름에 붙인 말처럼 바퀴를 굴리며 놀던 어린 나날이 더없이 기쁘고 신났기에,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어느새 할아버지 나이가 된 자리에 서서 아이들하고 나눌 이야기를, 또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할아버지 옛놀이 이야기를 동시로 갈무리합니다.

아이 눈길이 아닌 할아버지 눈길입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동시는 어른이 아이가 되어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하고 함께 놀고픈 마음으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쓸 동시이기보다는, 어른이 아이하고 생각을 살찌우거나 북돋우면서 서로 기쁘게 어우러져 놀고픈 뜻으로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할아버지 동시를 읽을 아이들은 '나는 이렇게 보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저렇게 보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배웁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보면서 배운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아이들은 이런 할아버지 곁에서 새삼스레 배우며 뛰놉니다.
   

겉그림 ⓒ 최종규

    
 ㄴ. 재미난 말재주 너머에는

<핫―도그 팔아요>, 장세정, 문학동네, 2017.9.11.
슈퍼 앞에 '폭탄세일'이라고 적혀 있다 // 사람들이 두 손 가득, 자동차 뒷자리 가득 폭탄을 사 간다 // 트림폭탄 방귀폭탄 똥폭탄 될 분들 모시고 간다 (폭탄세일/87쪽)

어린이는 시를 씁니다. 어린이는 그냥 글을 쓸 뿐이지만, 어린이가 쓰는 글은 모두 시가 됩니다. 시라는 낱말을 모르고, 시를 배운 적이 없지만, 어린이는 마음에 흐르는 말을 잡아채어 연필로 그려 놓으면서 시를 짓는 놀이를 해요. 연필을 쥐지 않더라도 입을 벌려 소리를 내놓으면서 노래를 짓는 놀이를 하지요.

<핫―도그 팔아요>는 어떤 동시집일까요?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숨결로 시를 짓고 노래를 짓는 놀이를 하듯, 가볍거나 상큼하게 펴는 동시일까요? 아니면 어린이 마음을 아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말재주를 피우는 동시일까요?

오늘날 어린이가 살아가는 터전은 어른이 이미 만든 자리입니다. 어른이 '지은' 자리도 '가꾼' 자리도 아닌 '만든' 자리에서 길든 채 살아가요. 이런 '만들어진' 터전에서 그냥 그대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시를 쓴다면, 아무래도 이야기보다는 겉멋에 치우는 말재주로 기울기 쉽습니다.

어린이는 무엇을 보면서 어떤 꿈을 키울 적에 즐거울까요? 어린이는 어른들이 만든 틀에 쳇바퀴처럼 갇혀서 생각도 꿈도 키우지 못하는 채 교과서 진도와 대학바라기로 흐르다가 회사원이 되고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요? 동시를 쓰는 어른들은 부디 어린이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잇는 길을 글로 여미면 좋겠습니다.
   

겉그림 ⓒ 최종규

   
ㄷ. 어린이 목소리로 읽는 삶

<꼭 하고 싶은 말>, 밭한뙈기 엮음, 삶말, 2016.12.15.
오늘 팥빙수가 먹고 싶었다. / 그래서 팥빙수를 그렸다. (빙수, 천남초 3년 신지연/23쪽)

꺾인 토마토 줄기 / 살리고 싶어서 / 줄기를 잡고 있었다. (꺾인 토마토, 세종초 5년 김민기/103쪽)

바람이 내 몸을 스치고 / 지나가더니 / 나뭇잎과 얘기를 한다. /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 정말 다정하게 얘기를 한다. (바람, 하호분교 6년 윤지상/118쪽)

우리한테 귀가 있습니다. 이 귀는 모래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손이 있습니다. 이 손은 모래알이 어떤 숨결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은 모래알하고 내가 서로 같으면서 다른 아름다운 삶이라고 알아챌 수 있습니다.

경기 여주 어린이가 쓴 글하고 그린 그림을 엮은 <꼭 하고 싶은 말>은 온누리 어린이는 누구나 노래님이며 그림님이라는 대목을 잘 밝힙니다. 어린이 누구나 샘솟는 말이 있어 노래로 터뜨려요. 따로 시키거나 수업을 하기에 동시를 쓰지 않습니다. 어린이 누구나 꿈이 있으니 연필이나 크레용이나 붓을 쥐고서 슥슥 그릴 수 있습니다.

미술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나 그림을 그리면서 흐뭇합니다. 글 한 줄이란 바람 한 줄기일 수 있습니다. 글 두 줄이란 들꽃이 핀 풀줄기 둘일 수 있습니다. 글 석 줄이란 아이 셋이 매달리며 놀 수 있는 튼튼한 나뭇줄기 셋일 수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속삭이듯 노래합니다. 꼭 들려줄 꿈이 있어 웃음짓듯 그립니다. 노래님이자 그림님을 낳은 어버이도 누구나 노래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린이 목소리를 읽는 어른들 누구나,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 곁에서 함께 노래하고 글(동시)도 써서 더 신나게 하루를 누려 본다면 좋겠습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은 상냥할 수밖에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핫-도그 팔아요

장세정 지음, 모예진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2017


꼭 하고 싶은 말

밭한뙈기 지음,
삶말, 2016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오순택 지음,
아침마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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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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