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바라기' 직장인은 회사도 부담스럽다

[X의 오피스 살롱] 사표 대신 '퇴근 후가 있는 삶'... 나는 녹음실로 간다

등록 2018.11.19 19:42수정 2018.11.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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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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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퇴사할 때 자주 쓰는 일명 '도비 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속 노예 도비가 자유를 찾는 장면으로, 회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퇴사인의 해방감을 담고 있다. (원본 사진은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퇴사' 열풍이다. 대형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에는 퇴사에 관한 책들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퇴사에 대한 책 제목만 봐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퇴사 후의 삶이 근사해질 확률은 너무나 낮기에 그 경험담이 책으로도 출간이 되고 화제가 되는 것 아닐까.

나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퇴사 꿈나무였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2017년 회사에 다니며 쓴 역사 에세이로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했다. 주변의 프리랜서 및 전업작가들이 책도 나오기 전부터 절대 회사를 관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 책의 출간과 동시에 -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장의 얼굴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퇴사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퇴사가 아니라 퇴근 후가 있는 삶을 만들기로! 회사 생활이 신나고 즐겁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퇴사만큼 어려운 일이다.

고로 퇴사 전까지는 퇴근 후 시간을 신나게 보낼 수 있다면 즐거운(?) 회사 생활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이 문장을 사장님들은 좋아하시겠네). 대한민국에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인상적인 선거 슬로건이라고 생각되는 '저녁이 있는 삶'과 궤를 같이하는 '퇴근 후가 있는 삶'!

주 5일제가 시행될 초기, 일각에서는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리네', '한국 경제는 자멸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걱정이 있지만 이는 기우가 될 것이고, 우리의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연예에도 '밀당'이 필요하듯이 회사와도 밀당이 필요하다. 무조건 회사만 바라보는 직원을 요즘 기업들도 부담스러워 한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재충전을 하고 돌아오는 직원을 선호하는 것이 추세다. 퇴근 후의 시간조차 회식을 빙자한 술자리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퇴근 후가 있는 삶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헬스나 외국어 공부 외에 좀 더 미래지향적이며 회사 생활에 밑거름이 될 활동은 없을까.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일 중에서 최소한의 지출로 시도할 수 있는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팟캐스트 진행이었다.

라디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팟캐스트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라디오 DJ가 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그러나 10킬로미터를 달리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 크지도 않은 집에서 현관까지 걸어가 신발을 신는 일이다.

팟캐스트를 진행해 봐야지 하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데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막상 하고 나니 이렇게 쉬운 일을 시작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김 차장이 아닌 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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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녹음 중 ⓒ 김재완


방송 주제는 역사. 내 인생 첫 책인 <찌라시 한국사>의 내용을 들려 주기로 했다. 그래서 팟캐스트 제목도 자연스럽게 '찌라시 한국사'가 된 것이다. 첫 녹음은 이랬다. 스마트폰에 녹음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무려 방구석에서 녹음을 했다. 첫 녹음 분을 올리는 데 든 비용은 0원이다.

며칠 후, 무려(?) 7명의 사람이 내 방송을 들었고, 내용은 좋은데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댓글이 달렸다. 녹음실을 알아보기로 했다. 녹음실 사용료를 보고 경악했다. 너무 싸다. 1시간에 1만 원 정도면 완벽한 방음과 멋진 마이크가 있는 녹음실을 이용할 수가 있다.  비록 한 번의 녹음으로 끝날지라도, 멋진 녹음실의 마이크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SNS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사실 'X세대 아재'에게 녹음 후 편집이 더 걱정이었으나, 녹음실에서 편집 및 업로드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인터넷만 할 줄 안다면 1만 원으로 나만의 방송을 전 세계에 송출할 수 있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보다 파급력은 떨어지겠지만 좀 더 낭만적이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게스트로 참가한 지인들은 녹음에 직접 참가하면서 추억을 쌓았고 나는 그들과 함께 방송 노하우를 쌓아 나갔다. 시간의 누적은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한파를 뚫고 녹음실로 향했고, 2018년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에도 녹음실로 향한 결과, 전 세계에서(?) 1600여 명의 정기구독자가 나의 방송을 듣게 되었다.

덴마크와 중국에 거주하시는 한인분들, 매일 아침 장사 준비를 하며 방송을 듣는 셰프님, 포도 농사를 하는 도시농부, 전라도 사투리를 고증(?)해주시는 광주 분, 야간에 등산을 하며 방송을 듣는 산악인, 10년 가까이 팟캐스트를 듣는데 본인이 들은 방송 중 나의 방송이 TOP3 안에 든다며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을 해 주신 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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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녹음실에서 찍은 사진 ⓒ 김재완

 
월 3회 녹음하면서 한 푼의 수익도 내지 못했지만, 덕분에 퇴근 후의 삶이 즐거워졌다. 마치 내가 '라디오천국'의 유희열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퇴근 후 녹음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방송 업로드 후 청취자들부터 받는 정신적 기쁨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고도 남았다.

집에서 매일 보는 남편의 목소리를 이어폰을 통해 듣는 것이 오글거려 듣지 못하겠다던 아내가 어느새 '다음 편은 언제 업로드가 되냐'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낮에는 이름 대신 직책이 불리는 김 차장이지만, 퇴근 후에는 오롯이 이름 석 자로 방송하는 PD이자 DJ로 살고 있다. 회사 가는 길이 소풍 가는 것처럼 신나지는 않지만, 지옥행 열차를 타는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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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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