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원 '툭' 던져주고... 무시당한 주민들의 분노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36] 풍력발전 현황과 과제 (중)

등록 2018.11.18 12:09수정 2018.11.1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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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말 

'주민 무시한 악덕업체 지금 당장 철수하라.'
'우리는 풍력단지 중단할 때까지 결사 항전한다.'
'자연환경 훼손하는 풍력단지 중단하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봄 햇살이 눈부셨던 지난 4월 28일 오전 경북 영덕군 달산면의 무지개쉼터. 실개천 옆 공터에 아늑한 나무 그늘이 있어 평소 마을잔치가 열리곤 하던 공간이지만, 이날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햇빛가리개 모자 위에 '풍력반대' 빨간 띠를 두른 남녀 주민 70여 명이 서릿발 같은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부분 검게 그을린 얼굴에 굵은 주름이 진 60~70대 어르신들이었다.

'개인회사 돈벌이에 희생양 된다' 항의 집회
 

경북 영덕군 달산면 무지개쉼터에서 풍력발전단지 반대집회를 열고 있는 지역주민들. ‘사업자가 주민을 무시했다’고 성토했다. ⓒ 박지영

 
"아침밥 마이 묵고 왔능교? 풍력은 절대 들어오면 안 되지요? 그지요?"

'영덕풍력발전 1·2단지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김명환(60) 공동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첫 발언에 나섰다. 그는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오면 공사 과정에서 산사태와 환경 훼손이 일어나고, 건설이 완료되면 저주파와 소음으로 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풍력발전을 막는 데 총력을 다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개인회사 돈벌이에 희생양이 될 순 없다", "사업자는 피해주민 무시하지 마라" 등 구호를 선창하자 주민들은 손팻말을 흔들고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일부 주민은 꽹과리와 북을 울리기도 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김태경(63) 대책위 사무국장은 "발전시설을 세우려면 지역주민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추진 회사가 사업설명회를 하고 주민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풍력의 장점만 부각하고 단점은 전혀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주최 측 발언이 끝나자 참가 주민들은 손팻말을 들고 인근 도로를 10여 분간 행진한 뒤 쉼터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파전과 수육, 잔치국수, 막걸리 등이 나온 식탁 한편에서 일부 주민은 트로트 가요를 부르고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경북 영덕군 주민들이 ‘풍력단지 중단할 때까지 결사항전’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마을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 박지영

 
주민 임연희(64·여·영덕군 남정면)씨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영덕은 자연이 좋은 청정지역인데 풍력 회사가 갑자기 들어와서는 환경 훼손하는 풍력 사업을 한다고 해서 반대한다"고 말했다. 양봉업을 한다는 임씨는 "풍력발전을 하는 다른 지역에 가보니 산을 그냥 깎아서 농산물피해가 크다고 하더라"며 "영덕에서는 양봉 농사를 많이 하는데 풍력발전 때문에 피해를 볼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마을 주민 김종예(65·여)씨는 "풍력발전이 우리나라 여러 군데 들어선 것으로 아는데 (사업자들이) 시골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돈 백만 원 툭 던져주고 사업해 보겠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덕·거제·울산·의령 등 곳곳에서 사업 제동


경북 영덕에서 풍력발전단지를 추진 중인 사업자는 지에스이앤알(GS E&R)과 일출에너지다. 이들은 영덕 제1·2풍력발전단지에 총 53기, 180메가와트(MW) 규모의 발전기를 세울 예정이다. 지난 1월부터 사업비 4700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이 사업은 2021년 완공이 목표다.

하지만 주민들은 풍력시설이 산지에 들어설 경우 산사태가 일어나고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특히 발전사업자가 풍력발전의 장단점을 정직하게 설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민동의서를 받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업동의서에 서명하면 가구당 100만 원씩 주겠다는 미끼로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은 환경파괴 등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일출에너지 풍력사업개발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지 7개월 정도 됐는데,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도 저주파, 소음 발생 등의 피해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란이 된 주민동의서와 관련 "각 개인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찬성) 도장을 먼저 찍은 마을에 가구가 많든 적든 1년에 약 700만 원을 마을발전기금 형식으로 입금하고 20년 계약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풍력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갈등을 빚는 곳은 영덕 외에도 많다. ㈜거제풍력은 경남 거제시 옥녀봉 일대에 2MW급 풍력발전기 18기를 설치하려다 주민 반발로 2014년 7월 중단했는데, 올해 재추진하면서 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울산 북구 강동 앞바다에 에스케이(SK) 건설이 3MW급 해상풍력발전기 32기를 건설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경남테크노파크 조선해양에너지센터가 경남 의령군 산성산에 20MW급 규모의 풍력발전기 6기를 설치하는 사업도 주민 반대로 지난 8월 중단됐다. 경북 영덕 주민들은 지난달 18일 상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과 서울 강남구 논현로 GS E&R 본사 앞 등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청정에너지' 풍력 증가, 주민 갈등이 걸림돌

한국풍력에너지학회의 <2018 국내외 풍력발전 산업 및 기술개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내에는 총 67개 육상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섰고 총 481기의 발전기가 설치됐다. 강원도가 117기로 가장 많고 제주도에 104기, 경상북도 95기 등의 순서다.

이 중 '지역의 바람은 주민 모두의 것'이라는 '풍력자원공유' 정신에 따라 주민과 전기 생산 이익을 공유하는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달리 발전시설을 순조롭게 확장하고 있다. 2016년 기준 국내 풍력발전의 누적설비용량은 1035MW로 2015년 852MW에서 약 21퍼센트(%)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풍력발전설비가 뚜렷한 증가추세를 보이지만 지역 주민과의 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GS E&R이 2016년 5월 준공한 경북 영양군의 GS영양풍력발전소 전경. ⓒ GS E&R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의 '2017년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전력생산량 57만7683기가와트시(GWh) 중 풍력발전량은 2169GWh로 아직 0.37%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6년 전체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7.24%, 신재생에너지 중 풍력비중이 4.1%였던 것에서 2017년 전체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8.07%, 신재생에너지 중 풍력비중은 4.7%로 늘어 증가세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30년까지 전기생산량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가 제시되면서 태양광과 함께 풍력발전 투자가 본격화한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대학교 대학원 풍력공학부 김범석(44) 교수는 "풍력발전은 바람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므로 발전 중 또는 발전 후에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폐기물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소음에 대해 "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응하기 위해 블레이드(날개)의 최대 회전속도를 제한하고 소음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등 기술적용으로 소음 레벨을 대폭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의(61) 탐라해상풍력발전 대표이사는 지난 8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풍력발전은 천연자원인 바람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최상의 에너지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국내 풍력시장이 아직 초보단계라 (풍력생산단가가 이미 화석연료나 원전보다 낮아진 선진국에 비해)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기술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에너지 안보나 미래 청정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를 고려한 접근방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제주의 '풍력자원공유 원칙'으로 해법 찾아야

전문가들은 풍력이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재생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풍력발전소 입지와 관련한 주민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제주도가 선보인 '풍력자원공유의 원칙', 혹은 '공풍화(共風化) 정신'에 따라 지역의 바람으로 얻은 이익을 지역 주민과 나누는 구조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정필(41) 연구부소장은 "제주도의 풍력 제도는 풍력 자원의 공공적 관리기반을 구축하고 개발이익의 공유를 제도화한 소중한 경험"이라며 이것이 전국적인 모범이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에너지연구원 송승헌(46) 기업육성실장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업체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동네에 지어놓고 수익을 지역이 아닌 외부로 유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민들이 (발전소 건설운영에) 참여하고 자원에 대한 수익을 주민에게 환원하는 사이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풍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주에서 선보인 ‘풍력자원공유의 원칙’을 적극 수용하고, 보다 실질적인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경북 영양군의 GS영양풍력발전소. ⓒ GS E&R

 
녹색연합 임성희(51) 연구원은 지난 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실질적인 환경영향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풍력발전 인허가를 낸 다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주민동의를 얻는 현재의 사업절차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에 불과하다"며 "풍력발전 사업허가를 내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연구원은 "공청회나 설명회는 형식적인 절차로만 진행되고, 주민들은 나중에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나 '풍력발전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서느냐'며 반대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발전사업 허가 전에 환경영향평가 등을 먼저 거쳐서 주민들에게 이를 충분히 알리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 주민들의 반대로 풍력발전이 무산되거나 갈등으로 비화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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