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줍기와 청년 농업인의 영농설계 유사점

청년농업인들에게 고하는 글

등록 2018.11.16 18:05수정 2018.11.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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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가을 나는 '프로 도토리꾼'과 함께 깊은 숲속 토토리를 찾아다니는 최초의 경험을 했다. 지인의 산에서 도토리 채취를 했으니 불법은 아니며, 숲속 친구들의 먹이를 가로챘다는 비난을 받기에는 소량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 주었으면 한다. 오히려, 그 숲에는 다람쥐가 먹다 버린 토토리도 상당수 있을 정도로 먹잇감이 풍부해서 그들이 먹고 사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마, 이번 이야기의 본질은 나의 도토리줍기가 아니라 도토리를 줍는 행위와 청년농업인들의 영농설계와의 유사점일 것이다.

첫째, 숲과 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가에 떨어진 몇 개 안되는 도토리를 일반인들과 경쟁하면서 취미삼아 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숲은 농림부의 농림사업시행지침으로 대변되는 농업정책이며, 농촌경제연구원 등 농업농촌 관련 연구기관의 다양한 성과물들이며, 나무는 각 시군별 농업기술센터 업무계획 및 예산서다. 이는 다 공개되는 자료이니 조그마한 수고라면 검색이나 유선을 통해 다 확보할 수 있다. 자료 수집방법인 다음 글에서 더 상세히 다루겠다.

그리고, 연말 연초에 보도되는 농업 관련 전문지의 기획기사들도 1년을 돌아보고 내년을 설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도서관에는 농업농촌 관련 계간지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으니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농촌진흥청 등 농촌진흥기관의 연구성과물 중 자신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해당 담당자에게 자료를 요청하면 실제로 집에서 책자를 받아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연구성과물들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을 통해서 기술화되어 보급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소비 트랜드 관련 책자도 시중 서점에 많이 있으니 비수기인 겨울철에 일독을 권한다.

둘째, 숲과 나무를 잘 찾아가더라도 도토리를 한꺼번에 주는 법은 없다. 부지런히 반복적으로 찾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혹시나 운이 좋아 사람들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가서 '대박'을 만나더라도 그 때 뿐이다. 영농활동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자신만의 농산물을 재배하다보면 거래처도 늘고 직거래 고객도 확대되는 등 성과도 거둘 수 있고, 기존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목에 도전하다보면 '대박'을 만날 수도 있다.

다만, 농업 분야의 대박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니 유행만을 쫓는 농사는 금물이다. 우리나라 농업분야만큼 벤치마킹에 넉넉한 분야가 없기 때문에 몇 년 안에 신규 작목은 보편적인 작목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셋째, 발생한 문제는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도토리 숲을 헤매다 보면 수많은 가시덤불과 날카로운 나뭇가지는 온 몸에 상처를 입힌다. 옷이나 팔토시, 목 높은 등산화 등으로 단단히 준비하는 게 우선이지만, 한 번 지나간 길은 반드시 다시 지나가기 마련이므로 내 몸에 상처를 입히는 요소들을 미리 제거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영농활동을 수행하다보면 △재배기술 △농장경영 △마케팅 등 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힘들고 시간이 없다고 발생하는 문제를 후순위로 미루면, 그 문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가시덤불이나 나뭇가지로 탈바꿈한다.

넷째, 힘이 모자라면 한 번은 쉬어가야 한다. 도토리를 무리하게 줍다가는 반드시 사고가 난다. 과욕은 금물이다. 영농활동도 마찬가지다. 당장 돈이 눈앞에 보인다고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재매면적을 늘이거나 신규 작목을 도입하면 안된다. 충분한 에너지는 본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고객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힘이 빠지면 작물에도 영향을 미치고 소비자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당장 느끼게 된다. 당장 눈앞의 도토리가 보인다고 무리해서 손을 뻗지 마라. 무리해서 뻗는 그 손은 반드시 날카로운 나뭇가지나 풀에 공격당하고 무섭게 생긴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 포위당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의 부탁으로 청년농업인 절임배추 농가를 소개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20kg 한상자에 7~9포기가 들어가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배추 속도 제대로 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부족한 중량을 소금물로 채운 것 같았다. 문자로 항의를 했더니 배추는 이상이 없으며 배송도중에 배추가 살아나서 물이 나왔다는 답변을 받았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지인은 내 농업 현장경력 15년보다 5년이 더 많은 대형 식당 주방장 출신으로 배추를 수천통이나 절여본 경험이 있는 분이었으니 말이다. '강호의 고수'는 차고 넘치지만 본인만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눈앞의 도토리에 잠깐 마음이 흔들려서 김장철에 물량이 딸려서라고 시인했더라면, 그에게 무농약 감자와 옥수수까지 주문했던 나와 내 주변의 지인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섯째, 숲을 다닐 때는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자세를 꼿꼿하게 세우면 도토리가 잘 보이지도 않고 험한 숲에서 쉽게 미끄러진다. 청년 농업인들 눈에는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왠지 자신보다 잘 모르고 예전 방식만을 고집한다고 보일 수 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농업분야만은 왠지 어설프게 농사를 짓고 있는 그 분들이야말로 가르침을 청해야 하는 분들이라고 말이다. 자세를 낮추고 충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더 좋은 도토리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정부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 청년농업인 시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여기저기 교육 받으러 오라는 말도, 공짜로 컨설팅 해 주겠다는 말도, 기관 차원에서 귀찮을 정도로 우수 사례로 내세우고 동원하는 일도 일시에 싹 없어진다면 귀찮은 것이 아니라 서운할지도 모른다.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프로 농사꾼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뿐이다.

마지막으로, 조그마한 성과물들을 모았어도 다시 다듬고 정리해야 한다. 도토리는 그냥 두면 벌레가 먼저 먹거나 곰팡이가 슬기 마련이다. 꼭 껍데기를 까고 삶고 말려서 바람이 잘 통하는 망에다 넣어서 말려야 한다. 애써서 배운 영농기술과 경영기술을 스스로 갈고 닦으며, 힘들게 쌓아놓은 평판을 평정심을 가지고 계속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청년 농업인들의 '농업'도 마찬가지다.
#청년농업인 #농업경영 #경영계획수립 #영농설계 #청년창업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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