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무휴' 쇼핑몰 직원의 소원 "명절에는 제발 문 닫길"

[현장] 복합쇼핑몰·백화점 등 의무 휴무 대상·기간 확대 추진, 국회가 걸림돌?

등록 2018.11.16 17:45수정 2018.11.1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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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대형유통매장 정기휴점제도 입법화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맨 오른쪽)이 발표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우원식, 이학영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에서 공동주최했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참여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이 공동주관했다. ⓒ 김시연

 
"원래 일요일에 쉬던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처럼 (휴일 없이) 계속 일하던 사람들은 일요일 휴식권이 보장되었을 때 그 삶의 질은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

365일 문을 여는 대형유통매장 노동자들의 '소소한 행복'은 일요일, 아니 설과 추석 명절 당일만이라도 가족과 함께 '확실히' 쉬는 것이었다.

지난 2월 경기도 고양 스타필드 아동복 점주의 죽음을 계기로 대형유통매장 정기 휴점 제도화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최근 '연중무휴'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이 급증하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삶의 질은 물론 건강권과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우원식, 이학영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에서 공동 주최했고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참여연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이 공동 주관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이날 인사말에서 "연중무휴로 밝혀둔 아웃렛 불빛 뒤로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면서 "올해 2월 20일 스타필드 고양점 창고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아동복 브랜드 점포 업주가 결국 세상을 떴다, 6개월 동안 쉰 날은 3일 남짓이었다"고 밝혔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지난 2012년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제도가 도입됐지만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일하고 있고, 의무휴업제에 포함되지 못한 백화점과 면세점의 노동 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IMF 이전 월 4회 정기 휴점했던 백화점은 IMF 이후 월 1회로 줄였고 면세점은 아예 휴점 없이 365일 영업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중무휴' 쇼핑몰 노동자들 "명절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다"

최근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노동자들은 화장실조차 제때 못 가고 장시간 서서 일하는 탓에 일반인보다 족저근막염은 15.8배, 무지외반증 67배, 하지정맥류는 25.5배 더 많이 앓고 있었다(관련기사: 명품 백화점 직원들, 가장 괴로운 건 '화장실').

강규혁 위원장은 "고용노동부에서 면세점과 백화점에 공문을 보낸 뒤, 일부 백화점에선 조회 때 '고객화장실을 눈치껏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기 시작했다"면서 "고객 화장실은 공중화장실이어서 누구나 쓸 수 있는데도 직원이 함께 쓰면 손님이 불쾌할까봐 수십 년 동안 관행적으로 못 쓰게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백화점 정규직과 달리 주5일 근무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정기 휴무'는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 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은 "백화점·면세점 판매 노동자에게 정기휴업 확대는 절박한 요구이며, 아프지 않고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민정 사무처장은 "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규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산 증인"이라면서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하면 매출 준다,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구조조정 된다고 협박했지만 대형유통업체는 여전히 승승장구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사무처장은 "마트 노동자 삶은 의무 휴업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질이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다"면서 "이런 것들이 백화점, 면세점 노동자도 공유되길 바란다"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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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유통매장 정기휴점제도 입법화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휴무일을 이용해 10여 명의 마트 노동자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 김시연

 

월 2회 쉴 수 있게 된 마트 노동자들도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박한 행복'은 여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트산업노조에서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마트노동자 1663명에게 설문조사했더니, 절반에 이르는 858명이 명절 당일 휴업을 요구했고 나머지 노동자들도 명절에 휴무, 연차 사용 허용과 연장근무 금지 등을 바라고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28일 대형마트에서 제기한 의무 휴업 위헌 소송에서 전통시장과 중소유통업자 보호와 노동자 건강권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인정해 합헌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주 2회 일요일 휴무조차 평일 휴무로 변경한 사례도 있었다.

정민정 사무처장은 "2017년 국내 대형마트 217곳 가운데 106개가 일요일 휴업을 평일로 변경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마트 노동자의 의견을 구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세종시의 경우 지난해 9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바꾸려다, 마트 노동자의 반발로 지난 3월 일요일 휴무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명절 휴무 의무화하고 복합쇼핑몰, 백화점으로 확대 추진", 국회가 걸림돌?

현재 국회에는 의무휴업 대상을 대형마트에서 복합쇼핑몰, 백화점, 시내 면세점 등으로 확대하고 의무 휴업일도 월 2회에서 월 4회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안 심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지난 2016년 11월 의무휴업일을 월 2회에서 4회(매주 일요일)로 늘리고, 설, 추석 명절도 반드시 포함하는 한편 백화점과 시내 면세점까지 의무휴업 대상을 확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도 같은 해 추석과 설 명절을 반드시 의무휴업일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발의했고, 홍익표 민주당 의원도 지난 1월 의무휴업제를 복합쇼핑몰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날 유럽연합 유통업 정기휴점제 실태를 발표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유럽은 유통업체 영업 요일이나 영업시간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지만 아직도 일요일 정기 휴점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의 공익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는 만큼 주1회 의무휴업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대형 백화점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재홍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본부장도 "최근 대형마트 증가는 주춤한 반면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은 지난해에만 67곳이 늘어났고 그 파괴력은 대형마트의 수십 배에 달한다"면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복합쇼핑몰은 의무휴업에서 제외되다 보니 스타필드 입점 업체 사장이 단 하루라도 쉬고 싶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같은 안전시설은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안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노동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본 권리를 찾아줄 뿐 아니라, 소비자의 안전과 에너지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의무 휴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동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도 "대규모 점포들 가운데 현재 대형마트만 의무휴업을 지정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업태와 상관없이 매장 면적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3000㎡ 대규모 점포로 기준을 정하면 백화점이든 대형마트든 면세점이든 상관없이 의무휴업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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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유통매장 정기휴점제도 입법화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김시연

 

이날 정부를 대표해 나온 서기호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장은 "2012년 의무 휴업 대상에 백화점이 안 들어간 건 중소상인 보호와 전통시장 피해 기준으로 봤을 때 백화점 업태의 소비자층이 전통시장과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대형마트 이외에 복합쇼핑몰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법안 상정 심의 단계에서 지역별로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어 진도가 못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무제 도입 당시 중소영세상인 보호가 화두였지만 근로자 건강권 문제가 소홀히 다뤄졌다"면서 "백화점도 과거 주 1회 정기휴점제가 자연스러워 (대형마트 의무 휴업 이후) 내부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소강상태가 되자 그냥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불참하기로 했지만 서비스연맹은 유통위원회에서 유통업체들과 이 문제를 논의할 의사가 있다"라고도 밝혔다.

이날 인사말 이후에도 토론장에 남아 발제까지 모두 들은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당에서 시민사회 등과 함께 민생연석회의를 구성해 카드 수수료 인하 문제와 편의점 문제를 첫 의제로 삼았다"면서 "대형유통업체 의무휴업 문제도 골목상권 보호와 노동자 건강권 등 민생 문제와 닿아 있어 민생연석회의에서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형유통매장 #대형마트의무휴업 #연중무휴 #복합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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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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