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재단 "개성에 남북결핵실험실 세우자"

"다제내성결핵 판별로 조기 치료 가능해야"... '제재 면제'에 대한 어려움 토로하기도

등록 2018.11.16 17:01수정 2018.11.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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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간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환자들. ⓒ 유진벨재단


매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유진벨재단이 북한 개성에 결핵표준실험실을 세우자고 제안하면서 한국 정부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유진벨재단은 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월 16일부터 11월 6일까지 북한에서 펼친 결핵 진단·치료활동 내용을 보고했다. 재단은 활동 중 북한 보건성으로부터 결핵검사실 지원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결핵치료 체계를 세우기 위해 민간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진벨재단이 내놓은 제안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인근에 남북이 국가결핵표준실험실을 세우고, 대한결핵협회와 결핵연구원이 실험실 운영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황해남·북도, 평안남도, 강원도 등 지역의 다제내성결핵환자를 신속히 진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개성이 적합한 이유는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돼 결핵진단장비 사용에 어려움이 없고, 남북한 전문가들이 교류하기 쉬운 곳이라 진단장비 사용법 등 치료법 전수가 빨리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실험실에서 결핵환자들의 가래침을 분석해 다제내성결핵 여부를 신속히 판별하면 결핵전염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제내성결핵은 결핵균이 치료약에 대한 내성을 갖춰 치료가 어렵다. 다제내성결핵 치료약을 써야 하는데, 북한에선 결핵 치료시 다제내성결핵 여부 판별 없이 일반(1차) 결핵약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다제내성결핵 환자라면 일반 약만 먹으면 치료가 어려울뿐더러 지속적으로 결핵을 전파하는 상황이 된다. 다제내성결핵 환자를 신속히 판별해 조기에 치료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유진벨재단은 기자회견에서 북한 내 결핵 약품 부족 사태를 예고하기도 했다. 재단은 "글로벌 펀드가 지난 2월 북한의 결핵과 말라리아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1차 결핵약 재고는 2020년 1분기까지, 다제내성결핵약제는 2018년 가을에 등록한 환자분까지만 남아 있다"며 "북한에 약을 보내려면 강화된 대북제재에 따른 해상 운송과 통관 검역 절차로 인해 약 9개월이 걸린다. 내년 상반기에는 약을 주문해야 결핵약 부족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단은 "항결핵제 공급이 중단된다면, 북한의 결핵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며 "남북 대화로 해결하든지, 국제기구나 민간단체, 어떤 채널을 가동해서라도 조속히 북한에 항결핵제가 지원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UN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위원회의 면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재단은 "프랑스와 캐나다의 민간단체는 국가의 도움을 받아 제재 면제를 승인 받았다"면서 "이 사안은 외교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만 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길 요청드린다"고 강조했다.
 

진엑스퍼트(GeneXpert) 장비로 환자의 다제내성결핵 양성 여부를 진단하고 있다 ⓒ 유진벨재단


제재면제 가이드라인 내놨지만... "미국은 '주춤' 한국은 '소심'"

지난 8월 UN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제재 품목이 포함될 경우, 서면으로 제재 면제를 신청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행지원정보 7호)을 공지했다.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어렵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면제 통로를 열었지만, 실제론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진벨재단이 현재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약품은 제재 품목이 아니어서 면제가 필요없다. 하지만 격리 치료가 필수적인 결핵환자의 치료를 위해 병동을 건립 중인데, 이에 필요한 건축 자재 중 알루미늄 섀시, 스테인리스 보일러 같이 금속 자재들이 제재 품목으로 분류돼 면제를 받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UN 가이드라인은 회원국뿐 아니라 비정부단체(NGO)도 UN에 직접 제재 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인세반(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은 "안보리에는 어떻게 감히 NGO가 정부 승인 없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느냐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멤버들이 있다"고 대북제재위원회의 면제 결정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인 회장은 실질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을 "미국의 '주춤'과 한국의 '소심'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병동 건축 자재에서 금속 부분을 빼고 보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에서 써야할 돈이 7~8배 많아지게 된다"며 "북한 정부에 외환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제재 때문에 결국 외환을 더 많이 써야 하는 모순이 커진다.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친 그물에 잡으려는 고기가 아니라 다른 고기가 걸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유진벨재단 #결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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