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오는 '바보 노회찬'

등록 2018.11.19 17:21수정 2018.11.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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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없는 국회...흐느끼는 심상정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현관 앞에서 열린 고 노회찬 의원 국회 영결식에서 조사를 한 후 돌아서며 흐느끼고 있다. ⓒ 남소연

 
부질없는 회한

까짓거 욕 한번 얻어먹고 견디지. 이 나라 정치판엔 더한 놈들도 수두룩한데. 아니 노회찬이 가장 청빈하잖아. 차라리 국민이 속사정을 알게 되면 시간 지나 이해했을텐데. 진보정치인의 처지가 얼마나 빈한했는지 곧이곧대로 드러날 수도 있었을텐데. 정의당도 그 정도 맷집은 있잖아. 생때같은 사람이 가다니. 이렇게 가다니.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의 비보를 접하고 장례식장에도 가기 싫었다. 왜 우린 매번 보내지 말아야 할 아까운 이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앞장세워야 하나.
 
"그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슬픈 생의 마지막 결단까지도 존중해야겠지만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잘못을 시정하되
사람을 살리는 운동문화, 정치문화, 사회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통렬한 자각과
잘났든 못났든 서로 살갑게 챙겨야 한다는
산 자의 이기적인 욕구가 휘몰아친 나날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추모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헌신적인 사람,
더구나 이리 어렵사리 키워낸 소중한 진보대중정치인을
이렇게 잃는 일은 다신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 당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서울노동권익센터 상근자들에게 보낸 주간메일 내용 중에서

 

투명인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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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의원 추모달력 드로잉. 정의당 장원호 당원(영등포)의 작품. ⓒ 이남신

 
6411번.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버스노선 중 하나가 됐다. "당대표가 되면 대표 선출 때 최고위원은 꽃다발을 하나 주는데 당대표는 세 개씩 주는 이런 불평등과 예산 낭비를 근절하겠습니다." 진보정치인다운 특유의 재치있는 화법으로 눙치며 좌중을 웃긴 노회찬은 6411번 버스를 호명한다.

2012년 10월 22일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 수락 연설로 구로동 거리공원에서 강남을 거쳐 개포중학교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진보정치의 화두로 떠올랐다. 매일 새벽 4시와 4시 5분에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출근하는 여성청소노동자들의 존재가 신선하고 아프게 다가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홀대받고, 시민권을 박탕당하다시피 잊힌 여성노동자들이 정치적 공간에서 비로소 주목받은 것이다. 용접공 출신 노동운동가 노회찬이었기에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청소노동자들은 가장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대부분 무노조 사업장이고 저임금과 일상적인 인권침해 등 전반적인 처우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공공부문과 대학을 중심으로 여성청소노동자들이 노조로 일부 조직화돼 있지만, 특히 민간부문은 절대 다수의 청소노동자들이 노동3권과는 까마득히 멀고 노동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만일 수십만 청소노동자들이 한날 한시 파업으로 일손을 멈출 수만 있다면 청소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시민들도 절감할 텐데 역설적으로 열심히 일만 하니 아무도 그 존재조차 잘 모른다. 남자 화장실에서 일하는 여성청소노동자를 봐도 모두가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무감한 것처럼.

유령처럼 취급받는 그림자노동. 가장 낮은 곳에서 쓰레기와 오물들을 치우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면서도 정작 자신은 비천한 취급을 받는 여성청소노동자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웃기는 소리다. 최근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날선 대립과 논란 속에서도 날것으로 드러난 것처럼 양극화된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를 향한 욕망은 두려울 정도다.

가장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하는 직종인 만큼 정부나 사회가 가장 우선해서 직업의 위상도 높이고 처우도 개선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늘 거꾸로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당대표로 선출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혜와 연민의 대상으로 여겨져온 여성노동자들을 구체적으로 호명해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의 본령에 대해 일깨워줬다. 6411번을 가장 먼저 부각시킨 연설문에는 그 누구보다 노회찬 자신의 고심과 결단이 배여 있었던게 아닐까.

노회찬을 배웅한 여성청소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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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당일 노회찬 의원을 떠나 보내고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 민주노총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는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국회에서 배웅한 이들은 여성청소노동자들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새벽 어스름 잠을 떨치고 일어나 강남의 빌딩을 청소하러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시내버스로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고단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아무도 모르게 귀가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어머니나 아줌마가 아닌 노동자로 호명한 노회찬. 3월 8일 여성의 날이면 국회 여성청소노동자들에게 잊지 않고 장미꽃을 14년째 선물해온 노회찬. 국회사무처가 공간 부족을 빌미로 여성청소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을 없애려고 했을 때 스스럼없이 자기 사무실을 함께 쓰자고 했던 노회찬. 오가다 만난 청소노동자들을 그냥 지나치는 일 없이 때마다 살갑게 인사 나눈 노회찬. 투명인간으로 취급받아온 여성청소노동자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진보정당을 가져가자던 노회찬.

눈시울 적시며 바로 그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가슴으로 배웅해준 여성청소노동자들이 또 다른 노회찬들이었다.

바보 전태일과 바보 노회찬

정규직 재단사로 비정규직인 '미싱보조 시다'들을 위해 한몸 바친 바보 전태일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한 KTX 승무원 복직 축하 인사를 마지막 공식 발언으로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나간 노회찬도 바보다.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 바보 전태일과 바보 노회찬은 동지로 함께 잠들어있다.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자기를 헌신한 바보들의 행진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인간다운 공동체로 진전돼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자취는 우리가 휘청거리거나 힘겨울 때마다 희망의 근거로 우리를 다독이고 있다.

노회찬이 남긴 10년 넘은 양복 두 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인 대한민국에서 배제당하고 차별받고 홀대당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처지가 노회찬의 삶을 통해 다시 투영되고 환기된다. 허울이 아닌 실질적 삶의 질의 개선.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 촛불민심이 갈망한 불평등 극복은 노회찬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정치하는 목적이기도 했다.

바보 전태일이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암흑 속에서 노동문제를 한줄기 빛으로 제기했다면, 바보 노회찬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최우선 선결 과제인 비정규노동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유지로 남긴 셈이다.

촛불항쟁이 있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은 고통스럽고 암울하다. 어쩌라고?

지금 제각각 자기가 선 자리에서부터 추모를 넘어서서 노회찬을 되살려야 한다. 1100만 비정규직 시대, 촛불항쟁으로 들어선 정부가 씨름하고 있지만 여전히 난망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진정성 있게 해나가려면 노회찬 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아야 한다.

노동존중시대 사명을 응시하며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한' 노회찬의 삶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붙들어야 할 때다. 오늘 새삼 노회찬을 떠올리는 이유다, 여성청소노동자를 비롯한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그 날, 노회찬 동지도 하늘에서 빙긋이 미소지을 것이다. 이미 도처에서 노회찬은 되살아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남신씨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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