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 1위는 '채용 정보와 실제 처우 불일치'

[현장] 직장갑질119, 갑질지수 발표... “100점 만점에 평균 35점, 정상이라면 0이어야”

등록 2018.11.19 18:23수정 2018.11.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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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직장갑질 지수 발표하는 직장갑질119 대한민국 직장갑질 지수 발표하는 직장갑질119 ⓒ 신지수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합니까.
업무와 무관한 체육대회, 단합대회, MT 등을 강요합니까.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카카오톡, 문자 등 SNS로 업무를 지시합니까.


대한민국 직장인 중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은 몇 명일까. 19일 한국 직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가 공개됐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직장갑질 지수'를 발표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전국 만19세~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한민국 직장갑질 지수는 35점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1년 동안 제보된 2만2810건의 사례를 바탕으로 ▲채용과정 및 노동조건 ▲폭언·폭행 및 성희롱 ▲차별 및 괴롭힘 ▲작업 및 노동시간 ▲승진·해고 등 인사문제 ▲조직문화 ▲출산·육아 ▲건강 및 안전 ▲노동 권리 ▲퇴직·해고 등 10개 영역을 구성하고 총 68개의 항목을 만들었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직장갑질이 심각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갑질에서 자유로운 걸까.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설명이다. 68개 항목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등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정상적인 직장이라면 (해당 조사결과) 0점이어야 한다"라며 "평균 35점이 나왔다는 것은 직장인 10명 중 3.5명이 직장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으로 심각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위는 '채용갑질'...'업무 외' 행사 참여·사적인 일 강요도 상위권

평균인 35점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한 항목은 전체 68개 중 37개에 달했다. 그 중 채용 과정에서 노동자가 겪는 '채용 갑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정보와 실제 처우가 불일치했다는 항목이 47.1점으로 1위였고 채용면접에서 제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44.4점을 기록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등 현행 법률에 따르면 보장돼야 할 사항들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시설이 없다(44점), 노동조건이 직원 동의 없이 불이익하게 변경된다(43.2점),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43.6), 법정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 한다(40점) 등의 항목이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

폭언·폭행 및 성희롱 부분도 눈에 띄었다. '상사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한다'는 26.3점으로 평균 점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숫자가 주는 충격이 크다고 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성희롱과 성추행은 1%~2%만 나와도 충격적인 것이다"라며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이 나와 심각하게 볼 여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으로 처벌하기에 모호한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하다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다(42점), 상사가 본인의 일을 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전가․강요한다(41.7점), 회사에서 원치 않는 음주․노래방 등 회식문화를 강요한다(40.2점), 체육대회․단합대회․MT 등 비업무적인 행사 등을 강요한다(40.2점) 등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단합대회, 체육대회, MT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한림대 성심병원 사태 같은 업무와 무관한 행사 참여 강요를 말하는 것으로 직장갑질119 제보의 상당수가 이런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할수록 갑질 심각... 민간 대기업·공공부문·외국계 기업도 점수 높아

갑질지수는 주52시간 장시간 노동을 하는 회사일수록 높게 나왔다. 민간 대기업·공공부문에서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외국계 대기업도 직장갑질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국내 기업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취업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정보와 실제 처우가 다르다', '채용 면접에서 제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 '회사가 가해자로부터 직원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부하직원을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다', '회사가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을 보호하지 않는다',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SNS로 업무지시를 한다' 등의 항목에서 모두 50점 이상을 기록했다.

조사에 응답한 외국계 기업 종사자는 13명밖에 되지 않아, 대표성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김종진 부소장은 "숫자가 적은 건 맞지만 13명 모두 한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라며 "아무리 표본이 적어도 점수가 50점 이상 나온 것은 현실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법사위에 묶여있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 급선무

문제는 조사 결과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항목 중 현행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상당수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그렇다. 권두섭 변호사에 따르면 폭언의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을 검토해볼 수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폭언·욕설이 둘만 있을 때 벌어져서 처벌하기 쉽지 않다. 또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특정인에게만 업무일지를 매일 쓰게 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화장실에 가고 커피 마시는 행동 등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문제 삼는 등 괴롭힘이 있을 때, 현행법으로는 방법이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제재하는 일명 '직장 내 괴롭힘 방지 3법'이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등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힌 상태다(관련 기사 : [팩트체크] 양진호 때문에 재조명된 이 법, 이완영이 막았다?).

권두섭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갑질을 해도 처벌받지 않았고 문제가 안 됐다"라며 "하지만 법안이 통과돼 징계를 받을 수 있고 법적 조치를 당할 수 있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직장갑질119가 제공하는 갑질지표(http://test-gabjil119.com)로 근무 중인 회사의 갑질 지수를 측정해볼 수 있다. 이번 갑질지표를 토대로 직장갑질119는 공공기관에 갑질지수 측정을 제안하는 한편 언론사․콜센터․자동차판매대리점 등 업종 노동자를 대상으로 갑질지수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직장갑질119는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 등 241명이 직장 내 부당한 업무지시, 갑질 등을 고발하기 위해 꾸린 민간 공익단체다. 지난해 11월 1일 출범했다.
#직장갑질119 #갑질지수 #직장갑질지수 #3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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