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악의 해 '서기 536년'? 간과한 것 두 가지

[김종성의 이 뉴스 진짜야?] 인간·사회의 노력으로 자연재앙 파급력 감소

등록 2018.11.21 09:58수정 2018.11.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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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500년 동안 가장 살기 힘들었던 해는 서기 536년'이라는 연구 결과가 하버드대학과 메인대학의 공동 연구에서 나왔다. 미국 시각으로 14일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실린 이 연구 결과가 국내 과학 전문지인 16일자 <사이언스 타임즈>와 19일자 <동아 사이언스> 등에 소개됐다.

540년 무렵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있었다. 대기근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노력이 1990년대부터 있었다.

그런 연구의 결과로, 1990년대에는 나무 나이테를 근거로 '540년에 지구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2015년에는 그린란드 및 남극 빙하를 근거로 '그 당시 대규모 화산폭발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기 중에 형성된 에어로졸 막이 태양빛을 차단해 지구 온도를 떨어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에 <앤티쿼티>에 발표된 연구는 스위스 빙하를 근거로 기존 연구를 보충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연구는 스위스에서 채취된 빙하 코어를 근거로 했다. 빙하 코어는 산소·수소·온실기체·화산재·금속원소·먼지 등을 담고 있다. 연구진은 이 속에 담긴 화산암 입자가 영국 서북쪽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의 결론은, 536년에 아이슬란드에서 화산폭발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연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5도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기후변화가 농업생산 및 보건환경에 영향을 미쳐 대기근과 질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화산폭발로 인한 구체적 결과가 <동아 사이언스> 및 <사이언스 타임스>에 이렇게 소개됐다.
 
"연구진은 536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재앙적인 수준의 화산폭발이 발생했으며, 유럽과 중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18개월간 낮에도 어둠이 지속됐다고 추정했다. ······ 인간이 기록을 남긴 역사 시대 중에서 가장 추운 시기였던 셈이다."
-19일자 <동아 사이언스> '인간이 생존하기 가장 어려웠던 때는 536년이었다.'
 
 

<동아 사이언스> 보도. ⓒ 동아 사이언스

 
 
"지구 곳곳에는 재난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한여름에 눈이 쏟아졌고, 농작물이 얼어죽었으며,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유럽의 아일랜드에서도 536년부터 539년까지 대기근이 이어졌다. 빵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다 541년에는 흑사병의 일종인 선페스트가 로마 치하에 있던 이집트 북동부의 펠루시움을 강타했다. 유스티니안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라 불리는 이 흑사병은 이후 급속히 확산돼 동로마제국 절반에 이르는 인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로 인해 동로마제국의 세가 급격히 약해지고, 얼마 안 있어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16일자 <사이언스 타임스> '인간 역사상 최악의 해는 536년.'
 
 

<사이언스 타임스> 보도. ⓒ 사이언스 타임스

  
인간이 자연환경 앞에서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었다

위에 인용문 중에 오류가 두 군데 있다. 첫째는, 536년부터 중국의 기후조건이 안 좋아진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안 좋았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았다.

대만(타이완) 기상학자 류자오민(유소민)의 <기후의 반역>에서는 420~600년 기간의 중국 기후를 설명하면서 "남북조에서 수나라 초기에 이르는 180년간의 기후는 진(晉)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매년 가뭄과 서리가 이어졌다"면서 "기후가 오늘날보다 추웠으며 소빙하기의 징후를 띠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536년 화산폭발이 중국의 기후 악화를 '초래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더욱 더 가속화시켰다'는 쪽으로 수정해야 바람직하다.

둘째는, 536년 화산폭발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한 동로마제국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상당히 어색한 설명이다. 오스만투르크는 1299년 세워졌고, 동로마제국은 1453년 멸망했다. 536년 화산폭발을 1453년 동로마 멸망으로 연결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화산폭발 당시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년)는 동로마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군주다. 이때는 동로마 영토가 최대한으로 팽창됐다. 536년은 물론이고 그 후로도 그의 정복전쟁은 계속됐다. 따라서 '536년 사건이 동로마 민중의 삶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쪽으로 수정돼야 바람직하다.

인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 외적인 요인들이다. 기후변화·화산폭발·지진·홍수·태풍·전염병 같은 요인이 인간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 많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 역사가 자연환경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력하나마 인간의 도전이 있었고, 그 결과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어느 정도나마 차단하는 일들이 많았다. 인간이 구축한 사회 시스템이 자연환경의 공격을 방어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일들만 봐도 그렇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장수태왕(태왕이 정식 칭호)의 증손자인 안원태왕이 임금 자리에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536년과 537년에 고구려는 대기근으로 고생했다.

민간경제의 곤란이 같은 시기 중국에도 있었다. 북중국 강국인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분열된 지 6년 뒤인 540년 여름이었다. <기후의 반역>에 따르면, 이때 북중국에서는 폭설이 내렸다. 여름에 기상이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를 두고 북중국인들은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 닿은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전부터 계속돼온 이상 기후로 농업생산이 부진한 상황에서, 동위 황제가 10만 군대를 동원해 건설공사를 추진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하늘의 징벌로 여름에 폭설이 내렸다고 사람들은 해석했다. 이처럼 당시 중국은 경제도 안 좋고 민심도 어수선했다. 
 

화산폭발. ⓒ 위키백과 영문판(퍼블릭 도메인)

  
위기에 대처하는 동아시아 각국의 노력

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동아시아 각국의 노력이 나타났다. 내부 정비 혹은 숨 고르기 같은 양상이었다. 고구려 안원태왕은 536년부터 기근 구제에 주력했다. 특사를 지방에 파견해 백성 구호에 힘썼다. 백제에서는 중흥군주 성왕이 538년에 사비성(충남 부여)으로 도읍을 옮겼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36년 일본에서는 센카 일왕(천황)이 도읍을 옮기는 한편, 흉년에 대비하는 백성 구호 시스템을 정비했다. 중국에서는 남중국의 양나라가 북중국과의 전쟁을 멈추었다. 북중국의 동위와도 화친을 체결했다.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인류가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는 이처럼 내부가 정비되고 정치적 긴장이 이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쟁이 빈발했던 고대 세계에서, 정치적 긴장이 이완되면 민중이 전쟁에 동원될 일이 그만큼 적어졌다. 기후조건은 안 좋았지만 정치상황은 개선됐으므로, 민중의 생존조건이 역사상 최악으로 떨어지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신라다. 북중국이 서위와 동위로 분열되고, 북중국과 남중국의 긴장이 이완되고, 고구려가 기근 구제에 힘쓰고, 백제가 내부 정비에 신경 쓰고, 일본이 내부 정비에 주력하는 틈을 타서 신라 법흥왕은 536년에 독자적 연호인 건원(建元)을 선포했다.

'서기 몇 년'이나 '청나라 건륭제 몇 년'이 아닌 '단군 몇 년' 하는 식의 자기 연호로 연도를 계산하는 것은 자국이 천자의 나라임을 천명하는 방법이었다. 신라가 그렇게 한 것은 이 당시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증표다. 고대에는 이것이 군주의 치적으로 간주됐다. 그런 선포를 할 수 있을 만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버드대 및 메인대 학자들은 536년부터 여러 해 동안 인류 역사상 최악의 상태가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그 같은 자연환경에 맞선 인류의 도전은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졌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 경제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적으로 진행됐다.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적 낙오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복지 시스템이 정비되거나 국가간 갈등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연조건 악화가 민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전개됐던 것이다.

536년 재앙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방식은, 좋은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바깥 날씨가 춥더라도 집이 든든하고 따뜻하면, 인간은 추위의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낙오자를 구제하고 국제적 긴장을 이완하는 등의 노력은, 자연환경의 악화에 맞서 인간의 생존조건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연과 우주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회 시스템은 외부 환경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대한 보수세력의 훼방을 물리친다면, 536년 화산폭발 이상의 대재앙이 발생하더라도 인간은 충분히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화산폭발이 없더라도 인류의 생존조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및 메인대에서 날아온 이번 뉴스는 536년 화산폭발이 기상조건 및 농업환경에 미친 영향을 보다 정확히 알려주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뉴스이지만, 인간과 사회의 노력 덕분에 자연 재앙의 파급력이 감소됐다는 점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더 보충을 요하는 뉴스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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