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무마' 지시 거부했다가, 성추행범 된 여군 소령

[군대가 '송곳'을 다루는 법 - 상] 내부고발 조사하지 않고 내부고발자 신상털기

등록 2018.11.27 16:08수정 2018.11.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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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은 어렵다. 특히 군인이 내부고발을 결심하려면 군복을 벗는 것도 함께 각오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군대가 '송곳'을 다루는 법, 그리고 그 문화를 공고히 떠받치는 구조를 취재해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말]
[기사수정 : 27일 오후 5시 10분]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라.'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흔들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흔히 '상황 반전을 위한 공식'처럼 사용되는 말이다. 내부고발자, 특히 폐쇄적 구조의 군대 내 내부고발자에게 너무도 혹독한 공식이다. 

2015년 7월, A 소령(여)은 동료 여군과 함께 상관인 B 대령(남)의 호출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A 소령은 B 대령에게 다소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당시 같은 부대에 C 대위가 민간인 여성의 다리를 불법 촬영해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B 대령은 A 소령과 동료 여군에게 C 대위의 누나로 가장해 피해자와 합의하라고 지시했다. A 소령은 이를 거절했다.

"누나인 척 합의해라"는 지시 거부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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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 특히 폐쇄적 구조의 군대 내 내부고발자에게 너무도 혹독한 공식이다. ⓒ pixabay


이후 군 검찰은 C 대위의 성범죄 사건을 "피의자(C 대위)가 초범이고 피해자가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했다"라며 기소유예(재판에 넘기지 않음) 처분했다. 그러나 A 소령에게는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B 대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한 달 후인 2015년 8월, 3사관학교 강사 2명이 A 소령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2015년 9월)에는 교수부장인 D 준장이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직에 저해가 되는 교수'를 의무적으로 적어내도록 했다. 이를 A 소령은 B 대령의 지시를 거부한 자신을 겨냥한 설문조사로 느끼고 큰 압박을 받았다. 이 같은 설문은 몇 달 뒤(2016년 2월) 또 실시됐다. D 준장은 이후 이 같은 설문조사 의도에 관해 "끝까지 적지 않은 교수들에겐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준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사관학교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던 A 소령은 3사관학교로부터 경고장을 받은 뒤 학과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A 소령은 자신이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3사관학교 내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A 소령은 결국 2016년 10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 B 대령의 '성범죄 합의 지시'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자 B 대령은 A 소령이 과거 회식자리에서 남성 후임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문제가 있었다며 육군본부 감찰실에 '맞신고'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감찰실은 앞서 A 소령에게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강사 2명의 주장과 함께 A 소령과 B 대령의 주장을 뭉뚱그려 조사를 실시했다. 성범죄 합의 지시와 관련해 B 대령은 "주간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A 소령이 자청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B대령이 개별적으로 두 여군을 불러 합의를 지시 또는 부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추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다소 의아한 처분을 내렸다. 국방부는 "성범죄로 인한 학교 위신 추락을 막기 위한 의도" 등을 이유로 "육참총장은 B 대령에게 서면경고 조치를 내리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육군본부도 "엄중 문책해야 하나 그간의 공적을 참작했다"라며 B 대령에게 서면경고를 내리는 데 그쳤다. 반면 A 소령은 육군본부로부터 감봉 2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엔 고소전이 펼쳐졌다. A 소령은 지난해 6월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몰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B 대령과 남성 후임을 고소했다. 이에 B 대령과 남성 후임은 지난해 6~8월 맞고소로 대응했다. 이 중 군 검찰은 A 소령만 남성 후임에 대한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결과는 무죄였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달 A 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사건 후 3년 동안 A 소령은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학과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2017년 3월부터는 더 이상 교단에 설 수도 없었다. 다른 부서로 옮겨진 그에게는 외딴 사무실의 책상 하나만 주어졌다.

무죄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군사법원도 회식 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증언을 근거로 "A 소령이 남성 후임의 허벅지를 수차례 만졌고 남성 후임이 성적 굴욕감을 느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재판부는 A 소령이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몰아갔다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일부러 거짓 고소를 한 것은 아니지만, 성추행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A 소령은 남성 후임을 성추행한 사실이 없으며, 회식 참석자들의 진술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B 대령이 직접 성추행 사실을 목격하지 않았음에도 일치하지 않는 회식 참석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몰아갔다고 호소 중이다.

현재 A 소령은 전역 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오랜 기간 강의를 하지 못해 진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가, 그동안 겪은 일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군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A 소령은 무죄에 대한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을 진행중이다.

유명무실한 신고자 보호 조항

국방부 훈령인 '부패방지 및 내부공익신고 업무 훈령'에는 "신고자가 불이익조치 등의 구제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원상회복 등에 관한 소를 제기하는 경우 해당 신고와 관련해 불이익을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나와 있다(제12조의2). 그러면서 "신고자 또는 협조자에게 불이익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고 있다(제12조). 

이는 내부고발자가 문제 제기 후 당하는 불이익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국방부 훈령뿐만 아니라 '부패방지권익위법' 등 대부분 내부고발 관련 법률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선 전혀 적용되지 못했다. 내부고발자에게 주어진 불이익이 사건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별 도리가 없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군인권센터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육군 모 사단의 E 대령은 전 사단장인 F 중장을 상대로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2011년 8월 사단에서 병장 한 명이 익사했는데, F 중장이 이 사건을 '후임을 구하다 숨진 영웅담'으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E 대령의 반대에도 이 민원을 국방부 감사실에 넘겼고, 국방부 검찰단이 조사에 들어갔다.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F 중장은 "E 대령에 의해 조작될 뻔한 사건을 조기에 차단하고 바로 잡은 사건"이라며 혐의를 부인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F 중장을 상대로 압수수색 등 어떠한 강제수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은 F 중장이 E 대령을 무고 혐의로 고소하자 그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곧장 압수수색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E 대령은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현재 항소한 상황이다.

이러니 무서워서 어떻게 내부고발 하나

열거한 사례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여러 군대 내 내부고발자들은 비슷한 유형의 벽과 마주한다. 의도치 않게 신원이 공개되거나, 결국 자신이 조사·수사 선상에 올라가 징계·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부패방지권익위법, 국방부 훈령 등의 취지에 따르면, 무고가 아닌 이상 내부고발자의 신고를 우선 취급하고 그를 보호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군납비리 내부고발 후 결국 전역한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하는데, 군대는 가장 먼저 문제 제기에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때문에 신고 내용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군형법의 상관모독죄, 무고죄 등을 떠올려 별건 조사를 벌인다"며 "신고자에 대한 먼지털이식, 신싱털이식 조사가 그 이후의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 역시 "대개 내부고발은 하급자가 상급자를 고발하는 형태인데, 군은 이를 상관에 대한 음해의 관점으로 다가간다"라며 "특히 군의 특성상 지휘관이 수사기관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의 입김 또는 지휘관의 내심에 따라 수사기관이 역으로 고발자를 먼저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누가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그는 "법과 내부 훈령에 따라 투명하게 내부고발 내용을 조사하겠다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다르지 않나"라며 "주변에 내부고발을 했다가 당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게 학습효과가 돼 두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내부고발을 못하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김 소장은 국민권익위원회가 E 대령의 사건을 국방부로 넘겨버린 사례를 지적하며 "내부고발 사건은 '행정 마인드'로 풀어가면 안 되는데 그냥 일반 민원처럼 생각한 것이다,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군은 익명 제보의 경우 조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보한 사람을 색출해 속된 말로 작살을 내는 문화가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다"라며 "일반 공무원과 달리 군은 진급하지 못하면 결국 군복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선 '모든 걸 다 버리고 군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 아니고선 내부고발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 "군대에서 내부고발하고 잘 된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군인 #내부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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