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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대 해 죽이고... 이에 분노하던 상담사에게 닥친 일

[TV 리뷰]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18.11.24 16:43최종업데이트18.11.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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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푸른 해 ⓒ MBC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시 '문둥이' 중


지난 21일 첫 방송된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역설적인 제목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운동장에서 달리기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전력으로 질주한다. 소란스러움도 잠시,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얼싸 안고 기뻐한다. 하지만 1등으로 골인한 아이는 홀로 서 있다. 어느덧 아이는 계단 위에 서 있다가 자신의 몸을 날린다.

결국 아이는 상담센터에서 우경(김선아 분)를 만난다. '햇살'이란 태명의, 어린 딸이 기다리는 남동생을 가진 만삭의 우경은 자상한 IT업체 대표를 남편으로 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상담하러 온 아이 시완이 말한다. "좋은 게 아닌데, 죽었으니까." 교통사고로 죽은 우경의 동생을 일러 하는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그로부터 2회 엔딩까지, 우경은 아이도 잃고 남편도 잃고 무엇보다 자신을 잃었다.

아이를 학대해 죽이고 그 시체를 불에 태웠다는 잔혹 범죄. '아이'를 상담하는, 아니 그 이전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던 우경은 주변의 아는 엄마들과 함께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까지 나섰었다. 그랬던 그녀가 자동차 전용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그만 보지 못한 채 치어 죽이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에 보인 아이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대여섯 살 또래의 여자 아이였는데, 막상 사고를 당해 죽어 있는 아이는 남자 아이였다. 그 일로 인해 같은 또래인 자신의 딸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사고'의 진실, 아이의 정체에 집착하는 우경.

그런 가운데 우경이 1인 시위에 나섰던 그 사건의 엄마가 자동차에 탄 채 불길에 휩싸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죽은 이는 얼마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그녀의 출소 당일, 그녀를 규탄하는 시위대 행렬을 교도소 앞을 메웠지만,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드라마는 '의문의 죽음, 그것도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그물을 펼친다.

아들을 죽였다던 여자의 가족사진 뒤에서 발견된 문구는

 

붉은 달 푸른 해 ⓒ MBC

 
그리고 그 그물에, 서정주의 시 한 자락을 걸친다. 우경의 차에 죽은 소년의 운동화 깔창 아래서, 그리고 아들을 죽였다던 여자의 가족사진 뒤에서 발견된 문구는 바로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 '보리밭에 달 뜨면'이다. 그 시구의 뒤에 이어진 말은 '애기 하나 먹고', '미스터리한 아이의 죽음'은 서정주의 시구, '아이 하나 먹고'로 이어진다. 드라마의 <붉은 달 푸른 해>의 역설적 어구는 첫 연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와 맥락이 닿는다. 그렇게 드라마의 사건은 시를 통해 상징되고, 다시 시는 의문의 사건에 '해석'의 결을 댄다.

이렇게 시를 통해 '상징'의 나래를 편 드라마는 3,4화에 이르러 그 시적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결국 자신이 차로 친 소년에 대한 집착, 결국 해프닝이 된 딸의 실종은 우경의 뱃속 아이를 빼앗아 간다. 그리고 늘 든든한 보호자였던 남편까지도. 그렇게 우경의 가정이 부서지는 동안,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등장한다.

고가 다리 아래 방치된 차 안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가장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남자의 아내 동숙(김여진 분)의 태도가 수상하다. 남편의 시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지금 직장의 일자리에 연연하던 아내는 죽은 남편이 남긴 돈다발에 눈을 희번덕인다. 그런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 온 집안을 뒤집어 찾아낸 건 보험 증서. 그 증서를 들고 아내 동숙은 웃음을 토해낸다. 그런 동숙의 웃음 위로, 칼을 들고 남편을 향해 달려가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우경의 모습이 교차된다. 그리고 서정주의 시 <입맞춤>,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가 나타난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트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의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산노루 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강물은 서천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맞춤은 오오 몸소리친
쑥나물 지근지근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서정주의 시를 얹어 더욱 모호해진 도현정의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 ⓒ MBC

 
<붉은 달 푸른 해>의 도현정 작가의 전작이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임을 안다면, 이 드라마가 뿜어내는 상징의 향연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속에 숨겨진 가족의 비밀을 찾아 그 이름부터 묘한 아치아라 마을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 분). 그곳에서 그녀는 마을의 권력자로 행세하는 서창권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감지한다.

하지만 그녀가 찾던 언니는 정작 '백골'로 돌아오고, 그 '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마을이 덮고 있던 부도덕한 음모의 폭로로 이어진다. <붉은 달 푸른 해> 속 서정주 시처럼, 안개에 뒤덮인 마을과 비밀을 품은 사람들 그 자체가 '미스터리'의 퍼즐 조각이 되어 지방 토호의 권력으로 뭉개진 그리고 그 속에서 춤추는 인간의 욕망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던 도현정 작가의 내공이 <조감도> 최정규 피디와 <남극의 눈물> 송인혁 촬영 감독을 만나 다시 한 번 날개를 편다.

드라마는 한 아이의 알 수 없는 자해로부터 시작되어,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파생된 환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히스테릭한 파멸에, 뜻밖에 등장한 가장의 죽음에 환호작약하는 아내로 받아친다.

그러면서 <붉은 달 푸른 해>가 내비치고 있는 붉지 못한 해와 푸르지 못한 달, 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부모와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한 아이라는 '아이러니한 관계와 존재의 문제'를 제기한다. 거기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부모의 사건, 또 어머니를 다시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아버지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들이 맞물리며 드라마의 박진감을 더한다.

또한 일찍이 <내 이름은 김삼순> 김삼순 이래 2017년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 2018년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까지, 김선아의 열연 그 자체만으로도 <붉은 달 푸른 해>는 보는 재미의 충분조건이 된다.

그에 더해 마지막 엔딩에서 마치 미친 듯한 웃음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꽉 잡아버린 동숙 역의 김여진 등 발군의 호흡이 더해지며 2018년을 마무리할 '명작'의 탄생을 알린다. 최근 종영한 OCN <손 the guest>의 부재가 아쉬운 장르 드라마 팬들에게는 '반색'할 소식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붉은 달 푸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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