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군산과 거위를 이은 장률 감독, 그의 판단이 놀랍다

[김유경의 영화만평] 생물적 삶의 부침을 보게 한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18.11.24 17:21최종업데이트18.11.24 17:22
원고료로 응원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이 영화 매력 있다. 스토리는 해석에 갇혀 있어 안 본 상대에게 의미 전달이 어렵다. 영상은 난데없이 압도적이라 보다가 문득문득 군산 가서 어슬렁거리며 기웃기웃하고플 정도다. 우선 앵글 맞춘 군산의 가옥들에 들어서고 싶다. 겉에서 보면 그저 그러한데, 너른 바다나 하늘을 향해 트여 있는 겹의 구조다. 마치 소통을 원하나 속내를 싸맨 윤영(박해일 분)과 송현(문소리 분) 같다.
 
그나저나 군산과 거위가 뭔 상관인가. 사실 그걸 탐문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영화에서 명목상의 거위는 둘이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전자는 윤영의 아버지가 집 화단에서 키우는 거위다. 후자는 영화 제목으로 풀어 쓴 중국 고대의 시 '영아(咏鹅)'의 거위다. 두 거위 모두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갇혀 있다. 깃털은 어쩌다 점프용에나 쓰이고, 발은 착지용일 때가 드물다. 그러니 그 삶이 애매하다.
 
송현은 윤영에게 매사 애매하다고 놀리듯 타박한다. 명색 시인인데 시 쓰기도 접은 듯하고, 이름만으로는 남잔지 여잔지 구분하기 어렵고, 꿍해서 속을 모르겠다면서. 게다가 난데없이 거위 춤을 추어 이목을 집중시키질 않나, 본토인처럼 중국어가 유창하질 않나, 백수면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지는 않고 용돈벌이로나 관여한다. 그렇듯 중뿔나니 지금 여기에 뿌리 내리기 어렵다. 문제적 윤영이 거위란 암시다.
 
장률 감독이 보여주는 다양한 거위들의 모습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윤영만이 아니다. 장률 감독은 일상 도처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거위들을 보여 준다. 사업에서 손 뗀 뒤 살맛을 잃어 영아를 읊으며 풀을 먹는 윤영의 아버지(명계남 분)는 거위에게 감정이입한 상태다.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조선족 가사도우미(김희정 분)의 불안정한 처지도, 과거에 젖어 지금 여기를 초월한 듯 보이는 칼국수집 여주인(문숙 분)도, 엄마가 죽은 후 자폐증을 앓는 민박집 딸 주은(박소담 분)도, 돌싱이 되어서도 전남편 여친(정은채 분)에게 행패를 부리는 송현도 애매한 시공을 살기는 매한가지다.
 
그렇게 보면 군산이란 공간도 거위스럽다. GM이 떠난 후 경기가 죽자 호황이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딱한 처지다. 군산과 거위를 연계한 영상 미학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지역 경제의 생물적 부침을 띄운 장률 감독의 영화 문법에 큰 박수를 보낸다. 왜 그를 그 바닥의 존칭어일 시네아스트(cineast)라 부르는지 비로소 알아본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구성은 홍보용 포스터에 드러나듯 '군산이몽' 로맨스 중심이다. 후(後)를 잇는 전(前)의 역순으로 진행된 시간 배열이 러닝 타임 반반이다. 로맨스 중심으로 보니 두 주연 캐릭터의 완성도가 높다. 언제적 문소린데 천연덕스러운 송현이 상큼하다. 나름 강고함을 내뿜어 틀진 윤영을 잘 빚은 박해일의 굵은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런 두 배우의 케미가 내겐 의외다.
 
윤영을 "영아"라고 부른 사람은 둘이다. 죽은 어머니와 송현이다. 중국 고시 '영아'와 "영아" 호명을 오버랩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평소 슬퍼 보였다는 어머니의 호명에는 자식의 거위스러움을 꿰뚫은 모성의 측은지심이 담겨 있다는 식이다. 반면 송현의 호명은 일시적인 장난기여서 '군산이몽'의 복선이다. 그래서 윤영이 송현 대신 아가 인형을 들고 다니며 일본 동시 '엄마'를 부르는 주은의 얼굴을 매만지는 귀결은 낙관적 변화다. 주은이 자폐증을 떨치고 아버지와 형사에게 입을 연 게 군산에게 좋은 변화로 여겨지듯.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스틸 컷. ⓒ 트리플 픽쳐스


영화에서 윤영은 애매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언행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약사(한예리 분)에게, 치과의사(이미숙 분)에게 묻는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상대에게 덫을 놓는 몸짓이다. 인생이 우연의 덫에 걸려 짓는 필연의 연속이라면, 윤영은 자기를 날게 할 우연을 찾아다니는, 꿈을 꾸는 거위인 셈이다. CCTV를 통해 민박 손님을 고르다 윤영을 발견한 주은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지고파 꿈틀대는 나도 그렇다.
 
문득 가수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 생각난다. 윤영을 위시해 누구나의 꿈일 수도 있는 일부를 복창한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이 무거운 세상도/나를 묶을 순 없죠/내 삶의 끝에서/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