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파' 현상에 대한 탐구

[서평] 전남대 철학 교수 박구용 지음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

등록 2018.11.29 08:20수정 2018.11.2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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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대통령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해 아들의 취업특혜 논란을 제기하고 최성 전 고양시장에 폭언을 했던 속칭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의혹 제기가 끝이 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철희 의원을 비롯한 일부 민주당 비문 의원들마저 이재명 지사에 대한 비판에 나서면서 사건이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지사와 혜경궁 김씨를 둘러싼 논란은 다른 정치인에 대한 논란과 달리 독특한 점이 있다. 논란에 불이 붙게 된 원인이 다르다.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논란은 보통 다른 정당이나 국회의원에 의해 제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재명 지사와 혜경궁 김씨 논란은 기본적으로 당내 논란으로 외부 정당이나 특정 의원에 의해 불이 붙었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이를 두고 '작전 세력'의 개입으로 보거나, '친문vs비문'의 구도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문파'가 그랬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들이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을 보고 분노하여 주인 찾기에 나서 범인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한국일보의 이충재 수석논설위원은 '이재명 경기지사 사태의 발단도 문빠의 폐쇄성이라는 것이 정설'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런 논란을 지켜보면, 이재명 지사에 대한 논란의 진위는 차치하고서라도, '문파'라는 현상이 있고 이것이 꽤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문파,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문파새로운주권자의이상한출현 ⓒ 박구용


여기, 문파에 대한 책이 한 권 있다. 한 권의 책으로 문빠(파)에 대한 모든 설명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문파임을 자부하거나 문재인 대통령을 매개로 민주주의와 시민주권을 지키기를 바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는 높여줄 수 있는 책이다.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의 저자인 박구용씨는 전남대학교 철학 교수이다. 저자는 문파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불필요한 적대감과 출처 없는 분노를 줄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문파를 한국 정치의 낡은 판을 바꿀 수 있는 사건으로 본다.

저자는 우선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의 팬덤인 '문빠'와 '문파'를 구분한다. 이 책에서 그가 언급하는 '문빠'는 '정치 지도자 문재인의 정치 팬덤'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파'는 약간 성격이 다른데, '문재인의 정치를 매개로 시민 주권을 활성화시키는 정치 현상'을 지칭한다. '문파'의 경우 문재인은 의회와 광장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 책의 입장이다.

저자는 문파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책은 문파라는 조직은 실재하지 않으며, 때문에 이들도 문재인 대통령에 공격적인 이들에게 배타적인 문파, 포용적인 문파, 포괄적인 지지자인 문파, 부분적인 지지자인 문파 등 다양한 지지자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파는 없다. 실재하는 조직으로서 문파는 없다. 제도로서 형체를 갖춘 문파도 없다. 실체로서 문파도 없다. 그러나 문파는 작동한다. 정당과 의회를 점령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언론 매체와 공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기자들과 여론 주도자들을 신문하고 탄핵하는 위력을 보인다. 문파는 실체 없이 작동하고, 존재 없이 작용한다. 문파는 현상이다. -14P
 
문파는 출현하는 문파마다 현상이 가지각색이라, 한 마디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문파는 의회와 언론에 의해 수동적으로 대변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신문한다. 진보적인 언론으로 알려진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시민의 광장과 의회, 두 곳의 교차로에 서 있다.

문파 현상의 발생 배경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국가의 주권자인 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한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프레젠테이션은 자신의 생각과 기획을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레젠테이션된 의견과 의지를 의회와 언론이 대변하고 대행하는 것이 리프레젠테이션(representation)이다. 시민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서 의견을 모으고, 의회와 언론은 이를 취합해서 대변하는 구조다.

그런데 사이비 민주주의에서는 이 두 가지가 뒤바뀐다. 의회와 언론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시민들이 그 의견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주주의는 당연히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고, 저자는 자본 귀족주의가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의회와 언론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시민 스스로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매체와 정치를 만드는 흐름이 발생했고, 이런 흐름에서 등장한 것이 문파라고 본다.

물론 이런 문파에 대해서 '박빠(박근혜 지지자)'와 똑같아서 민주주의에 해가 되며, 손가락질 당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박빠와 문파는 다르며, 자신이 박근혜와 문재인을 똑같이 보면서 문파에게 진보의 이름을 빌려 비판적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고해성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문파들이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하기 보다는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참으면서도 주권자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빠에게 박근혜는 공주이자 왕비이며 왕이었고, 여전히 자신들의 주인이며 주체다. (중략) 문빠, 혹은 문파에게 문재인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소통과 연대의 끈이다.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 차이를 무시하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사람이다. (중략) 이들의 비난에 못 이겨 고해성사를 해서는 안 된다. 거꾸로 이들의 기만을 따져 물어야 한다. -65P
 
이 책에는 민주당과 민주정부를 차악으로만 바라보고 마지못해 '비판적 지지'를 논하던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딘가에 있을 푸른 초원을 상상하며 현재 딛고 있는 초원을 짓밟는 것은 무지이며, 더 훌륭한 지도자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지금 선택한 정치 지도자를 홀대하는 것은 추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보수화되었다고 비판했던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 민주당 내 영남패권주의를 주장했던 일부 지식인에 대한 비판 등이 있다. 저자가 자신의 사상을 돌이켜본 부분도 있어 흥미롭다. 논조는 일관되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비교적 우호적인 편이다.

저자는 문파는 민주주의의 병적 증후가 아닌, 병적 증후의 치유 과정이라고 했다. 물론 문파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현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저자도 문파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파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문파는 일부 지식인들의 진단처럼 단순한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는 것. 만약 문파가 사이비 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시민 주권의 에너지를 찾아서, 그 에너지를 건강하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문파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정치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진정으로 싶어 하는 말이다.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

박구용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8


#문파 #문빠 #문재인 #정치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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