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술 마시고 싸우면 제 가슴이 깨져요"

[맑음! 충남 유아교육⑤] 서천 시초초병설유치원의 유아성장발달 위한 '특별한 대화'

등록 2018.11.27 10:18수정 2018.11.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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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시초초병설유치원에는 만3~5세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 정세연

 
"아빠가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제 마음이 참 좋아졌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술을 마시고 싸울 때는 제 가슴이 깨져요. 가슴이 깨져도 혼자서 저절로 붙어져요. 가슴이 깨지는 걸 엄마 아빠한테는 말 못 했어요, 무서워서요."

선생님이 부모님께 대신 말해주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아이는 곧장 좋다고 화답한다. 아이는 언제 전화해줄 수 있냐고 재차 확인하며, 엄마 아빠 사이가 좋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웃어 보인다.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 들을 수 있는 시간


"아빠가 술, 담배를 끊으셔서 저랑도 친해졌어요. 너무 행복해요."
"저는 할머니 어깨 두드려주는 걸 잘해요."
"새로운 친구랑은 두 밤 정도 자면 친해질 수 있어요."
"저는 제 얼굴이 조금 마음에 안 들어요. 선생님은 선생님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 아빠는 개구쟁이에요. 아빠랑 신나게 놀 수 있어요. 황소개구리를 잡았는데 눈이 엄청 컸어요. 황소개구리는 뱀도 잡아먹어요, 아빠가 알려주셨어요."


충남 서천의 시초초등학교 병설유치원(교장 조성업) 권소현 교사는 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아이들과 특별한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올해로 임용 2년 차를 맞은 권 교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평가의 필요성을 느꼈다.

"충청남도교육청에서 만든 누리과정 5개 영역(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에 대한 검사 도구가 있어요. 그래서 그 검사 도구지를 가지고 관찰, 평가를 했는데 아이들과 1년 생활하다 보니 좀 더 세밀하고 체계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학교 때 실습했던 부속유치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평가 자료를 빌려와서 평가를 하고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평가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면담은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 총 두 번 진행하는데 주로 방과 후에 이뤄지다 보니 여러 차례 나눠서 대화를 하고 있어요."

특히, 사회관계 영역의 자아개념 검사는 인지적 요인, 정서적 요인, 사회적 요인, 신체적 요인의 네 가지 요인으로 구성되며, 각 요인 별로 10개씩 총 40개 문항으로 구성, 2회로 나누어 개별 면담을 진행한다. 질문에 대한 유아의 생각을 '좋아요, 싫어요, 좋지도 싫지도 않아요'의 3가지 반응으로 응답하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가족 관계에 대해서 물어볼 때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은지는 꼭 물어봐요. 그게 아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거든요. 그러면 술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또 특별히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이들이 술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술 드신 후에 부모님의 행동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 아빠 마음 다칠까 봐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애들도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다 생각해요. 아이들이 하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학부모 상담 때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해요. 그래서 부모님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면 좋겠어요."
    
 

서천시초초병설유치원 유아들의 예술표현 활동. 동극 '검피아저씨와 뱃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 정세연

 아이들이 마냥 좋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유아교육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 그녀는 처음엔 학자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다 학자의 길이 워낙 좁으니 교사로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임용시험을 보고, 고향 군산을 떠나 서천으로 오게 되었다.


"아이들이 그냥 예뻐요. 제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부모님 보시기에 얼마나 예쁠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어요. 말하는 것도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아이들 덕분에 행복하게 웃으면서 일하고 있어요."

서천 시초초병설유치원에는 만3~5세 모두 열다섯 명의 유아들이 생활하고 있다. 서천군은 충남의 여러 시군 가운데 유일하게 단설유치원이 운영되지 않는 곳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적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저희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에요. 서천에서 가장 큰 서천초병설유치원을 제외하고 다른 병설유치원들은 대개 5~8명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요. 현재 저희 유치원에는 만3세 2명, 만4세 4명, 만5세 9명의 유아들이 있는데, 만5세 아이들이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아마 서천의 모든 유·초·중·고등학교가 비슷한 고민을 할 거예요."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쇠퇴, 문화적인 센터가 없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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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구영역에서 물에 뜨는 것과 뜨지 않는 것 실험한 부분 ⓒ 정세연

 
서천 시초초등학교를 1972년도에 졸업하고 작년 9월 처음 모교로 발령이 난 조성업 교장은 '1면 1학교'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서천군 내 초등학교의 통폐합을 지켜봐 온 그이기에 걱정이 더욱 크다.

"학교가 없어지면 마을은 쇠퇴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 책 읽는 소리가 생활환경의 중요한 여건이거든요. 학교가 없어지고 아이들이 다니지 않으면 마을이 적적해지고 인구도 금방 줄어들어요. 문화적인 센터가 없어진다고 봐야죠."

작은 규모의 학교를 통폐합한다고 해서 합쳐진 학교가 잘 운영되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통폐합을 경험한 학교의 아이들은 읍내의 큰 학교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죠. 반대로 아이들이 있으면 그만큼 마을이 살아있다는 뜻도 되는 거예요. 마을에서 학교가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유지되었으면 하는데,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1922년 개교한 서천 시초초등학교는 충남형 혁신학교인 행복나눔학교이자 자율학교, 마을교육선도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천 시초초등학교에는 91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충남 서천의 시초초등학교병설유치원(교장 조성업) 권소현 교사는 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아이들과 특별한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 정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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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운동 건강 - 몸 지탱하기, 앉아서 몸 앞으로 굽히기, 멀리 뛰기, 모둠발 뛰어넘기 ⓒ 정세연

 
#유아교육 #충남 #서천 #시초유치원 #누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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