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에게 500만원 현상금 건 사람들

[현대판 추노 ①] 선주협회와 인력송출업자들의 전단지

등록 2018.11.28 10:07수정 2018.11.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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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주인집 등에서 무단이탈을 하거나 도망친 노비를 수색하여 체포하는 일, 추노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었다. 민간인이 추노를 하면 추노꾼, 관노와 관기 등이 추노를 하면 추노관이라 불렀다. 그런데 추노관 행세를 하는 추노꾼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있다.

"이거 경찰이 붙인 게 아니에요. 요즘 외국인 마트나 인도네시아 식당에 가보면 이런 전단지를 벽에 붙여놓고 있어요. 한국에서 이래도 돼요?"

격앙된 목소리로 이래도 되는지를 물은 이는 인도네시아 선원이주노동자 깝뗀이었다. 그는 한국에 와있는 인도네시아 선원이주노동자들 공동체 대표다. 그가 화가 났던 이유는, 이른 새벽 전화에 앞서 그가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온 전단지였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현상금 500만 원을 내건 전단지 이름, 본국 주소, 신체 특징 등과 함께 연락처, 현상금 규모 등이 적혀 있다. ⓒ 고기복

 
"전화 한 통으로 현금 500만 원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식당과 가게 벽에 붙어 있다는 전단지는 "이 사람들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 아래로 다섯 명의 인물 사진과 함께 이름, 출생지와 출생년도, 주소, 키와 몸무게 등의 신체특징 등이 적혀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고향을 붉은 글씨로 강조하고 있는 전단지는 눈에 확 들어왔다. 각각 세 개의 핸드폰 번호와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얼핏 보면 누군가가 절박한 심정으로 실종자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맨 아래 문구와 전단지를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때까지는 그랬다. 전단지 맨 아래에는 강조하듯이 붉은 글씨로, "전화 한 통으로 현금 50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적고, 그 뒤에 손 글씨로 "12월 10일까지"라고 기한을 정해놓고 있었다. 
 

현상금 500만 원이 걸린 이주노동자 송출업체 사장은 페이스북 동영상으로 찾는 사람과 그 가족들 사진까지 첨부하여 망신을 주고 있다. ⓒ 고기복

 
깝뗀은 전단지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전화해 봤다고 했다. 전단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알아서도 아니고, 현금 500만 원이 탐나서도 아니었다. 전단지에 나온 사람들이 형사범이 아닌데도 마치 수배 중인 사람들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단지는 선원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부산지역 선주협회가 붙인 것이었다. 부산과 인도네시아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인력송출업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기관이었다.

선원이주노동자는 선원법과 해수부의 외국인 선원 관리지침에 따라 어선주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선주협회 등을 통해 입국한다. 외국인 선원비자(E10)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고용허가제(E9)와 달리 선주협회와 같은 민간 관리업체가 해외 송출업체를 통해 선원을 모집 관리하고 있다.


즉, 해외 송출업체가 모집한 선원을 선주회원들에게 선주협회가 알선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송출업체들은 국내 단체(선주협회)로부터 이탈자 예방 등을 위한 출국 전 교육과 국내 체류 중 이탈자 방지 등을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송출업체들이 국내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탈자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주협회와 함께 인도네시아 송출업체 사장은 페이스북에 전단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여러 장의 출입국 단속 현장과 경찰들 사진들을 게시하여 '지정업체를 이탈하면 반드시 단속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송출업체는 자신들이 보낸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지정업체를 뒤로 하고 사라지자, 그들을 망신 주고자 개인정보를 까발리고 있던 것이다.

깝뗀은 송출업체와 선주협회가 전단지를 뿌리는 이유를 이해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다며 화를 삭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송출업체 사장이 이주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유포하는 글들이 협박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선원이주노동자들은 이름만 대면 서로 알 수 있는 시골 출신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고향을 노출시키면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망신이다. 어느 집, 누가, 어떻다고 낙인찍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깝뗀은 500만 원 현상금을 내건 것 또한 이탈 이주노동자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송출업체나 선주협회가 악질적이라고 말했다. 경찰이나 출입국이 아닌데도 마치 권한을 위임받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보며 '한국에서 이래도 돼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일하던 회사 그만둔 게 그렇게 큰 죄냐? 그 사람들이 돈을 훔쳤나, 사람을 때렸나? 고용주들이 근로계약을 지키지 않고, 욕설하고 때리는데, 그런 건 누가 책임지나?"

한편, 한국에서 전단지를 배포한 선주협회 담당자는 "강아지를 찾는 데도 50만 원을 주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사례금을 걸었다"면서 불법 행위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담당자는 "업체를 이탈해서 유예기간이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불법체류를 방지하겠다는 거니까, 개인 정보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개인정보를 사진과 게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미등록 이주노동자 개인정보를 사진과 함께 게시하여 현상금을 건 행위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면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망신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서 상담을 받더라도 법률로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면 안된다. 선주협회나 송출업체 관계자는 깝뗀의 항의에도 여전히 전단지 게재와 페이스북 홍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송출업체 사장은 깝뗀의 항의에 역정을 내며, 자신은 법에 정한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단다. 

깝뗀이 보기에 송출업체는 과거 현대판 노예제도라 비판받던 산업기술연수생 제도 때 송출업자들과 같았다. 그들에게 산업기술연수생들은 늘 훈계와 겁박의 대상이었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아랫것들이었다. 송출업자들은 한국에서 요구하는 방식에 세뇌된 것처럼 산업기술연수생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깝뗀은 송출업체 사장이 선주협회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 시각을 갖고 있는 또 다른 한국인들이 현상금을 내걸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불법임에도 여권사진과 함께 개인정보를 유포하며, 신고를 독려하는 이들을 페이스북에서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주협회가 현상금을 걸어놓고 정한 기일, 12월 10일은 역설적이게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로 귀착'됨을 지적하며,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하기 위해 선언된 그 날을 마감일로 정한 그들은 그 의미를 알 턱이 없을 것이다. 

이와관련 경찰은 선주협회 등의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에 대한 범죄첩보를 확보하고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주노동자 #추노꾼 #선주협회 #현상금 #미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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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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