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생들 어떻게 노나 들여다볼까

[도쿄 옥탑방 일기 6화] 대학 축제

등록 2018.11.27 19:39수정 2018.11.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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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게이오대학 미타캠퍼스 전경. 너무나도 조용하다. ⓒ 김경년

  
소박한 대학 캠퍼스... 고등학교를 잘못 찾아왔나


내가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게이오대학(慶応義塾)은 무려 1858년, 그러니까 160년 전 설립된 일본의 유서 깊은 사학이다. 메이지시대 정한론을 주장해 우리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현재도 1만 엔권 지폐에 얼굴이 새겨있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이 학교의 설립자다.

지난 3월 도쿄에 온 바로 다음날 도착 신고를 하려고 도쿄타워 인근에 있는 이 학교의 미타(三田) 캠퍼스를 찾았다. 이름있는 학교의 메인 캠퍼스이기에 으리으리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위용 있을 거라 상상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유럽의 고성처럼 생겨 나름 분위기가 있는 정문 건물(이게 정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동문이었다)로 들어가 얕은 오르막길을 30여 미터 오르니 4-5층짜리 건물 7, 8개가 오밀조밀하게 배치돼 있고 그 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 광장이 전부였다. 그나마 맨 앞에 있는 제법 오래 돼 보이는 도서관 건물은 1년도 넘게 지진대비 보강공사 중이라 왠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 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잘못 찾아왔나.

나중에 들어보니 게이오대학은 전공과 학년별로 도쿄와 인근 도시 6개의 캠퍼스로 나뉘어 있고 이곳 미타캠퍼스는 문학부 2-3학년과 상학부, 법학부 3-4학년들만 다니는 곳이었다. 워낙 땅값이 비싼 곳이라 이곳에서 더 이상 캠퍼스를 확장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긴 하다.


하긴 도쿄 대학이나 와세다 대학을 가봐도 한국의 대학들처럼 광활한 대지에 대형 건물이 가득하지는 않다. 캠퍼스 자체가 그리 넓지도 않지만 제국주의 시절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새로 지은 것들도 높고 크지 않다.

그런 환경 탓일까, 학교 분위기도 참 차분하다. 나쁘게 얘기하면 활기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교실에서 강의를 듣거나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외엔 그 많은 학생이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조용하다. 캠퍼스 내에서 큰소리 지르는 학생을 못 본 것 같다.

최근 취업난 등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한국의 캠퍼스에서는 친구들과 축구나 족구를 한다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게 흔한 정경 아닐까. 동아리 학생들이 새 회원을 가입시키려고 권유하거나, 벤치에 딱 붙어앉은 캠퍼스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거나, 수업이 없는 친구들끼리 동산에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텐데.

같이 일본어 수업을 듣던 스페인 출신 유학생도 그런 한국의 대학 분위기를 듣고 나서는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그래요. 심지어 밖에서 술 먹고 수업에 들어오기도 하죠. 그에 비하면 일본 학생들은 너무 얌전하고 재미없어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캠퍼스가 조금 떠들썩해지는 건 도쿄시내 6개 대학 대항 야구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정도. 지난 봄 대회에서 우승을 하자 갑자기 중앙광장에 특설무대가 설치됐다. 학교 주변 몇 km의 거리를 걸으며 학교 밴드의 연주에 맞춰 선수들이 퍼레이드를 벌인다. 무대는 주변 상인들이 보내온 축하 화환들로 장식되고 치어리더들이 멋진 환영행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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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학생들이 학교 입구 건물에 축제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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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미타캠퍼스 중앙광장에서 대학 축제 '미타사이'가 열리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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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특설무대에서 인기 여자 아이돌 그룹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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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학생들이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고 있다. ⓒ 김경년

 
조용한 캠퍼스가 갑자기 북적북적해진 이유

지난 주말 정문 앞에 플래카드가 걸리더니 캠퍼스가 갑자기 북적북적해졌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미타사이(三田祭)'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항상 조용한 캠퍼스가 갑자기 떠들썩해지니 지켜보는 사람 마음도 들뜬다. 어디 한번 얘들은 어떻게 노나 들여다볼까.

축제기간은 지난주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야구대회 우승 때나 볼 수 있는 특설무대가 다시 중앙광장에 설치되고 캠퍼스 도로를 따라서 수십 개의 천막이 설치됐다.

일부러 하루 시간 내 방문해 보니 특설무대에는 외부에서 초청된 아이돌 걸그룹 공연이나 교내 동아리의 샤미센 연주 등이 이어지고 저녁에는 힙합댄스 경연이 펼쳐졌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등장해 이뤄지는 군무가 제법 역동적이다. 그렇게 얌전하던 아이들이 저런 에너지를 어디에 숨겨놨었나 싶다.

광장 다른 편에 설치된 작은 무대에서는 밴드의 공연이 나름 열기를 발산하고 있다. 다소 쌀쌀한 날씨를 피해 무대 뒤 건물 안으로 대피(?)했더니 건물 전부가 동아리 발표장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무대를 확보하지 못한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댄스동아리, 개그동아리도 강의실을 하나씩 차지하고 공연을 하고, 사진이나 그림동아리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학생들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꽃다발을 들고 와 관람하는 모습. 공연 하나가 끝날 때마다 박수와 함께 환성을 보낸다. 학예회를 보는 듯 하지만 아들딸이 1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보고 격려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한국도 그렇지만 축제의 꽃은 역시 먹거리 천막. 캠퍼스에 수십 개 설치된 음료수 자판기까지 운영을 중지시키고 동아리 회원들이 열심히 만든 음식을 판매한다. 현장 혹은 휴대폰 앱으로 투표를 실시해 최고의 음식을 가리기 때문에 손팻말을 들고 돌아다니며 '호객행위'까지 벌인다.

단 먹거리 천막이지 한국처럼 주점이 아니다. 술은 반입금지, 제조금지, 판매금지가 철저하다. 따라서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지거나 흐느적거리거나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소 분위기가 맹숭맹숭하지만 술이 없는 대학축제도 가능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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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스테이지에 오른 밴드의 열정적 공연에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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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먹거리천막에 참가한 학생들이 떡을 꼬치에 꿰어 굽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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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개그 동아리 학생들이 강의실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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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재즈음악 동아리 학생들이 강의실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 김경년

 
수십 개 먹거리 천막에 한국 음식이 6개나

떡볶이가 2곳, 떡볶이 수프가 1곳, 호떡, 전(지지미), 양념치킨 등 한국 음식을 파는 천막이 6곳이나 됐다. 많아봤자 40여개밖에 안되는 천막에 한국 음식이 6개라니. 대부분 인스턴트 재료를 사다가 맛을 흉내내는 정도이지만 맛이 문제가 아니지 않나. 중국음식을 파는 중국 유학생 천막은 1곳뿐.

모두 한국 유학생들이 하는 것이겠지 싶었다.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떡볶이 천막 학생들에게 한국말로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어보니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학생들 모두 일본인 학생들이었다.

여행 동아리인데 K팝이나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고 한국 학생도 있어서 떡볶이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통에 넣고 열심히 주걱을 휘저어 떡볶이 소스를 만들고 있다.

마침 선전활동을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오는 학생들 가운데 한국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남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든 소스를 한 입 떠먹어본다. "우웩, 이거 뭐야. 다시 해."

남학생들은 퇴짜를 맞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다시 고추장을 넣고 간을 본 뒤 주걱을 젖기 시작한다.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방탄소년단 원폭T셔츠 문제... 한일 관계에 문제가 많다지만 젊은이들 사이엔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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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축제에서 김치전과 오징어전을 팔고 있는 일본인 학생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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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축제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는 일본인 학생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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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대학 대학축제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호떡을 팔고 있다. ⓒ 김경년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옥탑방일기 #게이오대학 #떡볶이 #호떡 #대학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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