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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지나자 졸기 시작한 군인들... 나무랄 수 없었다

국립민속국악원 상설 공연 <적벽가> 판소리 한 마당 참관기

18.11.28 09:29최종업데이트18.11.2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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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면 나이가 쉰인데, 태어나 처음으로 판소리 공연을 관람했다. 지난 주말, 전북 남원에 자리한 국립민속국악원의 상설 공연의 하나로 판소리 <적벽가> 한 마당이 펼쳐졌다. 장소는 소곤대는 말소리도 들릴 만큼 무대와 객석 사이가 가까운 소극장 '예음헌'이었다.

어릴 적 TV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하긴 하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TV든, 극장이든, 근린공원의 야외무대든 어디서도 쉽게 국악 공연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한때 세계에 '한류'의 바람을 일으켰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조차 시나브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판소리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지만, 특히 국어나 한국사 수업시간에는 꽤나 대접 받는 소재다.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후 수능 시험에서 이따금 출제되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 서민문화의 발달을 다루는 단원에서 판소리는 단골손님 격이다.

아이들이 판소리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이유다. 19세기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이가 동리 신재효 선생이라는 것과, 판소리의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창, 아니리, 발림이라는 건 기본이다. 창은 노래고, 아니리는 장면을 설명하는 사설이며, 발림은 창에 어울리는 몸짓을 일컫는 판소리 용어라는 것까지도 잘 안다.

그런가 하면, <춘향전>이나 <심청전>처럼 백성들에게 구전된 소설이나 설화 등이 판소리로 재구성되기도 하고, 판소리계 소설을 출현시키기도 했다는 점도 대개 알고 있다. 이 정돈 돼야 정답을 맞힐 수 있다. 전승 계보나 창법에 따라 지역적으로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는 건 이미 상식에 속한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판소리는 퍽 익숙한 장르이지만, 정작 직접 들어봤다는 경우는 교실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공연은커녕 TV나 인터넷에서조차 공연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사도 학생도 눈 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듯 가르치고 배웠던 셈인데, 판소리는 오로지 '수험용 지식'이었던 거다.

소설의 '적벽대전'을 귀로 듣다
 

국립민속국악원 전경 ⓒ 서부원


공연 시작 전, 한 대학 국악과 교수의 짤막한 판소리 강좌가 있었다. 무엇이든 자세히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법이지만, 입장권과 함께 배부된 팸플릿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 딱히 새로울 건 없었다. 더욱이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밑줄 긋고 별표 치며 숱하게 외웠던 것임에랴.

한복 차림에 부채를 든 여성 명창과 두루마기 차림의 남성 고수가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무대에 나왔다. 돗자리 깔린 무대 위에는 소반이 놓여있는데, 그 위로 소품처럼 주전자와 앙증맞은 찻잔 두 개가 의젓하다. 필시 목을 적실 물이 들어있을 텐데, 여느 강연장처럼 플라스틱 물병과 유리컵이었다면 조금 어색했을 듯싶다.

먼저, 자신이 사사한 스승을 창으로 소개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한 시간인데, 작고한 스승을 추억하고 기리는 제자의 애틋한 마음이 읽혔다. 하긴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장르는 누구에게 사사 받았는가가 수준과 역량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적벽가>는 중국 명나라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그 내용의 일부를 판소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의 '적벽대전' 부분을 눈으로 읽는 대신, 상상하며 귀로 듣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소설 <삼국지>를 흥미 있게 읽은 이라면, 판소리를 들으며 순간순간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공연 도중 객석 곳곳에서 '얼씨구'나 '그렇지'라며 무릎을 치거나, '허잇' 등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힘든 감탄사가 연신 튀어나왔다. 물끄러미 보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데면데면하기도 했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 추임새를 많이 넣어달라는 명창의 부탁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깨닫게 된다.

별도의 규칙도 격식도 없다지만, 추임새는 판소리 마당에 관객도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그로 인해 명창과 고수는 노래하고 북을 칠 힘과 신명을 얻고, 관객 또한 공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무대를 경계로 출연자와 관객이 완전히 분리되는 여느 공연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하지만 아무나 추임새를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연의 내용과 흐름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아무 때나 들이댔다간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추임새를 넣는다는 건 공연에 심취해있다는 걸 의미한다. 추임새의 질은 판소리 관람 경력과 정확히 비례한다고나 할까.

흥은 났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고수의 북소리와 명창의 고저장단 능수능란한 목소리에 흥은 나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언뜻 들으면 중국어 같기도 하고, 교회 신자들이 쏟아내는 방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마당에 무턱대고 추임새를 넣는다는 건 언감생심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명창의 노랫소리와 몸짓에 호응해 울고 웃으며 온갖 감탄사를 연발하는 관객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판소리를 한 몸이 되어 즐겼고, 문외한인 난 그저 구경을 할 뿐이었다. 개중에는 명창의 것과 같은 부채를 손에 쥔 이들도 있었는데, 공연 내내 입맛 다시듯 부채를 연신 만지작거리곤 했다. 부르면 당장이라도 무대에 올라 창을 할 기세였다.

관객들은 대개 50대 이상의 장년층이 대부분이었는데, 말쑥한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손에 든 책자 등으로 미루어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드물게 부모를 따라온 듯한 중학생들도 있었고, 공연 시작 직전 견학을 온 제복 입은 군인들도 객석을 채웠다.

대략 30분쯤 지났을까. 관객들 중 노소(老少)의 반응이 확연히 갈리기 시작했다. 자진모리 장단에 박진감이 느껴질 무렵 객석의 추임새는 빈번해지고 괄괄해졌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꾸벅꾸벅 조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만 갔다. 중학생 몇몇은 일찌감치 고개를 떨궜고, 군인들조차 관객들의 박수소리에 놀라 잠시 깰 뿐 내내 졸았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혼을 담아 노래하는 명창과 고수의 바로 앞에서 졸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어르신들이 부러 다독이며 깨우기도 했지만, 채 1분도 못 버티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 들어올 때의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들이 조는 건 피곤해서라기보다 공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섣부르긴 해도, 판소리는 보통의 젊은이들이 즐기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듯싶다. 추임새를 넣을 줄 아는 세대가 사라지면, 판소리도 무대 위의 종합 예술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문화재들처럼 박제화의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이들의 관심 지속시키려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젊은이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긴 어렵다. 때론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도 받고, 형식과 내용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그들의 정서와 취향에 맞추는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고정관념에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전통문화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노랫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명창의 발음과 음량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고어(古語)가 너무 많다. 더욱이 옛 전라도 사투리가 태반이어서, 서울에서 온 한 관객은 판소리의 노랫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본디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노랫말이 전라도 사투리인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 토박이라는 명창이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하는 걸 보면, 오로지 판소리를 위해 부러 배운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관객들까지도 전라도 사투리를 배워오라고 할 수는 없는 법, 가사의 전달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이번 공연의 주제였던 <적벽가>의 경우라면, 배경화면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공연 제목을 사전에 듣지 못했다면 <적벽가>인지도 몰랐을 거라고 헛웃음을 짓는 관객도 있었다. 중간 중간에 아니리로 장면을 슬쩍 일러주니 망정이지 그마저 없다면 안내 팸플릿조차 별무소용일 듯싶다.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터를 노래하고 있는데, 배경처럼 서 있는 사군자 병풍이 생뚱맞다. 사군자 병풍에 맞는 판소리가 있겠지만,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배경을 바꿀 수 있다면 내용 전달력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장면의 내용에 맞게 편집한 '적벽대전' 영상을 스크린에 띄운 채 판소리가 공연된다면, 명창의 노랫소리는 병사들의 함성과 울부짖음으로, 고수의 북소리는 화포의 불 뿜는 소리처럼 박진감 넘치게 들리지 않겠는가.

판소리는 영어로 'a Solo Opera Drama'로 번역된다. 이를 직역하면 '언어와 시각, 음악을 망라한 1인극'이라는 이야기다. 오로지 북에 기댄 목소리 하나로 구현하는 예술 행위가 분명 놀랍기는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저변의 확대에도 한계가 분명하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유산 판소리도 첨단 과학기술을 만나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그래야 판소리를 시험 문제로만 만나는 아이들도 영화관처럼 판소리 공연장을 즐겁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추임새를 넣는 관객들의 나이가 젊어지지 않으면 판소리도 살 수 없다. 공연이 끝난 뒤 비로소 잠이 깬 젊은 관객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스마트폰을 켜고 얼굴을 파묻었다.
판소리 국립민속국악원 적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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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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