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먹으려고..." 그는 범행 끝날 때를 기다렸다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1] 모범생도, 비행청소년도 아닌 주형

등록 2018.11.28 20:07수정 2018.11.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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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 말

한국 사회에는 청소년에 대한 두 가지 환상이 존재한다. 하나는 '청소년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로, 착하고 예의 바르며 순박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단정히 교복을 입고 어른에게 공손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다. 간혹 하이틴 무비에 등장하는 일진들, 뉴스에 보도되는 잔인무도한 소년범들이 보여주는 비행청소년 이미지다.

하지만 모범생과 비행청소년은 청소년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모든 청소년이 모범생이 아니듯, 모범생이 아닌 청소년이 모두 비행청소년인 것도 아니다.

주형의 첫 인상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헤어스타일은 단정했고 옷차림도 말끔했다. 얼굴 근육을 마비시킬 것 같은 2월의 찬바람이 불던 날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지간한 소년사범은 다 상대해봤다고 자부하던 나를 얼어붙게 했다. 한 여성을 7명의 남성이 강간했다는, 뉴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던 이야기가 그 순박한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편견

이미 경찰 조사는 끝났고,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던 길이라는 말은 더욱 충격이었다.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가는 이의 얼굴이 이처럼 평온할 수 있을까? 순간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비행청소년이, 저토록 평온한 모범생의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검찰 조사를 몇 시간 앞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주형과 10여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나 역시 지독한 선입견에 빠져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은 모범생과 비행청소년만 존재한다는, 모범생과 비행청소년은 외모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그 착각. '그러지 말자'는 강박관념 속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선입견은 언제든 비집어 나오곤 했다.

상담을 이어가던 중 지금 검찰 조사를 받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의 지능이 평균보다 낮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파악을 떠나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피의자를 아무런 대비도 없이 검찰에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급히 사건 선임계를 작성하고 주형과 같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미뤘다.

곧바로 주형의 정신감정도 의뢰했다. 그의 IQ는 73. 지적장애 경계선이었다. 지적장애는 IQ 70 이하부터 인정된다. 단 3차이로 주형은 그 경계를 벗어났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지적장애를 인정받느냐 아니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지적장애 판정을 받는다면 심신미약에 준해서 판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IQ 73과 70은 얼마나 다를까.

정신감정서를 받아들고 난 뒤 주형의 행동을 다시 곱씹어봤다. 끔찍한 사건에 연루되고서도 평온한 미소를 띈 것, 곧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인데도 그토록 여유로웠던 것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 더, 주형은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검찰 조사야 당당히 받으면 그만이고, 당연히 재판도 받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될 확률이 1%에 불과한 나라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특수준강간으로 피해자와 합의 없이 재판에 넘겨진다면 최소 4~5년 형은 예상되는 중범죄였다. 지적장애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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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들은 피곤함을 한껏 짊어진 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주형 일행과 같이 거나하게 술에 취한 이들이었다. ⓒ unsplash

    
고등학교를 1학년까지만 다니고 중퇴한 주형은 오랜 기간 알바를 전전하다 2년 만에 취업을 했다. 그를 축하한다며 친구들이 모였고, 그렇게 일곱 남자는 동네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왁자지껄 신나게 술잔을 부딪치던 주형과 친구들의 눈에 옆 테이블 여성 둘이 들어왔다. 비슷한 또래 같았고, 남성 일행은 없어 보였다. 말주변이 없지만 반반하게 생겨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주형이 나섰다. 여성들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합석에 응했다. 두 사람 모두 주형과 같은 19살이었다. 9명의 남녀는 다음날 오전 3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들이 술집을 나선 것은 영업시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이미 가로등불에 의지해 어스름을 견디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피곤함을 한껏 짊어진 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주형 일행과 같이 거나하게 술에 취한 이들이었다. 아직 첫차도 시작되기 전이어서 출근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형 일행과 함께 술을 마신 여성들은 그런 거리 모퉁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몸을 가누기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한 명은 곧 바닥에 주저앉았다.

친구들 중 한 명이 한마디를 뱉었다. "우리 쟤 돌리자." 나머지는 일제히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바라봤다.

단 한 사람, 주형만 제외하고. 몇 시간 후면 첫 출근이었다. 술 취한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주형은 혼자 집으로 향했다. 여섯 명의 친구들은 피해자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은 주형이 없어진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범행장소인 민성의 고시원에 도착한 뒤에야 성호가 주형의 부재를 깨달았다.

성호는 오기 싫다는 주형과 통화하며 "일단 이리 와, 금방 끝나니까 끝내고 해장국이나 먹고 들어가"라고 했다.

고시원에 도착한 주형은 주방에서 잠시 기다리다 성호가 나오자 인근 국밥집으로 갔다. 국밥집엔 주형과 성호처럼 밤새워 마신 술에 버거워하는 속을 달래려는 이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밤샘 노동에 지친 눈꺼풀로 뚝배기를 날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방금 전 그들이 있었던 곳의 잔인함을 상상하지는 못했다.

"변호사님이 지적장애래요"

피해자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다. 다음날, 주형을 포함한 7명이 모두 검거됐다. 가담 정도에 따라 4명은 구속됐고, 주형 등 3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주형은 성호와 해장국을 먹기 위해 기다렸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단지 해장국 때문에, 범죄가 끝날 때까지 태연히 기다렸다는 진술을 믿을 이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주형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재판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법정에서 정신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변호인, 심신미약 주장하시게요?"
"심신미약은 아니고요. 피고인이 범행 현장에 그저 해장국을 먹기 위해 기다렸다는 사실을 이해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재판장은 일곱 명이 주욱 앉아 있는 피고인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주형 피고인!"
"네"
"피고인 지적장애에요?"
"아니요. 아닌데요. 변호사님이 감정 받아 보시고는 지적장애라고 하세요."


재판장은 순간 변호인석을 흘겨봤다. 변호사가 된 뒤 법정에서 그처럼 싸늘함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유리했으면 유리했지, 불리할 것 전혀 없는 지적장애 의심상황을 피고인이 스스로 부인한다. 그것도 자신은 정상인데 변호인이 시켜서 그렇다는 자폭 발언을 한다. 그 자체가 경계선성 지적장애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판정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나를 '피고인의 무죄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속물 변호사'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굴하지 않고 증거조사 신청을 했다.

"재판부를 통해서 받은 감정은 아닌데요?"
"네. 변론 전에 감정을 받았습니다."
"어디서 받은 감정이에요?"
"가톨릭대 병원입니다"
"..."


그나마 대학병원에서 받은 감정이라 재판장의 의심이 조금은 수그러진 느낌이었다. 지역 병원이었다면 감정서 자체를 신뢰하지 않을 듯했다.

재판장의 노골적인 불만에도 끝내 감정서를 제출한 까닭은 주형을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미 그를 특수준강간범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유죄 선고 전까지는 무죄를 추정해야 하는 판사까지도 그의 혐의를 확신하는 눈치였다.

판결

나는 주형의 결백을 확신했다. 변호인까지 철저히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몇날 며칠 상담하는 동안 주형의 진심을 느꼈다. 무엇보다 주형은 변호인까지 속일 만한 지적 능력이 없었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조차 못하는 IQ 73의 청소년. 그를 믿어줄 단 한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마저 의심한다면 주형은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다. 재판장의 싸늘한 눈초리, 그까짓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술집 앞에서 주형이 이탈한 것, 성호가 주형에게 전화한 것이 증명됐다. 성호는 주형에게 유리한 진술도 했다. 결국 7명의 피고인 중 주형만 유일하게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무죄 판결을 받으면 신문에 이 사실을 게재할 권리를 얻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에, 특히 성폭행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법정에서 신문 게재 여부를 묻고 답하는 일 자체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주형은 그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피고인, 무죄를 선고 받았어요. 피고인이 무죄를 받은 사실을 일간신문에 게재할 수 있는데 그러길 원하나요?"
"네? 제가 신문에 난다고요?"
"아니요. 피고인이 무죄라는 것을 신문에 게재하실 거냐고요?"
"네? 저를 신문에 낸다고요?"


재판장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왜 범죄자가 됐을까

범죄를 저지른 또는 범죄에 연루된 모든 청소년은 하나 같이 사연을 품고 있다. 오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어느새 부모처럼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청소년. 어릴 때부터 돌봄을 받지 못해 좀도둑질에 익숙해진 청소년. 왕따에 시달리다 언젠가부터 자신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청소년. 그리고 주형처럼 지적 능력이 낮아 자신이 범죄의 한 가운데에 놓였다는 사실조차 인지 못하는 청소년.

주형의 아버지는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1년 대부분을 지방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에 그는 지쳐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데, 주형을 돌보는 여유는 사치였다.

주형의 어머니는 지적장애 3급이었다. 지적장애가 유전이라는 의학적 결과는 없지만, 지적 장애 부모에게서 지적장애 자녀가 태어나는 경우는 비장애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 어머니는 주형이 자신 때문에 지적장애 경계선일 것이란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다. 그녀는 주형의 지적장애 여부가 거론되는 법정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법정에서 항상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주형처럼 무죄가 진실일 경우에만 무죄를 호소한다. 단지 범죄나 외모, 행실만으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기를 호소한다. 그들의 내면을, 그들이 짦은 삶을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를, 그 고통이 삶을 어떻게 바꿔놨는지를 바라봐주길 바란다. 어쩌면 '모범생'이 아닌 그들을 단지 '비행청소년'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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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범생'이 아닌 그들을 단지 '비행청소년'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 unsplash


검찰은 항소했지만,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도 주형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거기까지 2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무죄 판결을 받고 서울고등법원계단으로 내려오는 내게 주형이 말을 건넸다.

"변호사님. 저 알바하는 데서 홀매니저 되었어요. 놀러오세요."
"야! 가면 서비스 주냐?"
"그럼요. 변호사님 오시면 꽁짜에요!"
"야 임마! 내가 너한테 왜 얻어 먹냐! 안 가!"


말은 쌀쌀맞게 했지만 주형이 일하는 치킨집에 가고 싶었다. 주문 하나 제대로 외우기 어려워할 녀석이 홀매니저가 되었다니,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을 받은 주형은 몇 걸음 가다 다시 돌아왔다.

"변호사님, 뭐 시키셨죠"
"너 어떻게 홀매니저 됐냐?"


동네 치킨집 홀매니저. 누군가에겐 하찮을 수 있는 자리가 주형에게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높은 자리였다.

하지만 무죄라고 잘못이 없진 않다. 피해자는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고, 몇몇 가해 청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보상금을 줄 경제력이 있었다. 그러나 몸이 상하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의 피해보상이 이뤄졌고 가해자들의 서면 사과까지 받았다고 해도 범죄 피해의 트라우마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19살밖에 되지 않은 그녀가 부디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형에게도 말했다. '피고인은 무죄'라는 판결이 '죄가 없다' 말과 똑같지는 않다고. 끔찍한 범죄를 말리긴커녕 그 일이 끝나길 태연히 기다린 주형의 행동은 아무리 경계선성 지적장애를 가졌다 해도 분명한 잘못이라고.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면 언제든 다시 범죄를 방조할 수도, 더 나아가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고.

다행히 주형은 범죄에 다시 빠져들지 않았다. 지금은 입대해 성실히 군 복무 중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은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년법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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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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