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하다 죽은 아들… "아빠가 가난해서 미안해"

[인터뷰] 고 이민호군 1주기에 만난 아버지 이상영씨

등록 2018.11.30 07:47수정 2018.11.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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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찾았던 함덕. 혼자 찾은 바다는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 이희훈

 
가족에게는 꿈이 있었다. 화장실 안에 샤워실 달린 집 한 채를 얻는 꿈. 어린 시절 호텔 벨보이로 일하면서부터 간직해온 아버지의 '로망'이었다. 제주도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샤워 후 흰 가운을 걸치고 호텔 주변을 나다니는 숙박객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은 매일 같은 시간 집을 나서 제주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아침 7시 30분이면 아버지는 화물차 운전대를 잡았고, 어머니는 식당으로 출근했다. 또 연년생인 아들 둘은 각자의 회사로 출근해 첫째는 귤 박스를 날랐고, 둘째는 지게차를 운전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돈벌이에 가족들은 지쳐있기 일쑤였다.

"그래도 이렇게 1년만 더 힘들면, 넷이 같이 번듯한 집에서 살 수 있겠다, 그치?" 

그럴 때마다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는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어주곤 했다. 딸 역할을 자처해 가족 사이를 잇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모두의 합심으로 멀어보였던 가족의 꿈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을 때, 갑작스럽게 둘째가 세상을 떠났다.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프레스에 깔렸다고 했다.

지난 19일은 제주도의 음료 공장 ㈜제이크리에이션에서 실습을 하던 이민호군이 숨진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로부터 이틀 후인 21일, 제주도의 한 커피숍에서 이민호군 아버지 이상영(56)씨를 만났다. 그의 눈 아래엔 작은 사마귀 점이 맺혀 있었다. 어쩌면 응어리진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어떤 1년을 보냈을까. 단 하나 분명한 건 가족이 함께 꾸던 꿈이, 이젠 제법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분노에 익숙했으나 슬픔에는 익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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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영씨의 입술에 힘이들어가고 시선은 아래로 떨어졌다. 이내 큰숨을 몰아 내 쉬고 애써 표정을 참아냈다. 아들 앞에 서는 일은 아직은 힘이든다. ⓒ 이희훈

 
그는 쉴 틈 없이 말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군대와 축구 이야기부터 직접 겪었던 다양한 직업군 이야기까지. 그러나 그 속에 민호군 이야기는 없었다. 마치 일부러 빠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대화를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민호'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과거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던 당시를 회고할 때였다.


- 회사에서 노조 활동을 하셨나 봐요.
"그럼요. 엄청 적극적으로 했어요. 그렇지만 아내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죠. 난 그런 아내를 설득하곤 했어요. '지금 나 좋자고 하는 게 아니다, 나중에 내 자식들이 내 자리에 왔을 때,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요.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이 싫어요."

- 왜 싫으세요?
"민호 사고 때문이에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도 변한 것 하나 없었다는 게 민호 사고로 증명된 꼴이잖아요. 아니 오히려 지금은 내가 활동할 때보다 더 노동자 처우가 나빠진 것 같아. 과거에는 민호 같은 실습생이 회사에 왔다면 모두 잘 챙겨줬을 거예요. 자기 아들,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위험한 기계를 맡기진 않았을 거라고."

그는 크게 한 숨을 쉰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사고 후에도 회사는 줄곧 책임이 없다며 발을 빼려고만 했어요. 회사 쪽이 그래요. '민호에게 기계 고치라는 일을 시킨 적도 없고, 이상이 있으면 상부에 보고하라'고만 말했다고."

- 장례가 미뤄진 이유도 회사 쪽의 부인 때문인가요?
"네. 민호가 죽고난 후에도 책임을 부인했어요. 장례식 전에 병원에 제출해야 하는 산재 보고서를 회사가 '민호 개인의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는 식으로 작성했거든요. 화가 나서 회사 쪽에 전화를 했죠. 다음날(20일)까지 제대로 된 서류 안 가져오면 장례 무한 연기하겠다고."

- 그래서 다음날 만나셨나요?
"네. 대표를 만났더니 산재 보고서 얘기는 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합의부터 하자고 말해요. 본인도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돼서 경제적으로 힘들다면서 빨리 사건을 마무리 짓자고. 대신 회사가 재가동되면 열심히 일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더라고요. 나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 

여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자세를 고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딱. 딱. 딱. 한 마디에 한 번씩. 그의 손가락은 목재로 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커져갈수록, 그 빈도도 점차 잦아졌다.

"몇 시간 후 (대표를 찾아간) 처제와 동서에게 대표가 그렇게 말했대요. 8000만 원 줄 테니까 합의부터 하자고. 처제와 동서에게 그 말을 전해듣고 나는 8000만 원 줄 테니까 당신 새끼 그 기계 밑에 눕히라고 말했어요."

회사 쪽은 그로부터 9일이 지난 지난해 11월 29일 경찰에서 증거를 제시한 후에야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호군의 장례를 더는 미룰 수 없어 아버지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사고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밝힐 것'.

이민호군의 장례가 치러진 건 12월 6일이었다. 이군이 사망한 지 18일, 사고가 발생한 지 28일 만이었다. 장례식 다음날 노동부 제주센터는 유족 3명과 '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에따른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관계자를 사고현장에 불러 노동부에서 파악한 사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을 설명했다. 공장이 재가동 될 때 유족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겠다는 약속도 남겼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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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씨는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애써 울음을 참고 있었다. ⓒ 이희훈

 
- 지금 회사는 어떻게 됐나요?
"지금 회사 재가동 됐어요. 심지어 민호를 죽인 그 기계도 제대로 된 점검 없이 생수를 만들고 있어요. 이게 무슨 나라에요. 이게 나라라고 보세요?"

민호군이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난해 12월 27일. 제주도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제이크리에이션에 대한 5일간의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 감독 결과 산업안전 분야에서만 총 513건이 적발됐다. 철저한 원인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 ㈜제이크리에이션에 대한 재가동은 보류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올해 1월 갑작스레 공장이 재가동됐다. 유가족이 재가동 사실을 안 것도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왜 보고하지 않았냐'고 묻자 노동부는 보고가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답변했단다. 재가동이 '철저한 심의'를 거친 결과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책위가 현장에서 파악한 결과 업체는 민호군을 죽음으로 이끈, 기계의 잦은 고장에 대한 분석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책위는 고용노동부에 '왜 기계의 잦은 고장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기계는 공단이나 고용노동부가 조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공장재가동을 위해 심의한 회의록의 열람도 요구했으나, '회의 결과록은 없으며 회의자료도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의 높아진 언성이 찻집을 울렸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고 주먹 쥔 손은 쉽게 풀리지 않을 듯 말려 있었다. 

돈 있고 빽 있다면, 우리네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우리는 곧 밖으로 나왔고 제주도 곳곳에 남은 민호군의 흔적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씨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햇볕을 의식한듯 선글라스를 꼈다. 이어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 운전을 굉장히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지만, 운전이 내 전문이죠. 화물차 운전부터 택시 운전, 렌터카 셔틀버스 운전까지. 운전 경력은 화려했어요."

운전 이야기로 운을 떼자, 그는 또 다시 쉴 틈 없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종사했던 직업 이야기가 주였다. 어색한 빈틈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걸까. 아니면 빈틈이 생기면 받게 될 질문을 두려워한 것일까. 그게 어느 쪽이든, 대화하는 내내 그는 줄곧 바빠 보였다. 

30분쯤 이동했을 때 도로 위에 양지공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민호군의 유골이 안치된 건물로 들어갔다. 빨갛고 노란 꽃장식들을 지나, 유골함이 있는 좁은 복도로 나아갔다. 1935년생, 1948년생. 민호의 유골함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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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만질 수 있는 아들의 모습. 이상영씨는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희훈

 
이씨는 유골함 앞에 섰다. 손을 뻗어 민호 사진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안경 아래로 손을 넣어 몇 분간 눈을 지그시 눌렀다. 옆에 있는 큰 창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그는 복도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말없이 곧장 차에 올라탔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그였기 때문일까. 침묵이 낯설게 느껴졌다. 혹시 그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나 이씨는 이럴 때일수록 혼자 있으면 안 된다며 차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 요 일년, 혹시 약주는 많이 하셨나요?
"전혀요. 힘들 때 저는 술을 절대 안 마셔요. 마시면 더 생각나고 더 울고 싶어지잖아요. 또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는 아이를 키울 나라가 아니에요.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만 애 낳아야지."

-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세요?
"돈 있고 빽 있다면 민호가 그 회사를 갔겠어요? 아니, 애초에 특성화고에 지망한 것도 돈 때문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참 착했어요. 집안 경제사정 어려운 걸 알고 부모님한테 상의도 안 하고 형 있는 특성화고에 지망했죠. 기술 자격증을 따면 돈을 빨리 버니까. 근데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은 보세요. 회사며 교육부, 노동부며 누구 하나 민호 사고에 책임을 지고 있나. 아직 대표 재판은 진행 중이잖아요. 말단 교사인 민호 담임선생님만 징계를 먹었어요."

실제로 지난해 11월 29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제이크리에이션 대표와 공장장의 재판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다. 민호군의 사망 1주기가 지났지만 재판은 아직 2차 공판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기업에 부과된 건 과태료뿐이다.

광주고용노동청은 지난해 12월 8일 ㈜제이크리에이션에 대한 특별감독 결과를 밝히며 과태료 6700만 원을 물도록 했다. 한편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사고의 책임을 물어 제주도교육청과 해당 특성화고등학교에 경고 및 주의 조치를 내렸다. 담임선생님에 대한 징계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곳에 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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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의 학교 정문에 섰다. 주변을 느린 시선으로 둘러보고 한 손은 얼굴을 쓸어 내렸다. 퇴근길 아들을 태우며 옆자리에 앉아 "차비 굳었다"고 좋아했던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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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올라 연습했던 지게차가 보였다. 못본척 했지만 또 시선이 갔다. 아버지는 하늘과 지게차를 번갈아 보며 또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 이희훈

 
그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에 분노가 짙게 배어날 때쯤, 민호군이 다녔던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 도착했다. 한라산을 뒤로한, 탁 트인 공간에 위치한 학교였다. 정문을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그곳으로 쉽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 민호가 지게차 운전 면허증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죠?
"네. 제가 시켰어요. 전문 자격증이니까. 전 민호가 실습을 나가면 지게차 운전하는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민호는 회사의 중추 역할을 하는 기계를 맡았고, 그 기계가 그렇게 자주 고장이 났어요. 사망 사고가 있기 전에, 민호가 겪은 사고만 두 번이 더 있었잖아요."

실제로도 그랬다. 기계의 잦은 고장 때문이다. 첫 번째 사고에선 휴대폰 액정이 깨졌고, 두 번째 사고에선 기계 위쪽을 정비하다 떨어져 갈비뼈 타박상을 입었다. 세 번째 사망 사고 역시 기계 고장을 해결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로 향했다 변을 당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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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영씨가 아들의 학교를 찾았다. 교정에 들어서자 이씨는 아들의 담임에게 전화를 했다.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지만 담임에게 내려진 징계를 걱정하던 이씨는 계획에 없던 만남을 가졌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눈 두사람은 옅은 미소로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 이희훈

 
- 사고 소식은 누구에게 들으셨나요?
"갑자기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민호가 사고가 났다는데 회사쪽에 전화를 해보라고. 곧장 회사에 전화했죠. 그쪽에서 말해요. 민호가 눈은 뜨는데 대답을 못 한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전 잠깐 의식을 잃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죠."

- 사망하기 전 심정지도 왔다면서요?
"중환자실 있었을 때 두 번이요. 사고가 나고 3일 만에 첫 번째 심정지가 왔어요. 30분째 심폐소생술을 했더니 의사가 그만하자고 해요. 애한테 고통스럽다고. 보통 4분 이내에 산소 공급이 안 되면 살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 30분 이상을 하고 있는데도 자가호흡을 못하지 않느냐고. 저는 그랬어요.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호흡만 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1시간 10분 후에 맥이 돌아왔지."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민호군의 전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 후 선생님이 정문 쪽으로 나왔다. 이씨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고 그가 학교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몇 분간이나 바라본 후에야 차에 탑승했다.

- 민호가 떠올라 마음이 안 좋으시겠어요.
"사실 애가 죽은 게 내 탓 같아요. 죄책감이 심해요. ㈜제이크리에이션도 제가 가라고 했거든요. 예전에 화물차 운전할 때 그곳 본부장과 아는 사이였어요. 도중에 본부장이 바뀐 줄은 몰랐죠. 그것도 그렇고, 제가 이런 가난한 집안에서 민호를 태어나게 만든 것 같아서. 모두 내 잘못이죠."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와 만난 이래 가장 긴 대화 공백 상태였다. 

가족은 새로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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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영는 함덕 인근에 살며 치킨피자 가게를 운영하고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하던 해변에 홀로 서 생각에 잠겼다. ⓒ 이희훈

 
가족은 한때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 살았다. 사업 실패로 경제 사정이 최악이던 시절, 젊은 부부는 억척스럽게 치킨 피자집을 운영하면서 어린 아이 둘을 키워냈다. 어려움을 가족과 함께 이겨낸 장소. 함덕 해수욕장은 이씨에게 그런 의미가 묻어있는 곳이었다. 

해수욕장에는 귀와 볼이 얼얼할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는 옷에 달린 모자를 냉큼 뒤집어썼다. 그리고 백사장을 넘어 바다 근처로 나아갔다. 백사장에는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그는 쓰레기를 보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쓰레기를 보시는 거예요?
"여기 별의별 게 정말 많아요. 특히 여름철엔요, 사람들이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와서 돌 속에 넣곤 까먹고 그냥 가 버려요. 그러면 저는 그걸 주워다 신기도 했죠. 반지나 목걸이같은 것들도 주워요. 아이들 걸 발견하면 아들에게 선물로 준 적도 있어요. 지금 1년동안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당시에 일했던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 어머니도 일을 안 하시는 거죠?
"못 하죠.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8월 28일 입원했었어요."

- 민호 형은 어떤가요? 
"군생활 하다보니까 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해요. 어제도 소대장님과 통화했는데 가끔 보면 동생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대요."

- 아버지 역시 많이 힘드시죠?
"힘들지 않다고는 말 못하죠. 그렇지만 가족이 다 힘든데 나까지 울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애 숨이 끊어질 때 조금 울고, 그 후론 소리내서 운 적 없어요. 물론 혼자서 조용한 곳에 가서 운 적은 많았죠."

-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계세요?
"민호가 사고난 후에 열흘동안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아마 사고나자마자 바로 숨이 끊어졌다면 사회로부터 이렇게 큰 주목을 받진 못했을 거예요. 근데 열흘을 버텼잖아요. 전 그게 민호가 제게 준 숙제라고 생각해요. 

- 그 숙제는 뭔가요?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그리고 다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기업을 관리감독하게 만드는 거예요. 민호가 관에 들어갈 때 약속했어요. 이 숙제를 해결하고 나서 너 만나러 가겠다고. 민호가 준 숙제를 풀고 나면 그때 통곡하며 울 거예요. 그게 되기 전까지는 포기는 안 할 거예요. 쓰러지지도 않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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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고 이민호군을 만나러 가는 이상영씨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 이희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씨는 함덕 해변을 떠났다. 역시 민호 관련 영상 자료를 모으러 간단다. 민호군의 일에 그는 아직 열심이다. 물론 그 와중에 가계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집을 구입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가족이 함께 모았던 돈도 민호군 어머니의 입원료 등의 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때 가족이 함께 꿨던 꿈은 멀어져가고 있지만, 이씨의 가슴에는 어느덧 민호가 준 숙제를 풀고 크게 울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새겨져 있었다. 
#이민호 #특성화고 #실습 #고등학교 #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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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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