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는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주장] "전교조는 사회적 약자 아니다"는 아니다

등록 2018.11.29 15:24수정 2018.12.0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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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 의해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지 5년째를 맞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교조 파괴 공모자 규탄-법외노조 취소-노동3권 쟁취-해고자 투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4 ⓒ 최윤석

 
나는 현재의 전교조에 대해 매우 절망하고 있는 30년 지기 '전교조 교사'다. 물론 이 절망의 이면에는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이 숨어 있다. 

돌아보면 범국민적 지지와 성원 속에서 탄생(1989년)한 전교조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 두 번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하나는 1500여 해직교사의 복직(1994년) 국면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만의 합법화(1999년) 국면이다. 두 시기 다 전교조에 건 국민적 기대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국민의 전교조, 학생들의 전교조'로 거듭나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여타 정치사회적 외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전교조에 있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뜬금없이(나는 그렇게 느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도 그냥 우리 탓이려니 했다. 그의 말에 적잖은 전교조 교사들이 모멸감을 느꼈을 것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11월 26일자 한겨레신문 '김연철 칼럼'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거짓말, 합의 그리고 통일교육'이란 제목에서 전교조 교사로서는 너무도 익숙한 '통일 교육'이란 단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학교의 통일교육이 중요하다. 모범적인 평화국가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갈등 해결의 경험을 길러주고, 상호 이해의 기회를 제공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습관이 폭력을 예방하고 평화의 문화를 낳는다. 과연 학교교육 없이 시민교육이 가능하겠는가?"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학교의 통일 교육'은 누가 할까? 누가 해왔을까? 내 가슴에서 절로 튀어나온 물음이다. 전교조 교사들이야말로 오랫동안 빨갱이라 매도당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투옥·해직되는 등 온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 교육에 앞장 서 오지 않았던가?

'사회적 약자 아니다'? 어떤 전교조인가?
 

전교조가 매년 초 방학을 활용해 여는 참교육실천대회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문재인 정부의 핵심 참모들에게 묻고 싶다. '전교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 전교조는 어떤 전교조인가.
  
역대 정권과 전교조 간 30년 불화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 불행하게도 전교조는 합법화 이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어떤 정부에서도 교육 개혁의 실질적 동반자 대접을 받지 못했다.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전교조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도 찬밥 신세 내지는 껄끄러운 존재가 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소위 '강성' 전교조가, '사회적 약자' 아닌 강자로서의 전교조가 움켜쥐었던 무슨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었을까.


전교조가 정치권이나 일반 시민에게 그렇게 비칠 소지도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전교조 교사들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촛불 시민'이었고, 민주주의 신봉자이며, 평화 통일 교육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고 이를 실천코자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많은 혁신 학교에서 공교육의 생명을 되살리고자 어제도, 오늘도 힘써 일하는 선생님들이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전교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교조가 현 정부를 향해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하고 또 투쟁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초법적 폭거인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해결해 달라는 것 하나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물론이고 국내의 학계와 국가인권위원회, 지난 8월 1일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까지 나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현행법 안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그리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여태 그걸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약자' 운운하면 5만여 전교조 교사 중 어느 누가 이를 수긍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현재의 전교조가 사회적 약자인지 아닌지 나 역시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강자가 되었든, 약자가 되었든 '전교조 교사'들은 출범에서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자 부단히 분투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전교조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약자가 되어버려서 영영 사라지기라도 하면 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고 좋을 것인가? 평화통일 시대의 물꼬를 트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사회적 약자 #교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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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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