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병' 단계를 지나니 'DIY' 신세계가 열렸다

[한때 문과 체질론자의 생활의 기술 예찬론] 내 삶의 주인 되기

등록 2018.12.04 18:47수정 2018.12.0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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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나 유튜브에는 이런 공구 사용법이나 시공 방법 같은 글과 동영상이 넘친다. ⓒ 셀프인테리어 이폼(유튜브 갈무리)

    
5년도 전의 일이다. 집의 변기가 막혔다. 난생 처음 겪게 된 상황, 욕실의 고무 압착기로 용을 써 봤지만 허사, 부득이 '설비' 가게에 도움을 청했다. 달려온 설비 기사는 기다란 모양의 '관통기'라는 기구를 변기 속에 넣어 몇 차례 움직이더니 이내 상황을 해결해 버렸다.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은 탄성을 질렀지만, 기실 표정들은 '애걔걔'에 가까웠다. 그는 나에게 기본 출장비로 3만 원을 요구했다. 너무 간단히 막힌 걸 뚫어버리는 것도 그랬고, 수리비도 믿어지지 않아 허탈했는데, 그는 안 해도 될 말로 부아를 지르고 집을 떠났다. 미끄러운 눈길에 왔으니 위험수당도 줘야 하지만, 안 받을게요라고.

허탈해진 까닭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공임이든 기술료든, 우리는 들인 노력에 비해 그가 청구한 비용이 지나치다고 여긴 것이다. 그건 일이 까다롭고 어려워 땀을 뻘뻘 흘리며 수리한 기사에게 수리비를 건네며 그의 수고에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미안해 하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감정이다.

집안일, 엔간함도 안 쉽다

나는 그날, 바로 동네의 철물점에서 만 원도 채 안 주고 그가 쓴 것과 비슷한 관통기를 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후, 우리 집에서 그걸 쓸 일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다시 그럴 일이 있으면 나는 기사를 부르는 대신 인터넷의 관련 기사나 동영상을 참고하여 막힌 변기를 뚫는 일을 몸소 해낼 것이다.

집을 건사하고 살다 보면 이래저래 손이 가야 할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성능이 다 된 전등, 또는 퓨즈를 갈거나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고, 이가 맞지 않는 싱크대를 조절하는 일 정도라면 굳이 일손을 빌리지 않고도 엔간한 가장이나 주부라면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엔간함'에 드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내 친구는 전구 한 알 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집안일은 '마누라에게 일임'하고 산다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기술자를 불러주는 거로 가장의 몫을 다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술자를 부르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솜씨 좋은 이웃에게 부탁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차 한 잔 대접하는 일과는 달리 요구하는 대로 비용을 지급해야 하니 말이다. 일상에서 맞닥뜨린 사소한 일마다 전문가를 불러서 해결할 만큼 여유로운 집은 많지 않다. 또 내가 겪은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고비를 요구할 때 느끼는 열패감도 간단치 않다.

제이티비시(JTBC)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의 특별출연자로 나와 막힌 변기를 뚫는 솜씨를 보여준 걸그룹 소녀시대의 윤아는 저 '엔간함'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은 이다. 그러나 남자 가운데서도 이런 가사 작업에 '손방'(아주 할 줄 모르는 솜씨)인 이들이 적지 않다.
 

내 가사 공작은 충전 드릴을 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공구의 사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이즘이다. ⓒ 장호철

 
내 집을 고치고 가지런히 하는 가사 작업을 할 수 있는 '기술'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일에 모르쇠 하면서 자신이 '문과'라서 그런 작업에 소질이 없다는 변명을 내세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건 '이과생'이라는 이유로 쓰고 적는 일은 문과생에게 미루는 관행과 같은 맥락이다.

예의 '문과 체질론'에는 기계나 연모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이과생보다 낮고 그 운용에도 무디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평균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한, 이 체질론이 터무니없다고 할 수는 없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 역시 그 논리에 동의해 온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 일상이 반드시 문과적 특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걸 시나브로 깨닫기 시작했던 것은 가정을 꾸리면서다. 가장으로서의 삶이란 좋든 싫든 아내와 아이들의 그것까지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삶은 때로 우리 자신을 낯선 경험으로 밀어 넣는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때, 플러그를 끼운 적당한 길이의 콘센트를 만들고 새 공간에 백열등을 달아야 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였다. 사람을 불러서 시킬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중학교 때 배운 전기 배선도를 복기하면서 그 일을 무사히 치러냈다.

식구들을 데리고 셋방살이를 거듭하는 동안 전기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씩 관련 공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망치부터 드라이버, 펜치, 니퍼, 롱 노즈 프라이어 따위의 주로 전기를 만지는 데 쓰는 공구가 먼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프라이어, 몽키 스패너(정확한 이름은 어저스터블 렌치 Adjustable Wrench) 등의 일반 공구로까지 확대되었다. 목공 공구까지 관심을 넓힌 것은 목수이셨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때문이었다. [관련 글 : 목수 아버지의 추억 ]

공구를 마련하고 즐거이 이런 작업에 동참하면서 나는 내 핏속에 이런 노동과 친화적인 유전자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 나이 들면서 가족 친지들로부터 선친과 화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내 모습에는 일찍이 목수로 나무를 다루셨고 그 솜씨로 집안일을 척척 해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일정하게 겹치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일, 가족을 위한 봉사의 즐거움

물론 선친처럼 능숙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러한 집안일을 즐거이 해내는 편이다. 공작에 열중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을 하다가 순서가 뒤바뀐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내 솜씨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일을 어설프게 마무리할 때도 적지 않다. 그래도 가족들은 내 봉사와 노동을 기꺼워한다. 내가 봉사를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가족들의 격려와 호응 때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동안 하나둘 모은 공구들은 커다란 공구함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소형의 공구함 하나를 더 마련했다. 비록 값싼 중국제지만 전동 드릴을 들였고, 유명한 독일 상표의 충전 드릴도 마련했다. 소켓 렌치와 육각 렌치 세트까지 갖추게 된 것은 그게 필요해서다. 나는 싸구려지만 전기인두도, 나무에다 핀을 박는 기구인 건 태커(gun Tacker)도 갖고 있다.

생활 사진가들이 흔히들 렌즈 같은 데 집착하는 이른바 '장비병'에 걸리듯, 어설프게 공작(工作)에 입문해 나도 한동안 연장(공구)을 마련하는 데 빠져 있었다. 독일 상표의 충전 드릴을 마련한 게 그 무렵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이 기다란 비트를 끼운 충전 드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을 선망했다. 그러나 이내 그걸 갖는 것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별개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콘크리트 벽에다 구멍을 뚫기 위해선 이러한 공구가 필수다. 전동 해머 드릴은 그 작업을 순식간에 해칠울 수 있게 해 준다. ⓒ 장호철

 
다행스럽게 공구는 카메라 렌즈처럼 비싸지 않다. 값비싸다고 할 만한 건 충전 드릴 외에 지난해에 매입한 해머 드릴이 있다. 베란다에 철제 선반을 하나 달아야 해서 콘크리트 벽에 칼브럭(스크류 앵커 screw anchor)를 꽂을 구멍을 뚫으려는 데 중국산 전동 드릴로는 부지하세월이었다.

나는 관리사무소에서 빌려온 대형 해머 드릴로 불과 1분여 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해머 드릴에 꽂힌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인터넷 정보로 일본 상표의 제품을 고른 뒤 벼르고 별러서 몇 달 뒤에 가정용 해머 드릴을 사들였다. 그걸 쓸 일이 또 있겠냐는 이웃의 염려와는 달리 나는 이 물건을 아주 생광스럽게 잘 쓰고 있다.

공구를 갖춰 놓고 집안 여기저기를 손댄다고는 해도, 일은 대체로 사소한 것이다. 벽에 못을 박거나 전등을 갈고, 헐거워진 나사를 죄는 따위의 일이 고작이라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선망해 온 것처럼 능란하게 공구를 써서 시원하게 처리하여 모양새 나는 일은 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로 내 솜씨는 그저 그런 수준을 벗지 못했다. 일은 벌여놓았는데 마무리가 안 되어 아파트 관리 기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일도 몇 차롄가 있었다. 그것은 역시 내 기본기가 어디 내놓을 수준이 되지 않을 만큼 시원찮았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

혼자서 꽤 고난도의 공작에 도전한 게 4년 전이다. 고장 난 안방 욕실의 샤워기 수전(水栓)을 교체하는 일이었는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성공적으로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관련 글 : 손방 문학도의 샤워 수전 교체기)

돌이켜보건대 퇴근 뒤 여러 날에 걸쳐 이루어진 이 작업은 내 가사 공작사(?)에 변곡점이 된 듯싶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난도라 실패를 거듭하고 착오를 교정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작업 능력이 진일보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로 발전하는 작업 능력

그리고 다시 4년, 올해는 그 두 번째 변곡점을 맞은 듯하다. 연초에 현관문의 디지털 열쇠가 고장이 났고 그걸 교체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설치 기사 대신 몸소 그걸 현관문에 달면서 나는 충전 드릴로도 직결 나사를 철판에다 너끈히 박을 수 있다는 걸, 고작 나사를 죄고 푸는 일에만 썼던 드릴을 훨씬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둘 사 모은 공구는 결국 큰 공구함 외에도 작은 보조 공구함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 장호철

 
그리고 얼마 뒤엔, 욕실에 소형 선반을 다는 일을 하면서 일에 따라 써야 하는 연장이 달라지고, 그 사용법 또한 조금씩 다르다는 걸 배웠다. 타일을 뚫는 드릴 날이 따로 있고, 타일을 뚫은 뒤에는 해머 드릴이 쓰인다는 걸 나는 부지런한 선배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동영상을 통해 익히고 마침내, 해냈다.

그러고 나니 방의 벽면에 구멍을 뚫고 나무 선반을 다는 일 따위가 손쉬워졌고, 나무를 잘라 적당하게 나사를 박아서 공작물을 만드는 게 더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제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하는 톱질은 잘 늘지 않았다. 나는 전문가인 목수의 능력을 인정하는 거로 내 수준을 겸손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요즘은 원하는 대로 재단까지 해서 보내주는 목재 가게도 인터넷에 성업 중이다. 만들 공작물의 치수를 입력하고 나무의 종류를 선택하여 주문하면 잘 마른 부재가 배송되어 오는 것이다. 나사를 박아 조립하면 끝이다. 얼마 전에는 침대 옆에 놓을 작은 탁자를 아쉬워하는 아내를 위해 하나 만들었더니 아내는 썩 흡족해했다.

생활의 필요와 흥미와 관심으로 시작한 가사 작업이지만 그건 비용을 줄이는 데도 적잖이 이바지한다. 요즘 엔간한 일도 기술자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 웬만한 가장이라면 배관이나 전기 공사 따위는 기본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건 교육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비싼 인건비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아내의 요청으로 만든 작은 탁자. 침대 옆에 두고 요긴하게 쓰고 있다. ⓒ 장호철

 
요즘은 주부들도 용감하게 가사 작업에 나서고 있다. 유튜브에는 주부가 올린 작업 동영상이 심심찮다. 홈쇼핑에선 가장용 공구를 주부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면서 판매에 열을 올린다. 말하자면 이제 이른바 '디아이와이(DIY)' 시대가 온 것이다.

어느 일간지 연재 기사인 '홀로' 사는 사람들의 사연 가운데는 '내 집을 위한 기술' 이야기도 있다. 덜컹거리는 문짝과 막힌 배수관을 공구통 하나면 간단히 고치는 독신 여성도 그렇게 되기까지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흘린 땀과 눈물을 고백하고 있었다.

DIY- 생활의 기술, 삶을 보다 풍성하게

그이도 학교 수업이 "죄다 입시용 또는 수능용으로 돌아갈 때 그나마 실과나 기술가정 같은 수업들은 당장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될 것들을 가르쳤다"고 회고한다. "집과 관련된 일은 그게 가사가 됐든 기술이 됐든 지식이 됐든 사소한 일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의 영역이 될 수 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건 내 최초의 전기 작업이 중학교 '공업' 시간에 배운 전기 배선도를 복기함으로써 이루어진 것과 같은 거였다. 그것은 대학까지 16년 동안 받은 교육 중, 실생활에서 써먹었던 유일한 기술이었다. 비록 당시 실습은커녕 교사의 구두 설명으로만 배운 것이지만 말이다.

교직에 있을 때, 남자아이들이 기술·가정 시간에 바느질을 배우는 걸 보고, 머리를 끄덕인 적이 있다. 학교에서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익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입시 과목이 아니라고 해마다 그 내용이 간략해지고 있다니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일이 없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일찌감치 이 공작 전선에 나선 선각자(!)들이 올려놓은 각종 시공기(施工記)와 영상이 넘친다.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믿었던 '집을 위한 기술'이 내 손을 거치면서 온전히 내 생활을 바꾸어 놓은 사례다. 기실 필요한 것은 조그마한 용기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생활 주변의 간단한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해 사람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 거듭되는 것은 가정이든 사회든 비용을 늘리고, 생활의 범주를 줄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생활은 의식주의 기본뿐 아니라,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문제 상황을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주변을 일정하게 다스릴 수 있는 걸 기본으로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기술, 그것은 내가 스스로 가꾸어가는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일이고, 그걸 통해서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디아이와이(DIY) #생활의 기술 #삶을 풍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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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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