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가 "나와 겹친다"라고 평가한 책

[서평]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등록 2018.12.05 09:31수정 2018.12.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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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라는 이름이 가지는 이름값이 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요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기에 그의 추천사를 받은 책에는 관심이 간다. 더군다나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고 말하니 어찌 그냥 지나칠까.

문유석 판사는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부장판사다. 직업이 주는 무게감에 '언제 이런 글을 쓸까' 싶지만 알고 보니 세상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글로 표현하는 작가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쓴 글들을 모아 <판사유감>이라는 책으로 엮은 전적이 있으며, 중앙일보에 오랫동안 '문유석 판사의 일상유감(有感)'을 기고했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 문학동네


  
<개인주의자 선언>은 법정에서 만나는, 혹은 법정에 서야 하기에 늘 객관적이고 냉정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여러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 타인 그리고 사회에 대한 관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가며 현상의 핵심을 짚어낸다.

"왜 개인주의인가"

1부는 현직 부장판사인 작가가 자신이 '개인주의자'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합리적 개인주의자'라 밝힌다.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는 빠른 시일에 국가를 건설해야 했기에 여러 가지를 서구에서 수입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기본은 개인이라는 것이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전체, 집단을 중요시했던 시대에 묻혀 개인은 사라졌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모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다.

저성장 시대, 고통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집단주의를 내세우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작가는 그것이 올바르다 손을 들어준다. 안 그래도 불행한 시대에 더 불행한 이유는 수직적 가치관 때문이라고 힘을 실어준다.
 
"왜 개인주의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 본문 25쪽
 
그렇게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할 때야 비로소 사회를 바르게 볼 수 있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현상을 직시하고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그러니까 당연하다'가 아니라 '그러니까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고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 함께 고민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한걸음 더 좋아질 수 있을까

2부 '타인의 발견'에서는 그런 눈으로 바라본 안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정규직의 아픔, 깡통주택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 유민이 아버지 등 우리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왜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걸까. 나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기에 답이 없는 걸까.

작가는 나름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간다. 물론 기본적으로 정치적·제도적인 문제가 해결돼야겠지만 그 기저에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관심도, 방법도 생겨남을 작가는 곳곳에서 이야기한다.

한남대교를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실종된 아이를 찾아달라는 현수막에 먹먹했다는 작가는 에필로그에서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를 무심히 지나칠 뻔한 이야기를 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낄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다. 그리고 그 범주가 확장될수록 사회는 더욱 좋아질 것임을 확신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 있지는 못하기에 서로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 본문 119쪽
 
글을 통해 느껴지는 작가는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도 콕 찝어내는 그의 객관성에 놀라기도 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평범한 취준생을 대변하여 공감하고 눈물짓게 했던 장그래가 실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평범한 우리와는 다르게 노력과 열망, 뛰어난 직관을 가지고 운까지 따르는 인물이라니 보통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란 소린가.

어쨌든 감수성 풍부했을 문학 소년은 객관적 시선의 어른으로 성장하여 이렇게 말한다. "결국은 직시할 문제와 모색할 해결책 두 가지가 있을 뿐 아닐까?"(본문 229쪽)라고.

불편한 진실들

3부에서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들을 보여준다. 교육, 정치, 시민의식 등 여러 가지가 문제지만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를 살펴보며 타산지석 삼기도, 모범으로 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수입해 오는 것은 개인주의가 근간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여온 민주주의처럼 여러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높은 세 주담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좌우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각 국면에 따라 서로 타협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성과분배나 명성을 떠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안을 연구하고, 매뉴얼을 제시하고, 올바른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를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본다.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책임자를 결국엔 '악'을 행한 자로 칭하는 사회이기에 결정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정확하다. '차악'을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위해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기에 개인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함을 개인주의자 문유석은 이야기한다.

최근에 '리얼 생활밀착형 법정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단 <미스 함무라비>가 방영했는데 이 책 역시 자신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소설을 바탕으로 직접 각색하였다하니 그의 글쓰기가 가진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판사유감'에 이어 '일상유감'이라니 앞으로도 세상에 대한 꾸준한 그의 관심과 글을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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