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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년" 운운하는 경제관료, 3가지 경고 던지는 김혜수

[김유경의 영화만평] 올곧은 더불어 삶을 응원하게 한 <국가부도의 날>(2018)

18.11.30 18:30최종업데이트18.11.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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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개인이든 국가든 채무에 대해 지급불능이면 부도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 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수입과 수출에 대해 국가 보증이 먹히지 않는 사태로 그걸 짚는다. 그 낌새를 맡은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한 군데만 막혀도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순식간에 망가지는 사회 경제 구조를 예시한다. 갑수(허진호 분)처럼 하부 구조에 속하면서 그 타격을 버티지 못하면 삶이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1997년에 일어난 국가부도 사태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은 제목부터 심각하다. 그런데도 상영 이틀 째인 29일 현재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건 왜일까. 영화가 몇몇 캐릭터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서다. 어떻게든 알려서 보통사람들의 피해를 막아보려던 한시현의 발버둥이 바위에 달걀 던지는 격으로 끝난 게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심증에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한시현을 대놓고 무시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처럼 정부 정책은 지금도 엘리트가 담당한다. 정치에서도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는 엘리트주의를 선호했다. 엘리트의 결정이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논리에서다. <국가부도의 날>은 여지없이 그 논리를 깨부순다. IMF 체제를 서둘러 끌어들이는 재정국 차관이 제 오른팔에게 댄 이유는 어이없을 만큼 사적이다. 노조의 꼴이 보기 싫어 산업 체질을 바꿔야한다는 친재벌 관점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의식과 다르지 않다.
 
국정농단에 낀 재벌에 대한 판결이 남아 있는 중에 마주하게 된 정경유착의 기밀 정보 누설 장면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연일 달궈지는 노사정의 뜨거운 감자가 자연스레 떠오르니 더 그렇다. 고용 안정성과 노동 유연성을 얻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52시간 근로제 탄력 적용'의 실질적 수혜자는 누가 될까. 먹고사니즘과 남의 말에 쏠려 날인했다가 비싼 수업료를 치른 갑수가 다시금 울며 베란다 창턱을 딛지 않아야 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갑수는 면접시험장을 향하는 아들에게 당부한다. "누구도 믿지 마라." 그 외침은 뭐든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리라. 정말 그러려면 한시현의 세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언제든 위기는 기회고, 위기는 반복된다. 둘째,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항상 깨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외국인이 쥐떼 근성이라고 표현한 우리네 타인지향 세태 하에서는 쉽지 않은 삶의 방식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한시현에겐 든든한 빽이 있다. 한시현을 향한 "계집년"이라는 비하에 대해 발끈해서 덤비는 팀원들이 있다. 한시현이 기막힌 낭패 후에도 인간적으로 건재하면서 그 바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건 바로 팀워크 때문이다. 팀워크는 갑수의 불신에 깃든 사각지대를 중지(衆智)와 온기로 밝혀 없앨 수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어찌 보면 갑수의 타자 불신과 상통하는 건 윤정학의 자기최면이다. 윤정학은 사리사욕을 꾀하지 않은 한시현과 대비되는 캐릭터다. 윤정학은 불확실한 투자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말한다. "난 속지 않는다." 정부의 거짓 발표와 기레기들 기사에 대한 항변이다. 윤정학은 오렌지 투자자(류덕환 분)의 뺨을 냅다 갈기는 식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행하는 돈벌이에 대해 갈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지명도가 높은 투자전문가로 승승장구한다.
 
그 외에 <국가부도의 날>에는 영혼 없는 공무원 캐릭터가 몇 등장한다. 다 알면서도 끽소리도 못 내는 한국은행 총재(권해효 분)와 갈팡질팡하다 내쳐지는 전 경제수석(엄효섭 분)이다. 영혼이 없으면서 탐욕스러운 새 경제수석(김홍파 분)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모를 차관의 꼭두각시다. 이런저런 직무유기나 공직기강 해이가 최근 불거진 삼바 분식회계를 눈감은 토양인 셈이다.
 
어쨌거나 <국가부도의 날>은 골치 아픈 경제 문제를 비교적 쉽게 전달한다. 한시현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갑수의 상황을 그때그때 삽입하는, 즉 이론과 실제를 병행한 구성이 한몫한다. 한시현과 윤정학, 그리고 갑수 등 캐릭터마다의 갈등과 고뇌가 뚜렷한 것도 그들의 메시지를 메아리치게 한다. 얄미운 차관 역을 선보인 조우진의 연기는 무거운 공기를 가르는 잔재미를 안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국가부도의 날> 엔딩은 캐릭터별 후일담 형식이다. 각자 다른 선택으로 지니게 된 내상들이 얼비치나 번듯한 삶의 풍경이다. 객석에서 일어나다 보니 대다수 관람객이 수능을 치른 고3인 게 눈에 띈다. 그들이 윤정학처럼 속지 않으면서도 한시현처럼 인간적 시야를 잃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올곧은 더불어 삶 속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갑수가 아들에게 바라는 삶도 그것이리라.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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