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앱 때문에 붙잡혔는데... 15년만에 드러난 진실

[나는 왜 '나쁜 놈'을 변호했나 2] 손톱 깎을 때면 생각나는 현미

등록 2018.12.06 19:33수정 2018.12.0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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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 말

세계 6위. 미국의 암시장 전문 조사업체 '하보스코프(Havocscope) 닷컴'이 2015년 발표한 한국 성매매 시장의 순위다. 그 규모는 연간 120억 달러(약 12조 9천억 원)로 중국과 스페인, 일본, 독일, 미국 다음으로 크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 거대한 시장에 기여 아닌 기여를 했다. 채팅앱 등으로 시간과 장소 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2018년 8월까지 입건된 성매매 사건 중 채팅앱을 이용한 경우는 4101건으로 전체의 26%였다.

인터넷은 나이도 숨겨줬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송옥주 의원은 또 성매매 혐의로 입건된 여성 청소년은 2013년 42명에서 2017년 155명으로, 또래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거나 알선한 혐의로 입건된 청소년 역시 같은 기간 130명에서 245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아동·청소년 성매매에 가장 많이 쓰인 경로는 채팅앱(67.0%)과 인터넷카페/채팅(27.2%)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국은 성매수자뿐 아니라 성판매자도 처벌한다. 다만 청소년의 경우 처벌이 아니라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한다. 주로 수강과 상담명령이다. 성매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를 아직 어린 청소년에서 씌울 수 없고, 이들이 대개 가정의 해체 등 환경적 요인으로 성매매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현미도 그렇게 만났다.

청소년과 스마트폰, 그리고 성매매

청소년 사례관리로 알고 지내던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다. 상담사가 변호사를 좋은 일로 찾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우울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의 목소리에서는 우울함을 넘어 고통스러움이 느껴졌다.

현미는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 채팅앱으로 성매매 대상을 찾았다. 누군가와 조건이 맞았고, 그 남자에게 짧은 시간 동안 응해주면 10여만 원이 쥐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시간, 약속장소에서 현미를 기다린 것은 형사였다.

경찰은 현미의 스마트폰을 압수했다. 통화기록과 메시지 내역을 조사하고 채팅 대화도 복원해 그와 성매매한 남성 수십 명을 찾아냈다. 그들은 모두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현미 역시 처벌대상이었다. 다만 미성년자라 가까스로 형사처벌만은 피할 수 있었다. 법원은 그에게 수강·상담 명령을 내렸다.

현미는 그저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무상담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처분이 바뀌어 시설, 심하면 소년원에 갈 수도 있다는 걱정에 상담복지센터는 꼬박꼬박 찾았다. 찾기만 했다.

상담사는 그저 시간만 보낼 수 없었다. 무엇이든, 현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성판매로 상담명령을 받은 청소년들은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 품고 있었다. 상담사는 현미와 시간만 때우고 싶지 않았다. 

그의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어쩌면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서일까. 현미는 의무상담시간을 모두 채워갈 때 즈음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미에게는 엄마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어린 현미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다행히 지인 중 현미를 돌봐주겠다는 부부가 있었다. 엄마는 그들에게 다달이 얼마씩 돈을 주기로 하고 현미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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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을. 현미에게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 unsplash


 
어느 여름날, 창 너머 뉘엿뉘엿 지는 해가 구름과 함께 만든 아름다운 노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그 풍경은 현미에게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15년 전 그날, 위탁 가정의 '아저씨'는 현미를 강간했다. 현미는 세 살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엄마도 몰랐다.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왔지만, 대부분 몇 시간 만에 헤어졌다. 그렇게 현미는 이 부부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다. 

15년 전 일이었다. 증거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현미의 기억마저 명확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그때가 언제쯤인지 기억나니? 계절이라든지."
"아마 7~8월 정도일 것 같아요."
"시간은? 시간도 기억나니?"
"저녁이었어요. 한 6~7시 정도일 거예요."


순간 현미의 진술을 의심했다. 15년 전, 겨우 세 살 때 기억을 이처럼 또렷이 기억할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중요하다. 피해자 진술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사건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그 중요성 때문에 피해자는 간혹 범행 상황을 꾸며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오히려 진술에 모순이 생길 수 있다. 이때 가해자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조그마한 모순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피해자의 진술 전체를 거짓으로 몰아간다.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면 사건은 그대로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어진 현미의 말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아저씨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그리고 상당히 더웠던 것 같아요. 초여름은 아니에요. 저를 앉은뱅이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짓을 했는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더니 창밖에 노을이 보였어요. 초저녁 같았어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가슴 속에 담아두고 끙끙 앓아온 기억이 지워질 리 없었다. 현미의 아픔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했던 내가 미안했다. 현미는 그날의 기억을, 그날의 창밖 풍경을 15년 동안 온전히 몸에 새겨두고 있었다.

동시에 나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기소 가능성이 없다!' 가해자는 당연히 범행을 부인할 것이다. 현미의 진술이 아무리 일관되고 구체적이라 해도 피해자 진술만으로 15년 전 사건을 기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15년 전 사건, 하늘이 도운 줄 알았다

고소야 어려울 것 없지만, 결국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다면... 현미의 상처는 더 커질지 모른다. 그 짐은 온전히 현미가 짊어져야 한다. 가슴 아프지만, 결정 역시 현미가 해야 했다. 어쭙잖게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현미야. 내가 생각할 때 고소를 해도 그 아저씨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미 20년 가까이 지난 사건이고, 증거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 아저씨를 찾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만약 그 아저씨를 찾았는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네가 너무 힘들지 않겠니?"

현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인했다.

"변호사님. 고소라도 해보고 싶어요. 중학교 때 진짜 절친이 있었는데, 가끔 그 아이네 집에 놀러 가서 자고는 했어요. 그러다 딱 한 번 그 아이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한테도요. 정말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요. 이렇게 어렵게 꺼내놓았고 변호사님까지 찾아왔는데, 고소라도 해보고 싶어요."

현미는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았지만, 나는 순간 웃었다. 기쁨의 웃음이었다. 현미가 생각보다 강인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내가 기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미가 말한 중학교 친구였다.

현미는 다행히도 딱 한 명, 중학교 시절 단짝에게 성폭행 피해를 털어놨다. 그렇다면 그 친구의 진술 역시 증거가 될 수 있다. 물론 현미의 진술보다는 힘이 떨어질 수 있지만, 피해자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고소장을 작성해 현미와 함께 경찰을 찾았다. 경찰의 도움이 간절한 사건이었다.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부터 난관이 예상됐고, 현미의 옛 친구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경찰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현미의 기억에 따라 주소지를 특정, 당시 거주자를 찾을 수 있었다. 중학교 친구는 학교 자료로 비교적 수월하게 찾았다. 다행히 이 친구는 현미가 털어놓은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기꺼이 진술서를 써줬다. 필요하다면 법원에 출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불안했다. 가해자가 잡아떼면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경찰에게 거짓말 탐지기라도 사용해 보자고 했다. 그 결과가 핵심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가해자를 압박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일이 너무나 쉽게 풀렸다. 가해자는 현미와 그 친구의 진술을 알려주자 순순히 자백했다. 아마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시효가 중단된다. 아직 시간이 충분했다.

시효가 남았음을 알려주고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자 가해자는 이내 말을 바꿨다. 몸을 더듬은 적은 있지만 강간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이미 꺼내놓은 진술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사건이라도 축소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가해자는 끝까지 강간만을 부인했지만 경찰은 강간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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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이미 완료된 상태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 unsplash

 
그런데 담당 검사에게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이현미 사건 공소시효 지난 거 알고 계시죠?"
"네?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시효가 중단되지 않나요?"
"아... 해당 특칙이 2010년에 생겼는데요, 이현미 사건은 2000년에 발생했어요. 그때 아청법(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은 5년 이상 유기징역이라서요. 시효 중단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네요."


미성년자 성폭력피해사건의 시효중단 특칙은 2010년 제정됐는데, 제정 당시 공소시효가 단 하루라도 남아 있다면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현재 아동·청소년 강간사건은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에 처해진다(2013년 '무기징역' 조항이 삭제됐다 2014년 다시 추가). 이 경우 공소시효는 15년이다.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 규정이 바뀐 덕분이다.

그런데 개정 당시만 해도 이 범죄의 형량은 5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공소시효는 5년이었다. 현미 사건은 2000년 6~7월경 일어났다. 형사소송법 공소시효 조항이 바뀐 2007년 12월 전에, 2010년 시효중단 특칙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된 상태였다.

변호사로서 시효 하나 계산 못 하고 일을 벌인 것이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경찰도, 변호사가 너무나 당당하게 주장하니 의심하지 않았나 보다. 가해자도 몰랐다는 게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다.

현미에게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래도 가해자를 찾았고, 그가 비록 강제추행만 인정했지만 일부 진실은 밝혀졌으니 현미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조금은 가슴 속 분노를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현미가 언제고 다시 성매매로 돌아갈 위험이 크지 않을까. 나는 용기를 내 현미에게 자초지종을 알려주고 가해자와 합의를 권했다.

현미는 나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흔쾌히 합의에 동의했다. 고마웠다. 검사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가해자에게 연락했다. 그도 적극적으로 합의에 나섰다.

합의는 나 혼자 진행하기로 했다. 사건을 시작할 때는 그의 얼굴을 보고 따지고 싶다던 현미였으나 막상 자신을 강간한 사람을 다시 마주하려니 용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

세 살 꼬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가해자를 만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덩치가 너무나도 컸다. 신장도 185cm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세 살 꼬마아이에게는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현미의 상처에 비하면 푼돈이겠지만, 그래도 현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정도의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다. 현미에게 합의금을 전달해주며 물었다.

"결국 그 아저씨를 처벌하지는 못했네?"
"아니에요. 이 정도만으로도 족해요. 다시 찾아냈고, 자백도 받았고, 합의금도 받았잖아요."
"그래. 큰돈은 아닌데, 어디에 쓸래? 대학 가는 공부 할래?"
"공부는 싫어요. 네일아트 배우고 싶었는데, 그거 배울래요. 빨리 돈 벌고 싶어요."
"그래? 네일아트 배우면 내 손톱도 꼭 손질해줘!"


나도 모르게 '열아홉 청소년은 당연히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드러내 버렸다. 현미는 그런 꼰대 같은 내 모습을 웃으며 넘어가줬다.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다던 현미, 확인은 못 해봤지만 분명 네일아트를 배웠을 것이고 훌륭한 네일아티스트가 됐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내 손톱을 다듬어주겠다는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남자가 네일아트를 부탁해서 농담이라고 생각했을까? 꼰대임을 들키는 바람에 엉겁결에 내뱉긴 했어도 진담이었다. 네일샵 테이블에 앉아 손님 손톱을 다듬는 현미를 보고 싶었다. 지금도 손톱을 깎을 때면 간혹 현미 생각이 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은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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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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