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인 줄 알았는데...' 수돗물이 달라졌다

[기획] '물 선택'은 습관, 나이 어릴수록 수돗물에 대한 편견 적어

등록 2018.12.01 11:28수정 2018.12.01 11:28
3
원고료주기
 
a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학생들이 수돗물 정수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유성호


 
"학교에 설치된 음수대에서 나오는 수돗물, 그냥 마실 수 있는 사람?"

11월 28일 오후 서울 성수동1가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5,6학년 학생 16명에게 이렇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스스럼없이 손을 든 학생은 7명. 나머지 9명은 어떤 이유로 수돗물을 먹지 않을까? 학생들은 "물에서 쇠 맛이 난다", "(집에서 먹는) 정수기 물보다 맛이 없다", "여름에 먹기엔 물이 시원하지 않다", "음수대 모양이 먹기에 불편하다"는 다양한 이유를 댔다.

의외인 것은 "부모님이 마시지 말라고 해서 수돗물을 안 마신다"고 응답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같은 물을 마시는 것이 습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체득된 습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가 지난 10월 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서 실시한 '아리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도 비슷했다.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와 국산 '먹는 샘물' 2종을 사전정보 없이 시음시켜 최고의 물맛을 찾는 행사였다.

서울시 상수도관리본부 측은 온도가 물맛을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세 종류의 물을 모두 냉장보관한 상태에서 시민 3000여 명에게 제공했다. 결과는 1위와 3위의 격차가 9%에 불과한 '근접전'이 펼쳐져 사실상 무승부로 끝났다.
 
a

11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아리수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수돗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진행한 것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돗물(아리수), 생수 등 3가지 물로 맛 시음 등의 테스트를 했다. ⓒ 연합뉴스

  
"수돗물 맛을 구별할 수 있냐"는 물음에도 응답자의 약 2/3는 먹는 샘물을 수돗물로 지목했다. 이것 또한 '복잡한 정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에서 염소, 철 등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편견을 불식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5년부터 수돗물 특유의 맛·냄새 걸러주는 공정 추가

수치상으로도 서울 수돗물의 수질은 향상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한강 취수원에서 길러진 물은 170개 항목의 수질 검사를 거쳐 시민들에게 공급된다.

2015년 이후에는 코코넛 껍질, 나무 등을 태워 만든 입상활성탄(숯)이나 오존 등을 이용해 수돗물 특유의 맛과 냄새를 걸러주는 공정을 추가했다. 이 공정을 거치면서 중·노년층의 의식 속에 잠재해있던 수돗물 특유의 맛과 냄새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서울시 측의 설명이다.

2016년 11월에는 아리수가 국내 최초로 국제표준기구(ISO)가 개발한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인 ISO22000 인증을 획득했다. ISO의 인증기관인 BSI(영국표준협회)가 6개 아리수정수센터(병물 아리수 생산시설 포함)와 8개 수도사업소 등을 대상으로 한 실사에서 수돗물을 생산·공급하는 전 과정에서 '먹는 물'로서의 안전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본 오사카 정수장, 스페인 아그바 정수장, 호주 멜버른 정수장 등 극히 일부 국가의 정수장만이 ISO22000 인증을 얻어냈다.

수돗물 하면 떠오르는 노후급수관 문제도 거의 해결 단계에 진입했다. 서울시가 1984년 이후 지난해까지 상수도관(총 13,587㎞)을 녹이 슬지 않는 내식성관으로 교체한 비율은 98.4%이고, 나머지 상수도관도 2020년까지 100% 교체를 마칠 예정이다. 주택 내 녹에 취약한 수도관 교체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이 문제는 조만간 해소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민이 수돗물을 마시는 비율은 2017년 현재 50.4%에 머물고 있다(한국상하수도협회 조사). 서울시민에게 당초 수돗물을 공급한 취지가 맑은 물을 공급해서 위생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최근의 '수돗물 기피' 현상은 아이러니한 측면도 없지 않다.

1876년 2월 27일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이 개항된 후 인력과 물자가 몰려든 서울은 20세기에 들어서 20만 명 규모의 대도시로 성장한다. 1901년 11월 고종의 시의(侍醫)로 부임해 1902년의 콜레라 창궐을 목격한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뷘슈는 서울의 낮은 위생 상태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길거리 청소는 견공들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곳곳에 널린 대변을 개들이 먹어치우니 길의 청결 여부는 견공의 식욕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배수로와 하수구를 적어도 매주 2회 청소하고 석회수로 깨끗이 닦아내야 한다."

 
a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학생들이 서울 최초의 정수장인 경성수도양수공장(1908년)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는 수도박물관에서 11월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대한민국 근대 상수도 역사를 알리는 '뚝섬 1908, 아리수를 품다'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 유성호

  
a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학생들이 전시된 물장수와 물동이를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1908년 9월 1일 뚝섬수원지에 국내 최초의 정수장이 세워져 서울에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돗물을 도성의 주민과 외국인 12만 5000여 명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상수도의 동력이 될 증기터빈을 돌리는 데 필요한 땔나무와 숯, 그리고 유량이 풍부한 취수원이 필요했다. 한강 뚝섬나루의 입지는 그런 조건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민들에게 천혜의 식수원 역할을 해온 수돗물은 옛 지위를 점차 잃어갔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수질 악화의 두려움, 1990년대 소득 수준의 향상에 따른 '먹는 샘물' 산업의 성장 등의 시대적 요인들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2004년부터 '아리수'로 브랜드화, 비용은 생수보다 800배 경제적
 
a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학생들이 수돗물 정수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서울시는 2004년부터 수돗물에 '아리수'라는 브랜드를 붙이는 등 수돗물의 음용률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도 하고 씻을 때도 쓰지만, 마시지는 못하겠다"는 수돗물에 대한 고질적인 인식을 바꿔보겠다는 취지다. 4인 가족의 1년 음수량을 비교할 때, 생수를 사 마시는 것보다 아리수가 비용 면에서 800배 경제적이라는 수치를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 들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며 '먹는 샘물' 대신 수돗물을 대안으로 삼자는 담론이 조금씩 싹트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15~16일 녹색소비자연대 대학생 에코볼런티어와 이화여대 환경동아리 등이 생수 대신 텀블러에 수돗물을 담아 마시는 캠페인을 진행한 것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에 수돗물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수도박물관을 견학한 초등학생들도 "동남아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 뱃속에서 플라스틱 컵 수백 개가 나왔다"는 설명을 듣자 일부는 "고래를 죽이느니 그냥 수돗물을 먹는 게 낫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도 미래의 소비자인 청소년들의 인식 변화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다. 이는 수도박물관이 초중학교 대상의 견학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인종 수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초창기에는 가정 내 '물 결정권'을 쥔 주부 대상으로 교육을 많이 실시했는데, 성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편견이 적어서 수돗물 정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식이 점차 바뀌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a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수도박물관에 견학 온 한양초등학교 학생들이 ‘문화의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체험학습 수업에 참가해 환경 보호를 위한 다짐을 글을 작성하고 있다. ⓒ 유성호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AD

AD

인기기사

  1. 1 벌거벗은 남자들 사이를 휙휙, 저 아줌마 누구야?
  2. 2 20년 함께 산 아내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낸 까닭
  3. 3 지나치게 높은 고급장교 인건비... 국방예산 '비효율'이 문제다
  4. 4 대한민국 법조계의 뿌리부터 탈탈 털었다
  5. 5 방탄소년단이 춘 '삼고무' 누구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