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엄마잖아"... 나는 이 말을 견딜 수 없었다

[책이 나왔습니다] 아이를 낳고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 '엄마 되기의 민낯'

등록 2018.12.09 19:09수정 2018.12.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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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두서없이 블로그에 쓰던 글이었다. 세 돌 된 아이를 키우던 나는 집안일을 마치고 마음에 허기가 질 때면, 아이와 부대낀 후 화가 수습이 안 될 때면, 결혼 생활의 쓴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때면 글을 썼다. 파워블로그도 아니었고 방문자도 적었지만 내 글을 좋아해 주던 이들이 남겨준 달곰한 응원의 댓글이 글쓰기의 동력이었다. 그러다 한 출판사 대표에게 출간 제의를 받았다. 

거절했다. 출간을 목표로 둔 글쓰기도 아니었거니와 내세울 소속도 직업도 없는 내가, 육아와 살림 어느 하나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주부인 내가 책을 낸다는 건 글감도 시답잖지만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제안을 받았을 땐 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궁금해 미팅에 나갔고 대화의 마무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빼도 박도 못 하게 글을 생산해야 했다. 목차를 짰고 글을 모조리 새로 쓰면서 브런치 등의 플랫폼에도 글을 올렸고, <오마이뉴스>와 <직썰>이라는 언론 매체에 기고할 기회도 얻었다.

탁월한 육아법도 좋은 엄마가 되는 법도 아닌 엄마이자 주부로 사는 일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담은 내 글은 기사로 올라갈 때마다 어마어마한 악플과 공감의 댓글을 함께 받았다. 처음엔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점차 맷집이 생겼다. 글을 더 촘촘히, 탄탄히 쓰려 했다. 

기고와 퇴고를 오가고 원고를 추리고 줄이며 십여 차례 수정하기를 1년 반 동안 반복했고, 지난 11월 책이 나왔다. 제목은 <엄마 되기의 민낯 -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 

나의 언어로 나의 경험을 쓰기 
 

엄마되기의민낯 엄마 되기의 민낯 - 독박육아 구원프로젝트 | 연필 | 저자 신나리 ⓒ 신나리

 
나는 참으로 자신만만했다. 엄마가 되며 겪을 희생은 나를 비껴갈 줄 알았다. 출산 후에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단단한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집안일, 자기 일이 아니라며 외면하는 남편,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아이와 24시간 홀로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나란 사람은 야금야금 소멸해갔다. 

나에겐 출구가 없었다. 쏟아지는 책임과 의무를 피할 방법도, 내 방식대로 헤쳐갈 언어와 체력도 없었다. 내가 꺼내는 말은 기껏해야 하소연이었고 때론 우울증으로 치부됐다.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엄마가 될 줄 알았던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조차 잘하지 못하는 엄마, 이리저리 휩쓸리는 엄마,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엄마가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나의 혼란은 당연했다. 평생 누군가를 돌본 경험도 없고 구속됨을 모르고 살았는데 아이를 낳자마자 난데없이 집 안에 갇혔다. 살면서 '원래 그렇다'는 말을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는데, 엄마가 되자마자 자궁과 젖이 있다는 이유로 '원래 그렇다'는 말을 장대비처럼 맞았다. 막막함과 고립감을 타개하고자 책을 읽고 주변에 물으면 답변은 한결같았다. 

"너는 엄마잖아."
"시간이 약이야."
"모두 다 그렇게 살아."
"힘들지만 행복하잖아." 


맞지 않은 구두를 억지로 신은 듯 뒤꿈치가 까이고 벗겨져도 참고 버티면 될 일이었다. 모든 건 자신의 문제, 노력과 마음가짐 먹기에 달렸다는 익숙한 말. 

주류의 육아서는 아이 키우는 고됨을 말끔하게 포장했고 때론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엄격해서 죄책감을 추동했다. 위트 있는 육아 에세이도 있었고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도 있었지만 엄마가 된 후 겪는 행복과 고통의 양가감정과 정면으로 만나는 당사자의 말은 찾기 힘들었다. 

'내가 이상하지 않음'을 승인받고 싶었으나 연대를 느낄 자리가 없었다. 모두가 엄마로 사는 건 '그럼에도 행복'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다들 겪지 않는 걸까. 아니면 말하지 않는 걸까. 행복하지 않던 엄마인 나는 행복하지 않아 죄스러웠다. 

나는 보편적이라 믿어지는 거친 말을 듣고 읽을 때마다 속이 꽉 얹혔다. 그 말은 나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았다. 엄마 되기의 경험과 감정을 다른 이의 판단과 해석에 맡기지 않고 나의 언어로 써 보고 싶었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아이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좋은 엄마란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겪는 건 무엇인가를 썼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기록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만함에서 가슴 한켠 스산한 결핍감, 순식간에 달음질하는 격한 감정, 엄마도, 아내도, 여자도, 인간도 아닌 것 같이 몇 개의 자아로 분화되는 분열, 아이에게 소리친 후 겪는 자기혐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누구라도 들어주기를 바라던 이야기를." - <엄마 되기의 민낯>, '시작하며 - 루저 엄마의 고백' 중

아이와 엄마에서 벗어나 주변을 보기 

육아는 각자의 능력이나 마음가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와 엄마의 기질, 신체 나이와 체력, 가족들의 협조, 주변 사람들의 성향, 경제적 상황, 거주지의 환경과 사회의 복지 등 온갖 조건이 얽혀 오늘 하루의 육아를 만든다. 그래서 울퉁불퉁하며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맥락을 지우고 엄마와 아이를 깨끗하고 텅 빈 곳에 위치시킨 후 재단한다. 유난한 엄마, 여유로운 엄마, 좋은 엄마, '맘충'... 나는 이런 평가를 찢어 버리고 상황과 조건과 관계 속에서 엄마됨을 고찰하고 싶었다. 

책의 1장 '육아의 기쁨과 슬픔'은 아이와 나의 관계이다. 내 배 아파 낳았지만 너무도 낯설었던 작은 생명체.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내가 한심하고 무섭고 지긋지긋하면서도 잠든 아이 얼굴에 세상 근심이 절로 잊히던 날들. 서로만을 마주 보며 좁은 집에서 벌이던 달콤 쌉싸름한 현장을 담았다. 

2장 '가깝고 먼 가족'은 남편과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 분담을 위해 벌인 전쟁, 그리고 친정엄마에 대한 애증을 실었다. 

생명을 키우기 위해 부부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협력해야 함에도 남편은 자신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애원과 절규를 외면했다. 주변에 답답함을 호소하면 "남편 포기하고 큰아들이라 생각하라", "방세 많이 내는 하숙생이라 생각하라" 등의 조언을 들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라는, 내가 수없이 들었고 꾸역꾸역 삼킨 말을 훗날 엄마가 된 딸에게 물려주기 싫었다. 남은 생을 화목이란 허울 속에서 안온히 포기한 채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가 변하지 않아도 우리는 변해야만 했다. 남편과 나는 벼랑 끝에서 싸웠다. 

3장 '스타일 없는 라이프'는 전세 난민으로 살다가 경기도 외곽에서 주택 살이를 하며 겪은 일화를 실었다. 집을 잃을 뻔한 사건을 겪으며 주거와 소유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다. 한편 살림이 지독히 싫은 주부였던 나는 살림에서 도망치기 위해 생활 방식을 바꾸어 갔다. 

4장 '엄마지만 엄마가 아닌 채로'는 '경력 단절 여성'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 아이를 사랑하지만 탈출하고 싶은 마음, 밝고 유쾌하던 사람이 육아를 겪으며 인격이 변한 과정을 담았다. 엄마가 된 이유가 개인의 온전한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고 직장일, 학업 등 다른 일처럼 엄마됨도 후회할 수 있으나 발설은 금지하는 사회에서 엄마지만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았던 몸부림의 기록이다. 

5장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선 엄마이자 여성으로서 사회에 서 있는 지형을 그려보았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육아가 힘든 이유를 분석하고 전업주부에게 강요되는 기만적 역할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또한 생활 속에서 독박육아를 '구원'할 수 있는 나름의 방책도 함께 썼다. 

나와 같은 누군가 들을 수 있도록 
 

엄마 되기의 민낯 엄마 되기의 민낯 -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 ⓒ 신나리

 
"어느 누구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이 성역화된 육아와 가사노동의 민낯을 이리 촘촘히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낸 글은 처음입니다." 

"한 인간을 양육한다는 것이 나의 삶에 어떤 변화와 성장을 가져올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도 신문기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글이에요."

"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살지 못했을까요. 어쩌면 공감하는 것도 공감받는 것도 불편했을지 모릅니다. 아예 생각 자체를 못 할 정도로 내재화돼 있었던 거죠." 


출간 전, 내 글을 꾸준히 읽어온 분들, 카카오페이지 연재로 읽은 독자들이 추천의 글을 남겨주었다. 엄마들은 담담히 쓴 글임에도 현 상황과 맞 닿아있어 공감과 고통을 함께 느꼈다고 했다.

자신이 외면하거나 보지 않았던 아내의 삶을 알게 됐다는 남편들의 댓글도 접했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님들은 예전과 달라진 양육 환경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독자들은 한 여성이 치열하게 변화를 모색한 이야기로 읽어주었다. 책은 나를 떠나 이름 모를 독자들과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책을 냈지만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쓰면서 내 삶은 변했다. 내 앞에 놓인 고민과 갈등을 정면으로 만났고 나를 둘러싼 조건을 바꾸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 여정에서 나를 옭아매던 엄마 노릇으로부터 점점 가벼워졌고 남편과 부모로서 협력해가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그리고 기록했다. 나와 같은 누군가 들을 수 있도록. 홀로 싸우는 누군가가 덜 외롭도록. 
 
"성과, 성취, 지위, 내세울 직업과 인정이 없다 해도 그 시간의 가치를 살려내는 글, 삶의 면면을 들추고 질문하고 헤아리며 자신을 일으키는 글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용기 내어 책을 내놓는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행복하고 싶지만 잡다한 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금세 지치고, 엄마됨과 육아를 위대한 일이라 찬양하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누군가가 있다면 그곳에 닿길 바란다." - <엄마 되기의 민낯>, '시작하며 - 루저 엄마의 고백' 중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엄마 되기의 민낯 -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

신나리 지음,
연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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