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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갇힌 현빈? 황당하지만 중독성 있는 '알함브라 궁전'

[TV 리뷰] '송재정 월드'의 거침없는 도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8.12.03 17:10최종업데이트18.12.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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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tvN


스페인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에 유진우(현빈 분)가 온 이유는 '관광'이 아니다. 그는 간밤에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AR(augmented reality), 즉 증강현실 게임의 개발자를 만나기 위해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바로 그라나다로 날아왔다. 그리곤 주인공 유진우가 그라나다 한 광장에서 AR 게임을 작동하는 기구인 '렌즈'와 '인이어'를 끼자, 관광지 전체가 달라진다.

눈 앞 광장에 우뚝 서있던, 검을 든 무사의 동상이 갑자기 뛰어내려 다짜고짜 진우를 향해 달려든다. 무방비 상태였던 진우는 당연히 일격을 당하고 다음 순간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문구와 함께 레벨1 첫 번째 게임에서 로그아웃 당하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은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배경으로 계속된다. 진우는 거리의 맥줏집 화장실에서 찾은 녹슨 철검을 들고 계속 무사와 대결을 벌인다.

매번 '로그인'을 할 때마다 진우의 전투 능력은 일취월장하지만 레벨2로 가는 길은 버겁다. 거리의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무사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혀 분수대에 나자빠뜨린 진우. 드디어 레벨1의 단계에 오른 그는 환호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거리 카페 시민들에게 그는 그저 혼자 미쳐 날뛰는 제 정신이 아닌 한 남자일 뿐이다. 이게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회의 내용이다.

<나인> < W > 송재정 작가의 거침없는 도전
 

드라마 < W > ⓒ MBC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이 '화두'는 곧 송재정 작가가 품은 화두인 듯하다. 송재정 작가의 작품들은 곧 우리나라 드라마의 개척지가 되어왔다. 최근까지도 많이 회자되는 시트콤 MBC <거침없이 하이킥>(2006년~2007년)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송재정 작가는 2008년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문제작 <크크섬의 비밀>(MBC)로 돌아왔다. 서해안 낙도에 떨어진 직장인 10명의 무인도 표류기라니... 당시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한국의 코믹 시트콤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독보적 영역'으로, 하지만 대중적 호응을 얻는 데는 다소 실패한 송재정 작가는 역시나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힐링'작이라 손꼽는 <커피 하우스>(SBS)를 지나, <인현왕후의 남자>(tvN)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조선 숙종 때의 선비 김붕도(지현우 분)는 장희빈에 밀려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에 힘쓰던 중 뜻밖에 '타임슬립'을 하며 2012년의 드라마 <신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최희진(유인나 분)과 조우하게 된 뒤 운명적인 사건과 사랑에 휩쓸린다.

이처럼 송재정의 드라마에서 남자는 휩쓸린다. 그의 드라마 속 대다수 남성 주인공들은 자신이 머물던 세상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신비롭고 비과학적 동인에 따라 자신이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송재정 작가의 또 다른 도전이 반갑다
 

드라마 <나인> ⓒ tvN


안타깝게도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나인>(tvN)에서 신비의 향 9개를 얻어 2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분)가 그러했고, 2016년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인 듯하지만 사실은 웹툰을 배경으로 한 실재와 가상 세계를 오가던 < W > 강철(이종석 분)이 그러했다(W 공간 이동의 시작은 웹툰 마니아였던 여주인공 오연주(한효주 분)이지만). 그리고 이제 그라나다라는 실제적 공감을 배경으로 증강현실 게임 속으로 뛰어든 유진우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송재정 작가는 과거와 현재, 웹툰을 배경으로 한 가상 세계와 현실, 그리고 이제 현실과 증강 현실로 드라마의 소재 영역 확장에 도전해왔다. 물론 현빈이 분한 유진우가 그라나다의 길거리에서 거리의 동상을 상대로 칼싸움을 하는 황당한 설정은 낯설지만, 송재정의 세계를 함께 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새로울 것도 낯설 것도 없다. 그저 송 작가의 또 다른 도전이 반가울 뿐이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의 도전이 그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가 방영될 당시 지상파인 SBS에서 같은 타임 슬립 소재의 <옥탑방 왕세자>가 방영되었듯, 당시 '타임슬립'은 드라마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소재였다.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나인>은 그 '타임슬립물'에 있어서 최고봉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웹툰'을 배경으로 한 서울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 W > 역시 '웹툰'의 활황에 힘입어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던 젊은층조차 기꺼이 '닥본사'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최근 들어 내로라하는 배우들, 심지어 외국 유명 배우들까지 TV 게임 광고에 얼굴을 내미는 '게임 전국 시대'가 된 터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보는 이들의 이물감 또한 쉬이 잦아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 송재정 작가의 작품들은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그 파격을 풀어가는 서사 중간 중간에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에서 온 선비지만 2012년 서울에서 '킹카'를 넘어 키다리 아저씨 같던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러했고, 죽음의 앞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향을 피우던 <나인>이 그러했다. JN글로벌 공동 대표에 방송국 W를 소유한 사격 국가 대표 출신의 웹툰 속 젊은 재벌 강철이라고 다를까. 강철 또한 만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현빈에게서 어른거리는 <시크릿 가든> 김주원 그림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유진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유진우 역을 맡은 현빈에게서 2010년 방영된 화제작 <시크릿 가든>(SBS) 김주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보니따 호스텔의 낡고 미비한 서비스에 울화통이 터진 유진우가 정희주를 향해 분노를 폭발할 때, 예의 김주원이 '타임슬립'을 한 듯 보였다.

앞도 뒤도 안 보는 싸가지 재벌이지만, 정희주 동생이 자신이 꼭 계약해야하는 게임 개발자인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180도 돌변해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는 설정에선 익숙한 로코의 향기가 난다.

물론 그 '익숙한 로코'의 여정은 증강현실 게임 속을 헤매는 듯한 1년 뒤 유진우의 모습과 함께 '고난의 길'이 될 것임을 알려준다. 거기에 오랜 친구였지만 이제는 전처의 남편이 되어 거침없이 그를 향해 칼을 뽑은 또 다른 게임 유저이자, 경쟁자 차형석(박훈 분)의 존재는 흥미로움을 더한다.

이제 2회를 마무리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증강 현실 게임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현빈, 박신혜라는 스타 캐스팅을 차치하고라도 '증강 현실 게임'이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7.5%라는 시청률을 올린 건,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여준다. 송재정 작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어떤 게 새로운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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