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혁신'이 될 수 있을까?

‘정책실험’과 광주형 일자리 사업

등록 2018.12.05 11:51수정 2018.12.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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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공장에 온 이용섭 광주시장 등 일행이 하부영 현대차노조 지부장 등 노조측과 좌담회를 열고 있다 ⓒ 현대차지부

정부 정책이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그중 핵심이 되는 한 가지로 '실험 불가'를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이 연구·개발되는 과정에는 동물실험, 임상실험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만든 정책은 이런 실험이 불가능하다. 정책대상집단을 전제로 한 정책은 결정과 집행이 곧 '실전'이기 때문이다. 정책결정부터가 돌이킬 수 없는 정부의 공적 행위가 된다.

그런데 엄연히 '정책실험'이란 용어가 존재한다. 정책실험은 국가 전 지역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을 적용하기 전에 특정 지역에 국소적으로 정책을 집행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정책을 정부가 결정하기 전에 그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한 지자체에서 시행해보는 것과 같다. 어떤 정책이 논란이 되거나 파급력이 클 때 시도해볼만 하다. 물론 엄밀한 의미의 자연과학 실험과는 다르지만, 이 방식을 잘 활용하면 정책의 신뢰성과 완결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예산 낭비도 막을 수 있다.

이런 정책실험과 유사한 방식이 광주에서 추진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다. 본 사업은 광주시와 현대차가 합작법인을 설립해 빛그린국가산업단지 내 62만8000㎡ 부지에 자기자본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 등 총 7000억 원을 투입, 연간 10만대 규모의 1000cc 미만 경형 SUV 공장을 세우는 프로젝트다.

근로자 임금을 낮추는 대신 중앙정부와 광주시가 주택·교육·의료 등을 '사회임금' 형태로 지원해준다. 정규직 근로자는 신입 생산직과 경력 관리직을 합쳐 1000여 명, 간접고용까지 더하면 1만~1만2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시는 추산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작금의 고용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평가된다. 또한, 대기업·정규직으로 대표되는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2차 노동시장 간 격차가 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푸는 매우 혁신적인 모델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성과로 이어진다면 다른 지역과 새로운 산업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거대한 정책실험의 현장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2001년 독일 폭스바겐의 자회사로 설립된 '아우토 5000'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독일의 자동차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1990년대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생산량이 거의 40% 줄고, 실업률이 17%까지 상승한 것이 아우토 5000의 배경이 됐다. 기존 완성차 업체보다 20% 정도 낮은 임금인 월 5000마르크로 실업자를 새로운 공장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의 반발이 극심했으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중재로 성사됐다.

광주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는 유관 산업계 임금의 '하향 평준화'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광주형 일자리가 사실상 타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정책에 반대해온 민주노총과 현대차 노조는 6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우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획기적이고, 지역의 고용 문제를 풀 수 있는 의미 있는 수단이 분명하나 사업을 주도하는 광주시와 정부는 노조 측의 '경고'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동차산업 하락기에 대한 내용이다.

국내 경차 수요가 많지 않고, 자동차산업 고용이 2016년부터 하락하는 마당에 미래를 보장하기 어려운 산업 분야에 투자를 더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영업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일정하다면 광주의 신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기존 울산 공장의 물량을 낮추는 상황은 울산 지역의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고민할 지점이다. 지역 간 일자리 이동이 아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임금 하향 평준화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국내에서 만든 완성차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업계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책정하였다. 이는 자칫 다른 기업과 산업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근거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는 독일처럼 '산별협약'을 통해 막을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무의미한 상황이다. 이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치를 광주시와 정부는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노조의 참여와 존중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대화기구로 노·사·민·정 협의체가 있다. 이를 통해 노조를 통제하는 방식과 노조 없는 의사결정 가능성에 대해 노조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이 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더라도 노조와 협의 없는 일자리 사업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없다. 노조가 요구하는 독일식 '노사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현재 고용 위기를 극복하고, 노동자 내 격차를 해소하는 혁신이 될지, 아쉬운 한숨이 될지 갈림길에 서 있다. 당초 이 사업의 주체들이 합의한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 4대 원칙은 큰 틀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항이다. 정부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귀 기울이고, 노조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기존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과 자동차 시장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정책실험의 성공이 좋은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
#광주형 일자리 #정책실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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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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