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동안 빈집 전전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현장] 강제철거로 쫓겨난 30대 철거민 투신... 빈민해방실천연대 "사회적 타살이다"

등록 2018.12.05 19:16수정 2018.12.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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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가운데는 사망한 박씨의 어머니 박천희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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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7월 26일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572-○○호. 박준경(37)씨와 어머니가 살던 집에 용역들이 들이닥쳐 선풍기와 냉장고 전기선을 끊고 떠났다. 9월 6일 그들은 다시 찾아왔다. 이날엔 어머니를 이불로 둘둘 말아 집 밖으로 끌어냈고, 주방용품 등 가재도구를 싣고 가버렸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모자는 다른 철거민들과 빈집을 전전했다. 이 동네는 아현 2구역, 서울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이대역 사이로 2016년 6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재건축사업에 들어간 곳이다. 재건축조합은 8월부터 철거를 시작, 24차례 강제집행을 강행했다.

동네를 비우면 언제 용역들이 강제집행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철거민들은 빈집에 흩어져 생활했다. 그래서 박씨는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 세 달가량 이어진 빈집살이는 지난달 30일로 끝났다. 박씨가 머물던 집도 강제집행됐기 때문이다. 그는 가방 하나만 든 채 거리로 내몰렸다.

박씨는 그 직후 한 편의점 앞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추우니까 근처 찜질방에 가 있으라"며 5만 원을 건넸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아들은 지난 3일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옷가지와 가방, 그리고 전단지 등 소지품이 박씨 것인지 확인해 달라는 전화였다. 전단지 뒤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 유서였다.

"전 마포구 아현동 572-○○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저는 이대로 죽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 중이라 걱정입니다. 어머니도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그의 시신은 4일 오전 11시 25분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발견됐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내 전부를 잃었는데... 무슨 임대아파트가 필요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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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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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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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다음날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마포구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박천희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난달에 아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음악 계통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내 활력소였고 내 꿈이었고 전부였다. 전부를 잃었는데 무슨 임대아파트가 필요하냐. 내 아들만 살려주면 된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재건축조합은 강제집행 48시간 전 구청에 집행상황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면 구청은 서울시에 이를 알려 인권지킴이 파견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아현 2구역 재건축조합은 관련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10월 29일 마포구청에 해당 조합이 집행 일시 보고 등을 준수하도록 조치하라고, 11월 2일에 여전히 조합이 절차를 어기고 있으니 구청이 인가 취소나 철거 공사 중지 등을 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그럼에도 마포구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 사이 강제집행은 이뤄졌다. 10월 30일과 11월 1일, 100여명이 넘는 용역들이 철거민의 집을 에워싸고 사람을 향해 소화기를 난무했다. 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은 "이 현장에 인권지킴이는 없었다"라며 "사실상 불법 집행"이라고 했다.

조항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어머니가 용역에 의해 집 밖으로 끌려 나가고 집기들이 부셔지고 소화기가 난사하는 등 폭력적인 강제철거 등을 보면서 고인이 느낀 절망감은 컸다"라고 했다.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재건축 현장에서는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데 인권지킴이는 어디서 무엇을 했고, 관리감독해야 하는 마포구청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라고 했다.

이들은 철거민 주거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소연 전철연 조직국장은 "현재 재건축,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은 그저 쫓겨날 뿐"이라며 "실거주자인 세입자들이 한동안 살만한 임대주택을 마련하고 재개발이 완료되면 다시 그 동네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식의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마포구청 "조합에게 물었다, 조합이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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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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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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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2재건축 구역 철거민들과 빈민해방실천연대 등 철거민 단체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최근 발생한 아현동 철거민 30대 남성 투신 사망사건에 대해 재개발 책임자 처벌과 대책 없는 개발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마포구청은 서울시 공문을 토대로 11월 1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조합에 '집행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해명했다. 구청 관계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조합에 철거과정에서 폭력적인 행위 등이 있었는지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며 "그 이상 사실 확인이 어려워 철거 중지, 인가 취소 등 행정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조합이 말하길 서울시는 (강제집행) 2일 전에 통보하라고 하지만, 법원에서 하루 전날 집행 일시를 결정해주기 때문에 조합이 구청에 그때 보고할 수밖에 없다더라"고 말했다. 마포구청은 조만간 철거민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는 비대위를 꾸려 추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현2구역 #철거민 #전국철거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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