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조계의 뿌리부터 탈탈 털었다

판사 596명, 검사 505명, 변호사 1904명 분석한 김두식 교수의 '법률가들'

등록 2018.12.08 11:49수정 2018.12.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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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내내 김두식 교수의 새 책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을 읽었습니다. 11월 한 달 동안 유발 하라리의 책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읽긴 했지만 '법률가들'을 다 읽은 지금 다른 책은 다 제쳐두고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인상적이고 강렬한 책이었습니다.

책 뒷면의 '주'와 '일러두기'를 포함해서 700여 쪽에 가까운 분량의 이 책을 통해 김두식 교수는 대한민국의 법조계가 어떻게 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방대한 양의 법조계 인물 조사'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의 전작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이 오늘날의 법조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 책이라면 '법률가들'은 우리 법조계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기이한(?) 풍경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는지 그 뿌리를 연구하고 조사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조계의 기이한 풍경, 그 시작
 

김두식 교수의 신간 <법률가들-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 창비

  
책의 전반부는 해방 전후 시기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37년 일제강점기 고등시험 사법과 합격생을 중심으로 제도와 인물들에 관해 얘기합니다.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치러진 조선변호사시험의 제도적 특징과 한계, 대표적 인물들을 살펴봅니다. 세 번째는 갑자기 찾아온 해방으로 인해 일제강점기 서기 겸 통역생을 했던 사람들이 판검사를 할 수 있었던 행운과 그로 인한 미자격자 문제에 대해 지적합니다.

특히 1945년 총 나흘간의 조선변호사 시험 둘째 날인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시험이 중단된 특이한 미자격자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이법회(以法會) 문제는 책 후반부에서 따로 설명합니다.

책의 중후반부는 해방 이후 역사적 사건과 그에 따른 법조계 인물들의 부침을 연결해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사건 자체의 조작 여부도 문제였지만 당시 이 사건의 변호사로 나섰던 조평재, 윤학기, 강중인 등의 많은 법조인이 사건 이후 이른바 법조프락치 사건으로 '관제 빨갱이'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조선정판사 사건은 해방공간의 좌익 정당과 세력을 일거에 불법화하는 동시에 법조계 안에서도 좌익과 민족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뿌리 뽑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겪은 법조 인사들의 운명도 일반인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빨리 피란 간 사람은 살았고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은 숨거나 납북되거나 심지어 국민보도연맹으로 학살되는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이념의 전쟁터에서 교대로 점령하는 북과 남의 비위에 맞게 한쪽만을 선택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런 선택 후에 다른 점령군이 들어오면 도망치거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살아남은 법조계는 더욱 극단적인 반공과 극우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이 책은 김두식 교수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 해방공간, 한국전쟁과 이후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김두식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판사 596명, 검사 505명, 변호사 1904명을 엑셀로 정리하고 책을 집필했다고 밝힙니다. 이 많은 법조 인물들 가운데 복잡했던 역사적 상황을 생각할 때 몇몇 인물은 특별히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깊은 인상을 남긴 법조인 셋

첫 번째는 책의 거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경성제대 출신으로 1937년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김영재'입니다. 경북 안동의 풍산김씨 양반 가문 출신인 김영재는 독립운동을 했던 큰아버지 때문에 합격 후 사법관 시보는 동기들보다 거의 1년 늦게 임용됩니다. 해방 후 김영재는 2년여 동안 변호사를 하다 검찰로 나서는데 1949년 1차 법조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됩니다.

신중한 성격으로 검사로서 두드러진 활약도 없었던 김영재는 법조 프락치 사건을 통해 남로당 가입과 이로 인한 구속 그리고 후회로 이어지는 개인사를 보여줍니다. 이는 해방공간에서 유약한 개인의 선택이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이분법적인 이념의 회오리 속에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극우검사 '오제도'입니다. 김두식 교수는 오제도를 선우종원과 함께 대표적인 '사상검사'라고 소개하는데 개인적으로 오제도에게 '사상검사'라는 아카데믹한 타이틀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좌익과 중도 그리고 자신의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던 인물입니다.

일제강점기 신의주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생 출신인 오제도는 해방 후 법조 인력의 충원을 위해 특별히 미자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을 통해 검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해방 공간에서 각종 조작사건의 검사로 좌익세력을 탄압하고 특히 한국전쟁 초기 집단 학살당한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두식 교수는 오제도가 관여한 각종 사건에 대한 후일의 인터뷰나 그의 증언을 기초로 한 1970년대 소설 '특별수사본부'에 나온 내용의 허구와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하거나 바로잡습니다. 오제도는 부정부패로 인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도망가거나 인맥을 활용해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실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건과 그의 개인사를 통해 제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오제도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 천부적으로 발달했고 자기애가 과잉 충만했던 극우신념의 위험한 검사였습니다. 얼마 전 대전 현충원에 갔다가 우연히 오제도의 묘를 보고 와서인지 오제도가 나오는 장면은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조금 격하게 되었습니다.
  

국립 대전현충원에 있는 검사 오제도의 묘비 ⓒ 이상재

 
한국전쟁 발발 후 대전에 피란 온 당시 내무부 차관 김갑수는 장경근 국방부 차관과 함께 적에게 협력한 부역자 처벌을 위해 '비상사태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제정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인 자신들은 무사히 도망쳐 나오고 나서 피란을 하지 못하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민군에게 협조해야 했던 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후안무치한 반헌법적인 악법이었습니다.

평범한 판사로 한국전쟁을 맞은 '유병진'은 전쟁을 겪은 개인적인 체험과 특별조치령의 문제점을 담아 전쟁 중인 1952년에 <재판관의 고민>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유병진 판사는 "협력한 놈들은 덮어놓고 엄하게 벌해야 한다"는 복수감정에서 만들어진 특별조치령을 비판하고 실제 재판에서도 14세 소년과 단순 부역 혐의로 기소된 여성들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내립니다. 자칫하면 자신도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전쟁 중에도 합리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월남자 출신 유병재 판사는 1958년 진보당 사건에서 당시 이승만 정권의 의도와는 다르게 조봉암과 양명산에게 각각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지금 법조계는 '그 시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친일, 이념대결, 고문, 조작, 브로커에 이르기까지 법조계 안팎을 둘러싼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은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두식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고 있지만, 지금의 법조계는 '그 시대'의 유산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또 당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당장 현재 밝혀지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사태는 이승만과 군사정권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서 벌어졌던 정권과 사법부의 추악한 결탁에 대한 어떤 기시감까지 느끼게 합니다.

3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대학 강의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마다하고 책을 집필하신 김두식 교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어두운 현대사에 재미없고 딱딱한 법조계 역사가 더해졌는데도 읽는 데 무리가 없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김두식 교수님이 저와 같은 우매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자세하고 쉽게 책을 쓰려고 노력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창비, 2018


#법률가들 #김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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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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