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꼼수'를 아시나요?

[주장] 노동자의 목 조르면서 노동자에게 합의 구하는 방식, 이제는 안 됩니다

등록 2018.12.07 16:51수정 2018.12.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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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로 민주노총 지도부는 퇴진 당했습니다.

저는 1998년 3월 30일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되어 사퇴까지 1년6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IMF라는 국가위기가 대한민국을 흔들었고,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자는 행동에 동참했습니다. IMF위기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지만 국가 위기의 주범은 재벌이었고 본인들도 시인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주범의 책임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노동자가 희생해서 그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에 합의하면서 조합원들에게 퇴진을 당합니다. 민주노총은 비상대책위를 거쳐 1998년 3월 30일 선거를 치렀고 저는 2대 위원장으로 당선됐습니다.

IMF의 위기를 노동자 탄압으로 돌파하려는 정권과 재벌을 상대로 결사 투쟁을 하는 집행부가 필요했고, 저는 1년의 투쟁 이후에도 위원장이 감옥을 가지 않으면 투쟁을 제대로 못한 것이니 사퇴하겠다고 공약을 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제 임기 중 수석부위원장과 사무총장은 감옥에 가고 위원장인 저는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퇴를 했으나 대의원대회에서 반려되어 6개월을 더 일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위기의 주범들은 언제나 재벌과 권력, 정치인입니다.

1996년 12월 26일 국회는 정리해고 법과 근로자 파견법을 신한국당 의원들의 날치기로 통과시킵니다. 노동자들과 야당은 크게 반발합니다. 당시 야3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통합민주당은 즉각 '반독재투쟁공동위원회'를 설립한 후 영수회담 요청과 헌법재판소에 노동법 날치기 무효 헌법소원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했지만 가결 선포 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며 기각했습니다. 이후 진행된 투쟁에서 노동자와 시민단체 야당이 하나가 되어 날치기법의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의 날치기를 반대한 야3당은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국회의원 79석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 총재의 46석 자유민주연합, 이기택 총재의 15석 통합민주당 이었습니다. 당시 날치기를 반대했던 이들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이 법안의 통과를 관철시켰습니다. 야당시절에는 반대했지만 여당이 되면 찬성하는 노동법, 20년 전 노사정위에서도 그랬고 촛불로 대통령을 바꾼 지금도 그럽니다.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정리해고를 막을 수는 없지만 해고의 요건을 강화하여 무분별한 해고를 막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 당사자들의 합의, 대타협이라는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던 김대중 정권과 재벌들은 보완할 내용은 빼고 합의 자체만을 부각해 발표했습니다.

가장 타격 받은 계급은 노동자

1기 노사정위원회로 가장 타격을 받은 계급은 노동자들입니다.

수 만 명이 정리해고 되고 경제위기 주범들은 "이대로!"를 외치는 묘한 상항이 벌어집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노동자들이 해고라는 이름으로 길거리에 내몰립니다. 대한민국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야당에서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그 대통령은 경제위기의 주범인 재벌에게 책임을 묻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재벌에게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기회를 사회타협이란 이름으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면죄부와 돈을 몰아주었습니다.

1998년 12월 8일 정리해고 즉각 중단 등을 주장하면서 민주노총위원장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합니다. 12월 24일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동조 단식 농성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9년 2월 24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 대회에서 노동자 희생만을 강요하는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대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3기와 4기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촛불 정부라 칭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름만 바뀐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오라고 합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계가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법을 추진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 여권인사로 간판을 바꾼 이들이 IMF의 주범들 대신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긴 도구였습니다. 날치기라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노동자의 고립과 희생이었습니다.

1998년 말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단식중인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몇 가지 합의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직속의 사회적 합의 기구이지만 국회에서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 실효성이 없는 한계를 가집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기울어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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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구 노사정위원회는 똑같이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추진하려고 하는 탄력근로제는 그가 야당시절 반대해왔던 전형적인 악법입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단체협상을 통해 탄력근로제를 저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직격탄은 비정규직들이 맞게 됩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합의하면 2천만 비정규직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에 당사자가 아닌 조직이 합의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그들만 못한 처지의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쥐여주고 칼을 들이대라는 겁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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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 및 본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며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8월에 임명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1년 동안 노동계 설득에 공을 들였고 언론과 정치권, 청와대에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화합과 타협의 아이콘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과 자본이 원하는 탄력근로제를 문성현 위원장에게 타협해서 만들라고 합니다.

탄력근로제를 합의해주면 공기업 노동자에 가해지는 탄압을 막을 수 있고, 전교조도 합법화되며, 공무원 해고자가 복직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안에 합의할 수는 없습니다. 

경사노위에서 권고한다는 몇 가지 내용들은 이미 ILO권고사항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 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과 제100호 제111호 외 등에 준하거나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 들입니다. 경사노위위원 참여한 일부 위원들에게 말합니다.

아무도 당신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꼭 해야 할 일들부터 하십시오. 박근혜, 이명박 정권 시절 저질러진 잘못들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을 더 공고히 하고 양산하고 있는 비정규직법부터 바꿔야 합니다. 이명박근혜 시절 내려진 각종 행정지침들, 입법을 통하지 않고 직권으로 내리꽂아 노동자들을 탄압한 악덕 지침들을 폐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복수노조 교섭권 문제, 타임오프제, 삼성의 노조사찰과 탄압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를 외면한 채 정부와 자본의 요구만을 의제로 다룬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에 던져졌으면서도 동등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소수 대표들이 모든 노동자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결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정부가 노동자들,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압력을 주고 있는데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저야 합니다.

왜 노동자들만 가혹한 책임을 져야 합니까?

경제사회노동위원들은 잘 알아두어야 합니다.

지금도 재벌과 경영자들은 합법을 가장한 각종 탈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승계합니다. 갑질도 계속 터집니다. 청와대 비서진과 정치인들이 민주노총을 질타하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조합원들 촛불투쟁의 선두에서 투쟁했습니다. 구속도 당하고 희생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민주노총의 2대 전위원장입니다. IMF라는 국가위기 상황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었고,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법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정권이 바뀌고, 결국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합의된 두 법안이 그 후 20년 동안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해 왔는지 보았습니다. 한 순간 잘못되었던 우리의 선택 때문에 이후 수십 년 동안 노동자와 그 자녀들까지 대를 이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제 책임 또한 큽니다. 그래서 이렇게 장황한 글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아서 인가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서 인가요? 우리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통해 부정으로 재산을 축적한 갑질의 온상 재벌들은 어떻습니까. 이들과 함께 단물을 빤 경찰, 검찰, 사법부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왜 여전히 노동자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지우려 합니까? 노동자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모든 책임을 피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일방적인 희생과 타협만을 강요하는 태도에는 신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아닙니다.

진정 동등한 사회적 타협기구로 만들려 한다면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결과에 국회가 손을 대지 않고 타협에 동의한다는 확약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논의라도 해보지만 어떤 타협에도 여야의 이해관계에 의해 바뀌는 국회를 뒤에 두고 하는 사회적 합의는 무의미 합니다. 대통령이 만들고 싶어 하는 탄력근로제에 합의하기 위한 위원회는 더 더욱 안 됩니다. 

촛불과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개선하고 개혁해야 할 주제를 자유롭게 다루지도 못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대통령의 공약파기 장이며 국민과의 약속을 깨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위원회입니다. 탄력근로제가 지금의 시대의 선결과제이면 대통령이 결단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해 당사자가 다음 행동을 할 것입니다. 노동자 목을 조르면서 노동자에게 합의를 구하는 방식은 구 노사정위원회로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이런 책임을 지지 못할 경제사회노동위원들은 그 자리에서 나오십시오. 이런 역할을 해주고 다음은 보장받을지 모르지만 수천만 피해 노동자에게는 적이 됩니다.

또 다시 지난날 노사정위원회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민주노총 2대 위원장 이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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