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검열에 부실한 성평등

등록 2018.12.07 16:35수정 2018.12.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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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난 예의랑은 담을 쌓은 미천한 평민이라 여기서 순순히 나가줄 생각은 전혀 없소,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얌전히 옷이나 벗으시오."
(중략)
"그 때, 처음 제대로 그의 얼굴을 봤다. (중략) 태양처럼 눈부신 금발에 칼날처럼 차가운 잿빛 눈으로 점심식사 외엔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카오 페이지 웹툰 「빛과 그림자」_3,4화 中 전 일라이, 후 에드나의 대사)

윌리엄 자작 저택의 하녀인 에드나는 자작의 딸 애나를 대신하여 평민출신 귀족인 전쟁영웅 일라이와 결혼을 하기 위해 떠나고, 그날 밤 일라이는 에드나와 성관계를 맺으려 하며 위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짓임이 탄로 나자 처음에 관계를 거부했던 에드나는 '살기 위해' 그에게 맞선다. 관계 후 다음 날 그녀는 비로소 일라이의 외모를 제대로 보게 되고 얼굴을 붉히며 위 대사를 말한다.

장면 속에서 남성은 여성의 팔을 잡고 협박하듯이 '옷이나 벗으'라며 관계를 요구하고 이런 그의 태도에 여성은 처음엔 거부감을 나타내다가 마지막엔 그의 외모를 보고 오히려 설레어 한다. 이는 엄연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의 폭력적 태도임에도 마지막엔 로맨스 장면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여성의 수동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전형적인 '박력 있는 남자'와 '여리고 착한 여자'의 콜라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전체이용가이며 접근성이 높은 네이버 웹툰은 어떨까? 네이버 웹툰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찾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요리GO」에서 새 학기, 새로운 부원을 맞이하기 위해 동아리를 홍보하는 동아리 회장은 모두 남성이며 여성은 주로 부회장을 맡고, 「랜덤채팅의 그녀!」에서는 수련회를 떠난 학생들이 그곳 조교들의 외모를 잣대로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실제로 성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담거나 외모지상주의를 조성하는 웹툰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젠더 이슈로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는 요즘, 더욱 엄격히 규제해야 할 대중 미디어에서 아직도 이와 같은 문제 요소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웹툰의 유해성을 판단하고 규제하는 단체와 제도는 무엇일까?

2012년 방통위는 한국만화가협회와 '웹툰 자율규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만화가들의 의견을 존중해 웹툰의 자율적인 규제를 가능토록 했다. 이후 2017년 11월 교육, 상담, 법률 그리고 의료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웹툰자율규제위원회'가 출범하였고, 2018년 현재 네이버, 다음,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를 포함한 11개의 플랫폼사들이 위원회와 협약을 맺어 그들의 규제 하에 웹툰을 운영하고 있다. 즉, '자기 검열'을 통해 만화가의 창작의 자유를 존중한 규제 자율화의 모습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웹툰 규제 자율화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까지 웹툰은 그야말로 승승장구를 하며 전체 만화 시장을 이끄는 핵심 콘텐츠로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고 소관 법령도 부재한 상황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6년 발표한 <웹툰 내용 규제 체계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산업에 대한 진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고, 웹툰 관련 심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웹툰 플랫폼의 세제혜택을 위한 인증 및 등록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웹툰'이라는 단일 콘텐츠가 아닌 온라인 사이트에 유통되는 '정보'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 진흥이 아닌 규제와 관리는 타 부처 소관 법령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웹툰 자율규제는 유해 웹툰에 대한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객관성 결여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유해성을 기준 짓는 명확한 규정, 즉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규제 기준 마련이 선행되어야 하며 산발적으로 흩어진 웹툰 규제 관련 법령을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다. 통일된 웹툰 심의 기준 설정으로 자율규제의 법제화를 만든다면 이후 제도적 지원을 통해 자율규제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수립이 가능할 것이다. (2016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인 「웹툰 내용 규제 체계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 중 <웹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일원화 방안>을 요약한 내용임.)

그중에서도 연령등급 기준의 세분화는 웹툰 자율규제 기준의 구체화 방안으로 활용가능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5년에 발표한 <디지털 만화 심의제도 개선방안 연구>에서는 만화책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연령등급기준에 의거하여 웹툰을 '전연령'과 '청소년이용불가'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지만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이는 플랫폼 및 작가에게 내용에 대한 간접적인 규제로 프로그램 제작이 위축되는 손해를 끼칠 수 있으며, 독자에게는 오히려 금지 프로그램의 시청을 유도해 일명 '금단의 열매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위 연구보고서에서 제시한 것처럼 작가 스스로 연령등급을 매길 수 있는 자가 진단표를 마련하여 '전체 연령가', '12세 이상 이용가', '15세 이상 이용가', '18세 이상 이용가'로 구분하는 방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커다란 지표가 될 것이다.

웹툰의 유해성을 판별하는 데에 위와 같은 법적 제도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 요구되는 것이 웹툰을 소비하는 독자들과 대중들의 문제의식 제고이다. 특히나 다양한 분야의 젠더 이슈가 화두가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웹툰의 지나친 선정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미디어운동본부와 한국양성평등진흥원의 경우 현재 웹툰 속 성차별적 요소 관련 모니터링 진행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꾸준히 문제 제기를 가하는 여러 단체의 공공적 활동을 지향해야 하며 이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사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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