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근무했던 내가 퇴직금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

당 해산으로 중앙선관위 퇴직금 지급 거부... 4년간 법정투쟁 패소보다 놀라운 건 단 세줄의 판결 이유

등록 2018.12.11 12:22수정 2018.12.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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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위해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통합진보당 사건은 과거사일까?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사법적폐로 재조명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과거사 정리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이다.

나는 통합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소속 상임연구위원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해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청하면서 내가 쓴 연구보고서나, 블로그 글, 기사를 증거로 제출했다.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에 비해 아무 힘이 없는 나는 그때부터 종북적인 폭력혁명론자로 낙인이 찍혔다. 내가 쓴 글의 배경에 대해 변명해야 했고, 헌법재판소에 불려가 두 시간 넘게 증언도 해야 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나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편에 있다고 생각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여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 국민의 심판보다 먼저 온 사법 살인>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나는 통합진보당의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개인출판사를 만들어 지적재산권을 포기하고 책 파일을 국회도서관에 기증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퇴직금은 청산의무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통합진보당의 잔여재산 처리를 담당하였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퇴직금 지급을 거부한 점이었다. 담당자는 "퇴직금은 해산되는 정당의 청산의무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보수언론은 통합진보당을 악마화하고 "저런 집단에게는 단 한 푼의 세금도 쓸 수 없으니 모든 재산을 몰수하라"는 분위기였다. 

나와 동료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담당자를 면담하고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더라도 퇴직금의 법적 근거를 남기기 위해 공증사무소에 가서 퇴직금에 대한 공증을 받았다. 나는 그 이후 세 차례에걸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민원을 넣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퇴직금은 법적으로 지급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때부터 긴 법률투쟁이 시작되었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 진보정책연구원의 임대보증금에 대해 가압류와 본압류를 하였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반환받은 임대보증금에서 퇴직금을 상환하기를 거부하였다. 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채권압류처분 취소 청구", "채권추심처분 취소 청구" 등 두 번의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는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퇴직금 상당의 부당이득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소송뿐이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박근혜 정부 아래서 사법부가 제대로 판단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뀐 다음 소멸시호가 경과하기 전에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소위 '촛불정권'이 들어선 후 통합진보당 해산 3주년이 되는 즈음인 2017년 12월쯤 "퇴직금 상당의 부당이득을 돌려달라"는 행정소송을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두 달 정도가 지난 후 민사사건이라며 서울지방법원으로 사건을 이송했다. 

1년 만에 1심판결이 나왔지만...

이제 퇴직금사건은 민사소액사건으로 전환되어 단독판사에게 배당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송된 후 석 달이 되도록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법원에 독촉을 하였고 5월부터 재판이 열렸다. 사실 행정심판을 거친 사건이라서 관련 증거는 모두 제출되어 법리 논쟁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가 측은 아무런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국가 측 변호사는 첫 번째 재판에 나와 사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면서 사실상 재판을 지연시켰다. 두 번째 재판에서 국가 측 변호사는 재판 당일 날 답변서를 제출하였다. 당연히 나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재판장도 황당한지 국가 측 변호사의 불성실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측 변호사는 행정심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장한 내용을 그 후 두 차례 재판 과정에서 반복했다. 드디어 11월 15일로 판결기일이 잡혔다. 이 재판의 쟁점은 '정당 해산 당시 당직자의 퇴직금청구권과 국가의 정당보조금반환청구권 중 어느 것이 우선하냐?'의 문제였다. 국가가 정당의 보조금을 환수할 때는 세금을 강제 징수하는 체납처분에 따르는 점, 세금을 징수할 때 퇴직금이 세금보다 우선한다는 점, 정당해산은 민법상 청산절차에 따르므로 청산법인의 임금채무는 청산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가는 당연히 나에게 퇴직금 상당액을 돌려주어야 했다.

이런 판례가 전무하기 때문에 내가 재판에 질 경우 재판부가 제시할 판결 이유가 정말 궁금하였다. 내가 놀라운 것은 재판에 진 것보다 판결이유이다. 판결 이유는 아래와 같이 단 세 줄이었다. 밑에 소액심판은 판결 이유를 생략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정치자금법상 보조금 사용 용도의 제한 규정, 위반시 제재 조치 규정, 해산시 반환 조치 규정 등을 종합하건대 퇴직금청구권이 국고보조금반환청구권에 우선한다고 할 수 없다"
 

판결문의 판결 이유를 캡쳐한 화면 판결문은 딱 3 줄이다. 소액사건은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으므로 이 자체가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사건의 비중에 비해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김장민

 
나는 단독판사의 심정을 이해한다.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이런 재판을 맡는다는 것이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판결문을 "항소하시라"라는 친절한 안내문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항소장을 전자소송으로 제출하면서 '과연 통합진보당 사건이 이 정권에서 끝났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본다. 

공교롭게도 지난 11월 <한겨레>가 보도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했던 이인복 전 대법관은 해산한 통합진보당 잔여재산 가압류 사건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와 중앙선관위를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한 사실이 파악되기도 했다. 내 퇴직금 소송도 사법농단 사건과 연결돼 있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국회도서관에서 무료 보기
#통합진보당 해산 #퇴직금 #국고보조금 반환 #진보정책연구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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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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