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에 '한향림도자미술관' 개관...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긍지와 자부심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들이 있지만...

등록 2018.12.11 15:57수정 2018.12.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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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헤이리예술마을의 일원이 되고 14년간을 헤이리에 살아오면서 수많은 설레는 시간들을 보냈고 또한 그만큼의 절망의 시간과 맞서야 했습니다.

헤이리는 애초부터 문화와 예술로 특화된 마을을 정체성으로 정하고 마을만들기를 시작했었습니다.


"예술마을 헤이리는 격조 높고 창의적인 문화공간을 조성하여 우리 시대의 예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들의 긍지를 높이며 후세에까지 독특한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한 원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문화공동체입니다."
 

그 정체성을 지속시키기 위한 여러 장치들도 정관과 규정, 회칙과 회원준수사항 및 생활가이드들로 만들어두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엄격히 지켜나가기로 약속하면서 헤이리가 출발하였습니다.
  

겨울이 되어 헤이의 낮은 동산 수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자 헤이리가 얼마나 긴장의 땅에 위치해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헤이리의 건출물 너머 임진강이 보이고 임진강 너머에 북한의 건축물이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전방에서 문화예술로 특화된 새로운 마을을 이루고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시간이 갈 수록 더욱 크게 실감하게됩니다. 매 순간이 기쁨이도하지만 또한 그만큼의 절망이기도합니다. ⓒ 이안수

 

입주회원 주요 합의사항

1. 입주회원이 앞장서 문화예술마을의 품위를 지켜간다.
2. 비즈니스 지구 건축물 면적의 60% 이상에서 문화시설을 운영하여야 하는 원칙은 임대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3. 건축허가 당시와 달리 업종을 바꾸려는 경우에는 회원자치위원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용도변경 시에는 건축환경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
4. 비즈니스 지구에서 문화시설을 운영하지 않은 채 카페 및 식음료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하다.
5. 헤이리 고유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창조적인 음식문화를 만들어 간다.
6.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 및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획일적인 맛의 음식점은 운영하지 않는다.
7. 일회용품을 남용한다든지 반환경적 요소를 지닌 식음시설은 금지한다.(예; 테이크아웃, 편의점, 자판기 등)
8. 도로를 점유하는 노점 판매 및 필지 내에 부스를 설치해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 한다.
9. 마을내 또는 게이트 주변에서 포장마차 및 잡상인들이 영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10. 주차질서를 위하여 주민들부터 지정주차장을 이용하고 도로에 주차하지 않는다.
11. 마을미관을 저해하는 잉여건축자재는 건축물 준공 후 장기간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12. 공사용 가건물(컨테이너)은 준공 후 철거하여야 하며, 부득이 존치할 경우에는 깨끗하게 관리하여야 한다.
13. 애완견은 입주회원이나 내방객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관 리하여야 한다.
14.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방문객이나 회원들의 비판적인 글에 감정적인 댓글로 대응하는 것을 자제하고 반드시 실명으로 하여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거듭 확인시킵니다.

한국은 압축성장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부를 일구었고 대다수의 개인은 이제 일과 품위 있는 삶을 위한 균형을 도모할 만한 경제적 여유도 갖게 되었습니다.


헤이리를 매일 살아내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문화와 예술은 삶의 균형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개인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예술이 불가해한 요소에 불편한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문화와 예술은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의 요소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세금으로 지불되는 수많은 무료입장과 무료체험과 무료관람에 노출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헤이리의 각 공간은 모든 것이 개인의 부담과 책임입니다. 건축, 수집, 전시, 운영... 그 모든 것이 개인의 몫이지요.
  

'한향림현대도자미술관의 20세기의 도자예술전'의 토니프랭크스(Tony Franks) 작 Block Biding Wove, 한국현대도예의 시작전 ⓒ 이안수

 
헤이리 회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던진 각오를 했고 마침내 전례 없는 마을만들기를 20여 년이 넘게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입주자들은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얼마나 현실의 벽이 높은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돈 안 되는 일을 긍지와 자부심만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생업의 현실 앞에서는 발바닥에 박힌 대못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됩니다.

생존이 당면한 문제가 된 몇몇 갤러리들이 문을 닫고 박물관이 매물로 나오는 현실 앞에 헤이리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들을 막아내는 것이 생존만큼이나 심각한 갈등의 요인이 되고있습니다. 헤이리의 정체성 유지가 절박한 가운데 지난 10월 15일, 큰 규모의 미술관이 개관식을 가졌습니다. 한량림도자미술관입니다.
 

헤이리에 미술관으로서 최고의 자부심을 가질 만한 컬렉센을 갖춘 도자미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한향림도자미술관입니다. 이정호, 한향림의 Jay & Lim Collection이 지난 30여년간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비로소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열정과 자부심만으로는 불가능한 컬렉터의 안목과 자본, 그리고 긴 시간이 필요한 이런 미술관의 개관은 오늘날 상업화의 질타에서 자유롭지못한 헤이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입니다. ⓒ 이안수

 

짐작할 수 있다시피 한향림은 이 미술관의 관장입니다.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한 작가입니다. 부군은 사단법인헤이리의 이사장을 맡아서 예술마을의 지속가능을 위해 헌신한 이정호 한향림도자미술관의 이사장입니다.
 

"한바탕 옹기와 도자 작품들 속에서 살다보니 3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제 마지막 계획을 마무리 지어야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니 고난과 어려움에 무너지고프 때도, 작어반 하고플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오늘을 있게했습니다. 도자기라고 하면 고려시대 청자, 조선시대 백자만을 떠올리는 세대들에게 도자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해락적이며 심오한 내면을 담고 있는 지를 이 미술관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향림 관장의 회고와 결의는 큰 자본을 가진 어떤 수집가도 주목하지않은 현대도자에 대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보전, 전시, 교육될 수 있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이안수

 

이정호이사장님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 적지않은 부를 일구었습니다. 그 부를 바탕으로 1987년 'Jay & Lim Collection'를 설립하고 한국의 근대도자인 옹기와 한국과 해외의 현대도자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이정호이사장은 그 부를 1987년 'Jay & Lim Collection'를 설립하고 돈이 되지않는 다는 점에서 소외된 현대도자작품의 수집에 몰두했습니다. ⓒ 이안수

 

지난 31년간 이정호 이사장님이 일군 부는 그동안 돈이 되지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된 현대도자작품들을 수집하는데 고스란히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한향림갤러리 개관을 시작으로 2009년 한향림옹기박물관 설립, 2010년 한향림현대도자미술관 개관, 더불어 2016년에 착공했던 한향림도자미술관이 2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올 10월에 개관식을 갖게된 것입니다.

개관식은 혼잡을 피해 도예작가와 연구자들을 모신 1차와 헤이리주민과 박물관장님들을 모신 2차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관장님들이 모인 개관식에서 한향림 관장님이 갑자기 맨뒷좌석에 있던 저를 호출했습니다.

"헤이리에는 촌장이 계십니다. 이안수촌장님에게 건배사를 요청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넘겨받은 마이크를 잡고 저는 돈 얘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헤이리의 아름다운 자연을 조망할 수 있는 노을동산 기슭에 자리잡은 이 미술관의 규모를 보셨지요? 이 미술관을 짓는대는 미술품에 대한 애호와 열정과 사명감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마을에 십수년을 살면서 알았습니다. 컬렉션과 미술관 건립이라는 엄청난 비용과는 별개로 운영을 지속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큰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자리에는 이 미술관을 있게하신 또 한 분 한향림관장님의 부군이신 이정호이사장님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은 상하이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셨습니다. 오늘도 돈을 벌기위해 중국으로 가신 것이지요. 현재까지도 매일 아침 6시 비즈니스 현장으로 출근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미술관의 경영을 지속가능하도록 하기위함이지요."

축하의 자리에 이런 비통한 말이 나와 버린 사실을 축배의 잔을 들고 선창하면서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뇌리속에는 헤이리의 현재상황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절박하게 잠재된 것이지, 상업적 매력을 담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찬연한 미술관을 열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에 대한 가슴으로부터의 헌사였던 것입니다.
  

한향림도자미술관의 개관전, 향기나는 숲 속의 정원전 ⓒ 이안수

 
어제 한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헤이리에 그런 미술관을 건립하는 일이 돈이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조망간 한향림관장님을 조용히 찾아가서 등을 두드려드릴 겁니다. 고맙다고요."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한향림도자미술관 #한향림 #이정호 #헤이리 #제이앤림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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