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가족 한 달 식비가 45만원, 김치만 먹냐고요?

[최소한의 소비 8] 즐거움을 '큰 맘 먹고' 사지 마세요

등록 2018.12.11 10:02수정 2018.12.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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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식비 1만5000원. 2살, 4살 딸 둘을 키우는 4인 가족이 한 달 45만 원으로 먹고 살고 있다고 하니, 주변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가까이에서 우리 부부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멀찍이서 지켜보는 분들은 애달파 한다. 그 누구보다도 온라인 이웃들이 댓글로 안타까움과 궁금함을 전한다.


"절약 팁 잘 봤습니다. 근검 절약도 좋지만 인생 가는데 순서없으니 적당히 즐기며 사는 것도 한 번 뿐인 인생에 큰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4인 가족이 어떻게 식비가 45만 원 밖에 안 들어가지? 과일도 안 먹고 진짜 밥 하고 김치만 먹는 건가?"


[관련 기사: '봉투살림' 덕분에 빚 없이 살게 됐다]

한 편의 기사로 전하지 못 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돈 덜 쓰면 삶을 즐기기 어렵다거나, 김치만 먹는 건 아닌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당최 요즘 물가 같지 않다면서 조선시대에서 왔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될 정도니 이쯤에서 오해를 풀고 싶다.

이 모든 게 부족했던 글 때문이니, 다시 글로 부족한 부문을 메워 보련다. 하루 식비 1만5000원으로 재밌게 사는 비법을 공개한다.

신경 써서 대충 차리는 밥상 노하우


잘 해 먹고 산다는 게, 조선시대 임금님처럼 8첩 반상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테다. 검소한 정조 임금은 3첩 반상을 드셨다고 하니, 잘 차린 3첩 반상도 수라상이다.

식비를 줄인다고 하면, 맛없는 반찬만 매 끼 먹는 줄 안다. 그러나 혀를 만족시키는 건 물론이고, 최소한의 조미료, 유기농, 무항생제, 무농약, 한우, 한돈 등 좋은 재료를 구해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역시 손품 파는 게 최고다. 남이 해 주는 밥상은 편하고, 내가 해 먹는 밥상은 유익하다. 궁극적으로 차리는 노력도 적고 건강에도 유익한 밥상이 가장 좋은 거다. 하루 식비 1만5000으로도 편하게, 대충 차려서, 맛있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찜닭 재료. 11,330원 들었다. ⓒ 최다혜

 
며칠 전, 저녁에 찜닭을 해먹으려고 장을 봤다. 닭고기 7500원, 느타리버섯 2팩 950원, 팽이버섯 3봉지 980원, 쪽파 한 단 1900원. 총 1만1330원 들여 마련했다. 하루 식비 1만5000원이 채 들지 않았다.
 

매번 살 수는 없지만, 가능한 유기농 재료를 구매한다. ⓒ 최다혜

 
다음 날에는 달걀이 떨어져서 유기농 전문 가게에 들렀다. 동물복지 유정란이 10구에 4750원, 무농약 시금치는 2700원, 무농약 청양고추 2330원 국내산 콩 두부는 2700원. 총 1만3630원 들었다. 마찬가지로 하루 식비 1만5000원을 넘지 않았다.

아이들 간식을 주로 자연식으로 먹는다. 이웃에게 받은 고구마를 쪄먹거나, 우유를 조금 섞어 카스테라 빵가루에 묻힌 고구마 경단을 아이와 함께 만든다. 고구마 맛탕에 배추된장국을 곁들이기도 한다. 
 

고구마로 아이들과 누리는 자연식 ⓒ 최다혜

 
그날 그날 먹고 싶은 메뉴를 생각해서,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린다. 외식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매끼니 메인 반찬 하나를 두고, 조리하기 쉬운 메뉴로 적당히 한다.

오히려 외식을 자주 할 때, 식탁 위가 초라하다. 밖에서 먹고 오면, 해놓은 밑반찬이 없으니 밥에 계란, 김, 김치 먹는다. 그러면 또 맛이 없으니 밖에 나가 사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킨다. 악순환이다. 집밥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매 끼니 더 맛있게 먹는다. 놀랍지 않은가?

남편도, 나도 집밥에 큰 부담없다. 덕분에 열흘 내내 집밥만 먹었다. 대충차리지만 먹음직하기 때문이다. 크게 공들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집밥을 오래 할 수 있는 요령이다. 그 비법은 이러하다.

① 밑반찬 여러 개 보다, 메인 요리 한 두개

식탁을 꽉 채우는 날은 드물다. 밑반찬 여러 개 놓고 먹는 것보다, 메인 요리 한두 개만 놓고 먹는다. 요리하는 사람도 부담 없고, 먹는 사람도 불만 없다. 

② 맛있는 국 하나, 풍성한 반찬 하나

메인 요리 두 개는 주로 '육수에 재료를 모두 때려 붓고 끓이는 국' + '국이 끓는 동안 볶거나 굽는 요리'다. 30분 정도 부지런히 조리대에서 칼질하고, 냄비에 붓고, 나무주걱으로 젓다보면 한 끼 밥상 뚝딱이다.
 

밑반찬 여러 개 보다, 메인 요리 한 두 개. ⓒ 최다혜

  
③ 레시피에 반항하기

레시피에 나와 있는 식재료를 모두 쓰지 않는다. 그러면 추가로 장 볼 필요도 없으니 식비 절약에도 꽤 좋은 방법이다. 가령, 카레를 만들려면 '돼지고기, 감자, 양파, 호박, 당근' 정도는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모든 재료를 안 쓴다. 냉장고를 슥 둘러본다. 그 중 카레 향과 잘 어울릴 듯한 재료 몇 개를 꺼낸다. 닭고기, 양파, 파만 넣어 닭고기 카레를 해먹었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지 않을 때 또 한 가지 장점은 적은 재료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닭고기 2팩으로 5일치 식탁을 차렸다. 닭고기바지락칼국수, 닭곰탕, 닭라면, 찜닭, 닭고기카레. 서른 한 살에 창의력이 막 솟으니 젊어지는 기분까지 든다.

어떤가. 걱정하는 것처럼 하루 식비 1만5000원이라 해도 김치만 먹지 않는다. 건강하고 맛있게, 잘 해 먹고 산다. 
 

닭과 바지락을 이용한 요리. 찜닭, 바지락닭칼국수, 바지락된장국 ⓒ 최다혜

 
절약하는 삶은 즐거움을 '참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

너무 아끼지만 말고 적당히 즐기라는 조언을 달갑게 받는다. 우리 부부는 수행자도, 스스로를 고통에 밀어넣고 즐거움을 느끼는 유별난 사람도 아니다. 언제나 '행복의 적정선'을 지키려 노력한다. 정말 맛있는 게 먹고 싶으면 지갑을 열어 스페인 식당으로 간다. 타파스와 먹물 빠에야를 누린다. 향긋한 커피로 하루의 기운을 채우고 싶을 땐 스페셜 티 카페로 갔다. 

식비를 아낀다는 건 외식을 전혀 안 한다거나, 문명의 즐거움을 차단하는 게 아니다. 습관적 외식이나 타성에 젖은 가족 나들이를 멀리 하는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의식적으로 절약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돈으로 쉽게 삶의 즐거움을 해소하려고만 할 것이다. 돈으로 바꾸는 물건과 서비스는 편리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영화, 카페, 공연, 전시, 음악회, 박물관, 체험, 놀이동산, 동물농장. 아이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소비형 여가다. 재미를 보장받고, 콘텐츠 품질도 대체로 우수해서 꽤 만족스러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강변 산책로, 바닷가, 절, 놀이터, 도서관, 공원, 친구 초대. 돈 쓰는 일은 아니지만, 전문가의 개입 없이 가족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비소비형 여가다. 어설프지만 가족, 친구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만드는 시간은 그 자체로 자유로우며 가치롭다.

전문가가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고, 가족끼리 시간을 꾸려나가는 능력도 좋아졌다. 더욱 유능한 부모가 된 기분이다. 절약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사람 손길로 메우는 여가도 충분히 즐거움을 잘 몰랐을 것이다.

점점 소비의 역설을 깨닫는다. 덜 쓰는 삶을 살기 전, 행복해지려고 소비했다.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가능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소비는 만족을 몰랐다. 오히려 큰 맘 먹고 사지 않으니 더 행복해졌다.

물건과 서비스의 빈 자리를 사람이 메우게 됨으로써 생기는 행복이었다. 정직한 노동으로 채울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돈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행복을 사람 손길로 가장 두텁게 쌓았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돈은 편리했으므로.

간소한 삶은 빈곤하고 궁상맞은 삶이 아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늘어가니, 불안했던 미래에 자신감이 생긴다. 돈 들이지 않고 즐겁게 살고 싶어, 나름대로 여가를 자급자족 한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연말을 특별하게 보낼까 고민 중이다. 그동안 멋진 식당에서 스페셜 디너 코스로 제공하는 한 끼를 먹거나, 영화나 연극, 전시회를 보며 연말을 보냈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연말의 '의미'는 스페셜 디너 코스에도, 영화에도 없었다.

밥 먹기 전 와인잔을 부딪치며 "올 한 해도 잘 보냈다!" 하고 자축하는 5분 정도가 고작이었다. 좀 더 의미있는 연말을 보내고 싶다. 행복해지기 위해 '큰 맘 먹고' 사지 않는 연말을 계획해본다.
 

돈 주고 사는 물건과 서비스의 빈자리를 사람으로 메웠다. ⓒ 최다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최소한의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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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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