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20만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냥 가라"는 의사

열 살 된 반려견 쭈야, 아파서 간 동물병원에서 답이 아닌 질문을 받았다

등록 2018.12.15 12:16수정 2018.12.1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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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야가 한 달 전부터 이상했다. 올 들어 열 살이 된 쭈야를 만질 때마다 털이 푸석푸석해 '이제 많이 늙었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잘 놀고, 잘 먹어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앉아서 목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번쩍번쩍 올라오던 침대에도 올라오지 못하고 미끄지거나 물끄러미 날 쳐다봤다. 이상하다 여겨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데려간 날은 가족들과 눈도 못 마주칠 만큼 기력이 없었다.

온갖 검사에도 이상은 없는데 아픈 쭈야
 

아프고 난 뒤로 팔을 베거나 의지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 우민정

 
마음이 급해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온갖 검사를 했으나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늙어서 기관지와 폐, 심장 등 모든 기관이 쇠약하고, 간 수치가 높은 걸 봐 염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어디에 어떤 염증이 났는지는 더 큰 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일단 염증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주겠다고 했다. 치료식을 먹여야 한다며 비싼 사료까지 얹어 팔았다. 그렇게 나온 돈은 32만6200원.

개의 의료비가 비싸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항생제 하나 처방받기 위해 30만 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니 새삼 놀랐다. 과잉진료가 아닌가 마음이 불편했지만 별 수 없었다.

키우던 개가 아파 천만 원 가까이 썼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아니, 그렇게까지?"라고 되묻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갈 때마다 삼십만 원, 오십만 원 나온 걸 다 모아보니까 그 정도 되더라고." 강아지 의료비로 천만 원 쓰는 일이 남 일이 아니겠다고 그제야 생각했다.

그래도 희망적이었던 건 쭈야가 잘 먹고 잘 싼다는 거였다. 나는 <아픈 강아지를 위한 증상별 요리책>을 사 엄마 집에 머물며 정성스럽게 밥을 해 먹였다. 덕분에 쭈야는 점점 기력을 회복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난 쭈야의 밥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동생에게도 레시피를 알려준 후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주 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쭈야가 이제 그 밥도 안 먹어." 다시 이틀 뒤 동생이 연락했다. "병원을 가봐야 할 거 같아. 그때처럼 또 고개도 못 가누고 눈도 못 마주치네."

병원에 가기 전날 동생과 고민을 많이 했다. 병원에 다녀오면 쭈야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병원을 바꾸기로 했다. 동생은 이전 병원에서 의사가 쭈야를 제대로 만져보지 않고 검사 기록만 본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비싼 사료를 추천하고 강권하는 게 불편했다고도 했다. 동생이 알아본 병원은 맘카페에서 "과잉 진료 없는 좋은 병원"이라는 입소문이 자자했다. 저번 병원에서 삼십만 원 나왔으니까 이십만 원 정도 들겠지 생각하며 병원을 향했다.

도착한 병원은 아담했다. 엄마는 병원이 너무 작고, 장비가 없어 불안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덩달아 불안했지만 한 번쯤은 경험해볼 병원이라는 생각에 접수했다. 다른 손님이 없어 바로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쭈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밥은 잘 먹는지, 똥은 잘 싸는지, 잠은 잘 자는지 등 일상생활에 대해 물었고, 저번 병원에서의 소견도 물었다. 그 뒤 쭈야를 진찰대에 올려달라고 말한 뒤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쭈야의 등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고, 심장소리를 들었다.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굳은 곳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촉진을 5분 정도 한 뒤 의사가 입을 열었다.

"쭈야를 한 번 바닥에 놓을 테니까 저쪽에서 불러보세요."

의사가 놓자마자 쭈야가 내게 달려왔다. 집에서 비틀거리며 걷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불과 몇 분 전 차 안에서는 눈도 못 뜨던 쭈야였다. 의사는 "질병은 일관성이 있어야 해요. 장소가 바뀌거나 환경이 바뀐다고 증상이 바뀌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쭈야는 나이가 들어 전체적으로 몸은 약해졌지만 특별히 검사해야 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 수치가 높은 건 당연해요. 사료를 안 먹으니까 계속 고기를 주셨잖아요."

의사는 그 후 20분 동안 쭈야의 몸 상태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왜 구체적인 병명을 진단할 수 없는지 말해줬다. 심장 소리도 규칙적이고, 호흡도 고르고, 배에 뭉친 부분도 없다고 했다. 유일한 증상은 기운이 없는 건데 그 또한 병원에서는 잘 뛰었으니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했다.

"한 달 전쯤 처음 증상이 있었을 때 어딘가 아프긴 아팠겠죠. 그런데 아프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갖는 거예요. 하루 종일 안아주고 맛있는 것도 주고요."

의사는 강아지는 정신과가 없어 이런 진단이 조심스럽지만 이런 사례가 꽤 많다고 했다. 이번 여름에 강아지가 쓰러져 38도가 웃도는 날씨에 땀을 흘리며 달려온 보호자가 있었는데 병원에 온 강아지는 정작 멀쩡했단다.

"물론 아프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보호자가 더 관심 가지고 맛있는 것도 주고, 걸을 수 있는 것도 안아서 옮겨주고 하니까 자기가 할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그는 많은 보호자들이 이런 문제로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대부분은 집에 자주 있지 못해 미안하거나 이전에 강아지를 잃은 아픔이 있는 보호자들이 강아지가 조금만 아파도 과잉보호를 한단다.

문제는 그러면 강아지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병도 건강해지면 오히려 관심을 잃기 때문에 의지를 내지 않다는 거다. 자기가 힘이 없거나 픽 쓰러져야만 보호자가 관심을 갖는다는 걸 학습하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답이 아닌 질문을 받았다
 

올해 2월 건강했던 쭈야 모습. ⓒ 우민정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쭈야가 창밖을 보고 싶어 해 창문을 내려줬다. 전 같으면 창틀까지 몸을 올려줬을 텐데 그냥 두니 혼자 올라가 발을 짚고 여유롭게 바람을 쐤다. 그제야 난 지금껏 쭈야를 위해 했다고 생각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한 달 내내 우리 가족은 모두 쭈야를 보낸 뒤 죄책감에 시달릴까봐 그 부채감을 덜기 위해 안달했다. 쭈야가 이번엔 정말 죽을 거라고 단념하면서 어떻게 후회 없이 보낼지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쭈야가 혼자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빼앗았다. 그 결과 정말 아픈 개가 되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아픈 곳이 없으니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료도 권하지 않았다. 좋은 것만 먹어서 고급스워진 입맛을 낮출 길은 없다면서 지금의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이도록 도왔다. 무엇보다 큰 선물은 쭈야에게 스스로 회복할 힘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었다. 집 안에 가두어 키우는 미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마지막 남은 쭈야의 일까지 빼앗고 있었다.

아픈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지인들은 말했지만, 내 속은 더 탔다. 아프면 약을 먹는다든가 해야 할 일이 명확히 보일 텐데 오히려 내가 변해야 하는 문제라니 막막하고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쭈야에게 스스로 회복할 힘이 있다는 걸 신뢰하면서도 곁을 지키고 돌볼 수 있을까. 죽을 쭈야가 아니라 살아있는 쭈야와 함께 살아가려면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처음으로 병원에서 답이 아닌 질문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병원 다녀온 후 가족들이 예전보다 조금 무심히 대하고, 스스로 하도록 독려하니 쭈야는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기운 없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료도 잘 먹고, 운동도, 산책도 잘합니다.
#강아지 #강아지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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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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