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의사들이 산동네에서 보낸 1년

[후기] 부산 의대생 연합동아리 '라포'의 마을 공동체사업

등록 2018.12.12 18:39수정 2018.12.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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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건강한 걷기 행사를 마무리 하며 찍은 사진. ⓒ 김민수

 
"의대생? 처음 보네요... 사업 보고서도 읽어 봤는데... 의대생이 마을 공동체 역량강화 사업을 하려는 이유가 뭐에요?"

지난 3월, 한창 병원에서 의과대학 실습을 돌 기간이었다. 심사를 시작하는 시간에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지만, 계단을 뛰어올라 헐떡거리는 숨을 미처 고르기도 전에 심사위원은 꽤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후우) 즐거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이라는 것이 동구 주민에게. 특히 취약계층 주민 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만들고 싶어요."

수많은 고민을 했음에도, 꽤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신기하게도 심사위원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며. 이것저것 물어본 후 다음 후보자를 불렀다.

그렇게 마을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건강이라는 주제를 끼워본, 의대생들의 첫 마을 공동체 사업이 채택되었다. 

운 좋게 1년짜리 사업을 시작하게 된 우리 부산의대생 연합 동아리 '라포'는 먼저 '동네 건강지킴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동구 알아가기'를 목표로 삼았다. 취약계층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이 고질적으로 맞닥뜨리는 아픔들을 알아가려고 했다.  

부산 동구 지역은 그 유명한 산복도로를 끼고 위로는 다닥다닥 작은 집들. 아래로는 시원시원한 중앙대로와 빌딩들이 있다. 특히 동구는 아직까지 옛 부산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거점시설이 만들어지면서 그 특유의 복작복작함이 더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고령화·취약계층의 증가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은 숨길 수 없다. 동구는 이미 초 고령화 지역으로 진입하였고, 많은 건강지표의 숫자도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높디 높은 경사가 걷기실천률을 낮추는 문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몇몇의 취약계층 주민들은 죽음조차 혼자 맞이하는 고독사로 매달 홀로 세상을 떠난다. 여름이 되면, 겨울이 되면, 의대생들의 건강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고 있는 동구쪽방 상담소는 비상이 걸린다. 이렇듯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아픔을 마냥 바라 볼 수도, 그렇다고 그냥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에 매번 맞닥뜨리게 된다.

건강도시를 참고하다

WHO에서 건강도시를 ▲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며 ▲ 시민이 삶의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때 타인과 협력할 수 있도록 지역 자원이 확장해 나가는 도시라고 정의한다.

건강도시가 갖추어야 할 필수 자격도 있다. ▲ 도시건강 발전계획이 있고 ▲ 건강불평등과 사회 발전, 지속가능함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며 ▲ 의사결정에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하고 ▲ 역량강화 훈련과 교육 및 건강관련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약계층에게는 먼 이야기다. 이들은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기 때문에 목소리 내기조차 꺼려한다. 게다가 병원에서 홀대받은 경험, 혹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 있어 의료접근성도 낮은 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민 스스로가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공론의 장에서 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준 주민들은 병원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의료수급권자의 의료 이용에 대한 고충은 어떤 것이 있는지 얘기해줬다.

이에 맞춰서 우리는 도시의 건강상황, 건강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 나의 건강에 대한 개별적 이해 및 훈련, 건강관련 활동프로그램 만들기 등과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볼 수 있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건강이 삶의 상위 목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행사를 개최해 보기도 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건강이라고 하면 질병 하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고혈압 습관 개선하기, 당뇨 습관 바꾸기 등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습관을 개선하는 단기적인 시선에서만 머무르고, 장기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강요인들(주거지역의 변화, 대기환경의 변화, 사고 위험 환경의 변화 등)을 살펴보기는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들이 주로 이야기 하는 건강 관련 관심사 3가지를 추려서 내 몸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사람들과 내 주변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하나, 건강하게 먹기(식이)
둘, 건강하게 걷기(걷기실천)
셋, 건강한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하기(정신건강)

그 결과 누군가는 외로울 수 있는 명절날, 저렴한 가격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있는 마을 공간과 경관이 있다면 걷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는 것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했다. 나의 성격이 어떤지, 내 주변의 사람들의 성격은 얼마나 다양한지, 세대 간의 성격차이는 어떻게 나뉘는지에 대해 주민들과 의대생들이 깊게 이야기 해보았다.    

함께 '건강'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에 닿지 못하시는 사람들도 많다. 쪽방 상담소에서는 이들을 '고위험 취약 사례'라고도 한다. 우리는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망에서 멀어지고 있는 주민들의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관리, 응급질환 교육과 급성 질환의 유무 확인 등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현황을 파악했다. 우리가 직접 십시일반 힘을 모아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주변 의사나 사회복지사, 구청 직원들에게 연락해 대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1년 안에 우리가 건강한 마을을 만들었을까?
 

화음은 틀리지만, 마음만은 하나가 된 의대생들. ⓒ 김민수

 
역시 1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우리가 무엇을 쌓아 올렸는지 가시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한 달에 1명씩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건강한 관계의 회복은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 이야기에서 '삶'의 이야기로 가다보니, 함께 영어 공부를 하게 되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주민과 함께 1박2일 낚시를 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찾아온 당뇨를 이겨내기 위해 당뇨식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긍정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이 연쇄적으로 많아지다 보면, 모두가 '건강지킴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취약계층 주민들이 1년 동안 수고했다며 연말을 마무리하는 합창행사에 의대생들을 초대하였다. 맨입으로 가긴 뭐해서, 우리도 합창 한곡을 답가로 불러보았다. 노래의 이름은 브라운 아이드걸스의 must have love. '함께 있었던 이유로 소중한 기억들. 좋은 날엔 언제나 네가 있기에.' 3일 밖에 연습하지 못해서 화음은 조금씩 틀리지만, 우리의 진심만은 통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1년 간의 노력은 잠시 막을 내렸다.

의대생들은 의료를 주로 대학병원에서 배운다.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1·2차병원에 파견실습을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의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병원에서는 최신으로 탑재된 지식, 능숙한 기술이 있다면 충분하고 멋진 의료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이해, 예비 환자들이 처한 환경, 지역 자원 활용법에 대한 고민 등을 피부로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라며 의사가 마을에 있기를, 지역의 돌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커뮤니티 케어를 준비해야 할 예비 의료인들은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공부를 다른 의대생, 그리고 동구 주민들과 함께 내년에도 이어가려고 한다.
#건강 #도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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