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괴로운 당신, 사표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가족, 돈, 명예, 의미...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나요?

등록 2018.12.24 20:24수정 2018.12.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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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의미적 사명감으로 '소설가'를 직업으로 골랐어요. 그런 제게 꼭 돌아오는 말은 '굶어 죽기 딱 좋다'예요. ⓒ unsplash

 
세상의 모든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어요. 진부한 말이죠. 그리고 이 사명감은 직업적 사명감을 가리킨다고 보통 생각하실 테고요. 그런데 저는 이 직업적 사명감이라는 단어가 세간에서 이상하게 쓰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어를 풀이하면 '직업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명감'이니까 내가 꾸준히 일하게 만드는 모든 동기들은 사명감이라고 불려야 할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직업적 사명감은 세 가지로 나뉘어요.

첫째. 부양적 사명감. '빚을 갚기 위해서 일해야만 한다', '아이를 먹여 살리려면 일해야만 한다', 즉, 타인을 위한 비용을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예요. 타인이란 외부적 요인이어서 제 마음대로 비용을 줄일 수 없죠.

둘째. 소유적 사명감. 내게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일을 하는 경우예요. 차나 집 같은 꽤 비싼 것들부터, 소소한 여행이 가고 싶어서 돈을 모으는 것도 포함이에요. 이건 첫 번째 경우와는 달리 어느 정도까지는 제 의지로 줄일 수 있죠.

셋째. 의미적 사명감. 이 의미는 정신적 의미를 말하는 거예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위대한 게임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비용 문제가 빠지고, 나를 위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는 동기예요.

의사의 직업적 사명이 뭐냐고 물으면,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죽기 때문에'라고 답할 거예요. 즉 직업적 사명감이라는 단어는 뜻풀이와 달리 의미적 사명감의 동의어로 쓰이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미적 사명감 때문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려고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말려요.


저는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의미적 사명감으로 '소설가'를 직업으로 골랐어요. 그런 제게 꼭 돌아오는 말은 '굶어 죽기 딱 좋다'예요. 즉, 의미적 사명감은 항간에 '직업적 사명감'이라는 단어로 숭고하게 미화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그 이유만을 가지고 직업을 정하는 사람들은 깊이 염려 받아요.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뭘 염려하는지 모르지는 않아요.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계는 분명 전 인구를 먹여 살리고 남을 만큼의 생산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결과물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란 생존의 필수조건이에요. 그렇다면 체제 자체를 바꾸자는 논의도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선 우선 자본주의를 전제로 얘기를 이어나가도록 해요.

게을러서 일하기 싫은 걸까

이번에는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까요. 아무래도 "이건 일이라 힘든데 저건 일이 아니라서 안 힘들어"의 기준은 '임금 노동이냐, 아니냐'지요. 그런데 임금 노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돈을 버는 것? 그렇지 않아요. 돈은 수단이에요. 자본주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은 임금 노동을 하는 거예요. 그럼 생존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행복해지는 거죠. 따라서 임금 노동의 목적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정리할 수 있어요.

다시 '세상의 모든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어요'라는 진부한 말로 돌아가봐요. 이 말은 이제 이렇게 풀어 쓰여야 해요. 세상의 모든 임금 노동은 꾸준히 지속되기 위해 특정한 동기를 필요로 한다. 왜 아무 동기가 아니라 특정한 동기인가? 그건 임금 노동은 특별한 게 있지 않고서는 지속되기에 힘들다는 뜻이 숨겨져 있죠. 즉 저 말은 돈 받고 일하기란 정말 힘들다는 말을 세련되게 해놓은 거예요.

따라서 당신이 일을 하기 싫은 상태에 처해 있다면, 그건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니에요. 일하기 싫어서 죽을 것 같은 상태는 그 일이 당신의 직업적 사명감과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혹시 일을 하기 싫은 당신께 누군가 '너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해 당신의 행복을 저해한다면 이 글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세요. 제가 이 글을 쓰는 두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그거니까요.

사명감은 당신의 안에 이미 모두 존재해요. 이건 게임 스탯(캐릭터의 능력치)같은 거라 사람에 따라 각 스탯의 편차가 있을 뿐이죠. 당신의 사명감은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서 고정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당신이 놓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화해요.

만약 제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아지시면 저의 부양적 사명감이 급격히 분출할 테고, 새 아이패드 출시로 높아졌던 저의 소유적 사명감은 아이패드를 사고 나면 감소하죠. 나는 일이 너무 하기 싫은데 내가 게을러서,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고민하는 분들은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을 곰곰이 분류해 보세요.

당신에게는 부양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적 요인이 있나요? 그 부양적 사명감은 당신이 그 임금 노동을 지속할 만큼 강력한가요? 당신에게는 소유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욕망이 있나요? 그 소유적 사명감은 당신이 그 임금 노동을 버틸 만큼 강력한가요? 당신에게는 의미적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무형의 욕망이 있나요? 그 의미적 사명감은 당신이 그 임금 노동을 견뎌낼 만큼 강력한가요?

참고로 부모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나쁘지 않아요. 당신의 의미적 사명감이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일 수도 있어요. '결혼해야 해서' 또는 '집을 사야 해서'도 물론 괜찮죠. 그것이 당신의 소유적 사명감을 자극한다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사명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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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미적 사명감이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일 수도 있어요. '결혼해야 해서' 또는 '집을 사야 해서'도 물론 괜찮죠. 그것이 당신의 소유적 사명감을 자극한다면. ⓒ unsplash

 
이 모든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셨다면, 당신이 하는 임금 노동은 당신의 사명감과 어울리지 않는 상태예요. 당신의 사명감과 어긋나거나, 당신이 가진 양에 비해 요구치가 현저하게 높은 일을 무리해서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당신의 행복을 저해하는 일이므로 임금 노동의 목적에 위배되니 당신이 그 일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당신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 수익을 창출할 방법은 분명 있어요. 당신은 유니크하지만 보편적인 존재예요. 대한민국의 5천만 인구 중 누군가, 정말 적어도 최소한 한 사람은 당신과 같은 직업적 사명감을 지니고, 당신과 같은 정도의 능력만 지녔지만, 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거예요.

취업이란 당신이 그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이에요. 그 사람도 당신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이게 고용주들이 말하는 '사람 뽑기 힘들다'의 정체예요. 물론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게 꼭 어떤 회사의 사장님이 아니라 창업을 함께할 사람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프리랜서여서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지 얘기를 들려줄 사람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 일하기 싫으신 분 말고도, 언젠가의 저처럼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을 가져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는 분도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 사명감에 의거해 당신이 견딜 수 있는 임금 노동과 그렇지 않은 임금 노동을 가려내세요. 그 임금 노동을 해서 당신의 행복에 필요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세요. 한 가지의 노동으로는 안 되겠다면 파트 타임도 포함해 여러 개의 직업을 고려하시면 돼요.

물론 제가 살아가기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저의 상황과 맥락이 나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알아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부의 분배가 불균등한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어서, 누군가는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도 자신이 원하는 행복에 닿을 수치를 만들 수 없어요.

대표적으로 집에 거액의 빚이 있는 경우를 들 수 있죠.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임금 노동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힘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과로사란 단어가 있어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타인이 그러지 못한 채 죽게 된다는 것. 저에게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슬픈 일이에요.

오늘 아침에 추워서 잠에서 깼어요. 요새 밤보다는 아침나절에 딱 추운 계절이더라고요. 그래서 폭신한 겉옷 하나 입고 다시 누우려다가 문득 지금 쓰는 이 내용이 생각나서 글을 쓰려고 침대에 기대앉았어요. 그러다 오늘 처음 알았어요. 지금 제 원룸은 해가 드는 창문, 2단 행거, 침대가 나란히 배치돼 있어요. 그래서 침대 헤드에 기대앉으면 행거의 1단에 걸린 옷들이 시야를 가려서 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둡다는 사실을, 이 원룸에서 2년을 살았는데 오늘 처음 알았어요.

1단에 걸린 옷들을 치워보았더니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도 겨울 아침 10시의 어스름한 햇빛이 제게까지 들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저의 직업적 사명감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며 계속 살았더라면 일에 치여서, 일어나서 잠도 덜 깬 눈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출근까지 연결하느라, 그래서 여기서 2년이 또 지나더라도 몰랐을 일이에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과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아주 사소하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 했던 것과 같은 발견을 그 사람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고 또 매달 몇만 원의 기부를 해요. 그리고 만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행복을 성취하고도 여유가 생긴다면 그 일에 동참해 주시길 바라요. 이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두 가지 이유 중 남은 이유예요.

진부한 말로 시작한 글이니 진부한 말로 끝내볼까 해요.

모두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말: 데이비드 프레인 저서 <일하지 않을 권리>로부터 '일'과 '임금 노동'에 대한 개념정의를 일부 도움받았습니다.
#20대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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