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신자유주의 망령에 포위된 한국

등록 2018.12.14 16:10수정 2018.12.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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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개통된 지 1년이 채 안 된 강릉 KTX가 승객 198명을 싣고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11일 코레일 오영식 사장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조사를 통해 사고 원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책임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도 이어졌다. 국토교통부는 강릉선 등 전국의 모든 철도 설비 안전점검을 지시했다. 이렇게 부실한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고, 조사·점검 후 철도 안전은 이전보다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고에 대한 논란은 늘 그랬듯이 잠잠해질 것이다. 의문이 남는다. 이거면 다 되는 것인가? 이렇게 우리의 안전은 보장되나?

절대 아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강릉선 KTX는 안전해질 수 있다. 철도시설과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작업이 진행된다면 KTX를 비롯한 철도 안전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연달아 발생하는 사고의 유형을 보면 한 영역에 국한된 대증적 처방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강릉선 KTX 탈선 사고를 포함한 충북 오송역 KTX 단전 사고,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이들 사고는 신자유주의의 한 축인 공공부문 축소와 공기업 민영화가 낳은 경영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된다. 그 대가로 은행과 기업의 개혁과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공공부문 축소, 민영화, 정부 재정지출 대폭 삭감 등 신자유주의식 처방을 받아야 했다. 그 결과 실업자가 발생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했으며, 사회 양극화가 심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한 국제적 지원의 대가는 비참했다. 한국은 3년 만에 빌린 자금을 모두 갚아서 비교적 빨리 1997년 외환위기에서 탈출했지만, 그 후 우리 사회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사회 곳곳에 심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남긴 상처들

앞에서 언급된 개별 사례를 풀어보면서 신자유주의식 처방이 남긴 '난제'를 확인해보자.

강릉선과 오송역 KTX 사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청이 2005년 공사화되면서 설립되었다. '신분'이 바뀐 코레일은 끊임없이 민간 자본의 먹잇감이 된다. 물론, 정책결정의 권한을 쥔 정부의 동조가 빠질 수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KTX 여승무원이 파견된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이명박 정부는 코레일 노선 일부를 민간 기업에 넘기려 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 기관 3대 분야 기능 조정 추진 방안'을 통해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정비, 유지, 보수 부문에 대한 외주를 늘리는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노동유연화'와 '경영효율화'의 이름으로 진행됐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상하 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그동안 방치된 것이 사고의 근본적 원인"라고 한 말은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철도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 고양시에 위치한 저유소는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 주체다. 대한송유관공사는 2001년 민영화됐다. 민영화된 후 시설 투자금액이 절반으로 감소한다. 안전을 위한 정비, 관리 인력과 예산이 줄어들고,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민간경영을 통해 운영을 효율화시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민영화했다고 하지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저유소 8곳 중에서 7개 저유소는 외부기관에 맡긴다고 하니 이 또한 외주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 KT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2002년 민영화된 기업이다. 민영화 후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직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인력이 줄면서 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외주 업체로 돌렸다. 정비, 복구 인력을 외부 계약직에 맡긴 결과 이번 화재처럼 사고나 났을 때 신속한 복구가 어렵게 됐다. 그동안 민간 출신 KT 경영진들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분산 배치해야 할 통신 장비를 집중시키고, 이렇게 빈 전화국 건물을 매각하거나 임대업으로 돌린 사실은 민영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이번 사고로 사망한 김용균씨가 근무한 태안화력발전소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소속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가 운영한다. 사고 후 민주노총이 낸 성명서에 따르면 김씨가 일했던 업무는 원래 정규직이 했고, 당연히 2인1조였으나, 외주화를 거치며 만성 인력 부족으로 1명이 맡게 됐다. 경영효율화를 위해 발전소 핵심업무인 운전, 정비를 외주화했고, 외주업체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 인력으로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 업무가 몇 개 조직에 흩어져있으니 안전 사고에 대한 관리, 감독은 더욱 어렵게 됐다. 2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 사고와 유사하다.

IMF 외환위기 후 한국이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논리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위험성을 높였다. 공공부문 축소와 민영화를 통한 공공성 약화의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여기서는 공공부문에 국한했지만, 민간영역까지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함께'라는 우리의 삶을 파편화시키고, 무자비한 정글과 같은 사회를 앞당기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희생과 아픔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희생에 따르는 보상이 너무나 형편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너무나 쉽게 외면하고 있다. 죽은 동료의 시신을 방치하고, 멈출 수 없는 기계를 돌봐야 하는 비극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우린 신자유주의 망령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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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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