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마케터가 알려주는 좋은 책의 비밀

[프로딴짓러의 일기] 책 애호가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습관

등록 2018.12.22 20:50수정 2018.12.2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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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요즘 아이들 꿈은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혹은 래퍼란다. 나 어릴 적에는(이 문장을 시작하자마자 이미 꼰대 느낌이 나긴 하는데) 의사나 검사, 혹은 교사 같은 직업이 아이들의 보편적인 꿈이었다.

대통령과 발명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내 꿈은 단연 구체적이고 허무맹랑했다. 그것은 바로 교보문고 사장! (보고 계십니까, 사장님?) 어릴 때부터 대기업 CEO를 꿈꿀 정도로 자본주의적인 야망이 컸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처음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방대한 양의 책을 보며 디즈니랜드에 처음 입성한 아이처럼 어지러운 황홀경에 빠졌었다. 이 책을 다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책을 많이 가졌다고 많이 읽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은 나이가 들면서 차차 알게 됐고, 책을 사랑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글을 쓰는 사람, 책을 편집하는 사람, 디자인하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서평 쓰는 사람, 읽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 추천하는 사람.   요즘 나는 그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머뭇거리며 글을 쓰기도 했다가, 편집을 하기도 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리뷰를 쓰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듯 책을 사들인다.

짝사랑하는 사람 주위를 맴돌 듯, 책과 관련된 것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집적거린다. 서점에서 북큐레이터로 일하거나, 잡지를 발행하거나, 출판워크숍을 연다. 연남동 끝자락에서 북바(Book-bar)도 한다. 손님이 별로 없는 이 바를 운영하면서 좋은 점은 책을 사들이면서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프리랜서로 다른 출판사의 책을 홍보해주는 일도 한다. 신간이 나오면 SNS에 올릴 '출간 전 연재' 시리즈를 쓰거나 책 속의 한 줄을 발췌해 예쁘게 포장하는 일이다. 출판마케터로 일하며 좋은 점은 역시 책을 사들이며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이건 일 때문이야.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런 핑계를 대며 서점에 가서 이 매대와 저 매대를 서성거린다.

나의 은근한 길티플레져(죄의식을 동반하지만, 했을 때 즐거운 일이란 의미)는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책들을 혹평하는 일이다. 표지가 마음에 안 들어, 내용이 이게 뭐야, 이게 만 부가 나갔다니 말도 안 돼. 집에서 감자 칩을 까먹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흉을 보듯 말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매장에 가서 한눈에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알아보듯이, 서점에 밥 먹듯 들락거리는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잘 찾는다. 서점에 갈 때는 그때 맞는 허기의 종류가 있다. "오늘같이 추운 날은 뜨끈한 감자탕이 당기네"라고 말하듯 "오늘은 왠지 염세적인 철학서가 고프다" 혹은 "허겁지겁 읽어나갈 만한 스릴러 소설이 필요해"라는 식이다. 하여, 나의 별거 아닌 책 고르는 노하우를 공유해본다.


'제저쇄목초'를 확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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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 unsplash

 
책을 받아들면 무게를 가늠하며 제목을 보고, 표지를 본다. 앞장을 넘겨서 저자 정보를 보고, 뒷장을 펼쳐서 어느 출판사에서 몇 쇄를 찍었는지 확인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 목차를 확인하고 서문을 읽는다. 책을 훌훌 넘기며 마음에 드는 챕터를 골라 (이왕이면 뒷부분으로) 서너 장쯤 더 읽는다. 책의 목차를 보면 그 짜임새가 보인다. 할 말이 없는데 어떻게든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 말을 비비 꼬며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책들은 목차가 부실하다.

인문학이라면 저자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지, 다른 저서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너무 전문가스러운 책이라면 입문자에게는 오히려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너무 쉽게 쓰려고 노력한 나머지 진짜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얇은 지식들을 백과사전 늘어놓듯 요약한 책들이 유행인데, 그런 책들에 분노하는 전문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책의 뒷면에서 3개월 만에 10쇄를 찍었다는 걸 확인하더라도 마냥 좋은 책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는 어렵다. 기업에서 대량으로 사들이는 자기계발서들은 출판하자마자 쉽게 중쇄를 찍는 경우도 많고, 디자인이 예쁘다거나 집에 진열하고 싶다는 이유로 책이 잘 나가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도 남들이 많이 보는 책에는 역시 손이 간다.

소설이라면 책의 앞부분부터 읽어본다. 서너 장쯤 넘겼을 때 뒤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혹은 서정성이 마음을 울린다면, 혹은 문체가 스타일에 맞는다면, 반드시 사게 된다. 인문학 중에서도 입문서는 목차를 살펴본 후에는 뒷부분을 읽는다. 아무래도 앞보다는 뒤에서 힘이 빠지기 마련인지라 뒷부분마저 마음에 든다면 앞부분이 마음에 들 확률은 더 높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한 것처럼,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행복해할 일도 더 많아지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작가가 많으면 읽을거리는 달콤한 간식처럼 끊임없이 쏟아진다. 설사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는 제힘을 다 못 냈다고 하더라도 '팬'의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응원하게 된다. 결국 책을 잘 고르기 위해서는 많이 읽는 수밖에는 없다는 고전적이고 뻔한 결론.  

책으로 세상을 배워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보다 글로 정보를 접하는 게 더 좋다. 영상보다 활자가 더 쉬워서 그런 건 아니다. 독서는 너무 능동적인 활동이라 에너지가 많이 든다. 지친 하루를 끝내면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는 것보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누르는 게 훨씬 손쉽다.

하지만 매체가 내게 은근하게 전하는 메시지와 강요에 귀를 막을 수 없다면, 하다못해 매체의 선택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다. 시간을 팔아 소비를 하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순환고리에 탑승하라는, 시민으로서 네가 생각해야 할 주제는 이것이라는 은근한 강요에 귀를 막고 싶다.

이제 내 꿈은 교보문고 사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책 주위를 끊임없이 서성거리는 사람,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 그 책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서점 #책 #추천도서 #출판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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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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