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찍어준 날짜에 목사님 기도로 결혼했습니다

[마침표 대신 물음표④]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은 미쳐야 하는 짓이다

등록 2018.12.23 14:06수정 2018.12.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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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사표를 냈습니다. 10년 만에 얻은 쉼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다시 묻는 시간을 줬습니다. 그동안 삶의 정답이라고 여겨온 것들이 수많은 생각과 기회를 막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마침표를 찍은 문장들에서 마침표를 지우고 물음표를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표 대신 물음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함께 찾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연애 중이거나 이미 부부인 연예인들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면 대부분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결혼 아니면 결별. 얼마 전에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연예인 이름을 눌러보니 결별 소식이었다. 같은 내용의 기사로 포털이 도배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한순간인 건 댓글도 마찬가지다. '연애만 해야 사랑이 오래간다, 연애와 결혼은 천지 차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댓글이 한순간에 따라붙는다. 이상한 건, 축하받아야 할 결혼 소식임에도 댓글에 악담이 달린다는 점이다. 마치 결혼에 대한 부정적 편견만 가득 찬 사회 같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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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포스터 ⓒ 청어람

 
<결혼은 미친 짓이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결혼이라는 현실이 두려워 헤어지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2000년대 영화다. 남녀의 만남, 그리고 결혼에 관해 관심 두기 시작한 20대 초반에 봤던 영화이기도 하다. 결혼은 이래서 미친 짓이구나,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영화관 조명이 다시 켜지기도 전에 이미 실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는 결혼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기보다 두 남녀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 때문에 영화만으로는 '결혼은 왜 미친 짓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해서였을까. 서른세 살, 난 미친 짓을 했다. 난 어느새 영화 속 여자 주인공보다 더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을 걷고 있었다. 결혼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하니, 늘 그렇듯 해보고 나서 후회하기로 했다. 후회라는 것이 적고 많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전자의 것이 조금이라도 덜하리라 판단한 모양이다.

부처와 예수가 함께 축복한 결혼

출발은 순탄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헤어짐을 먼저 준비하게 되는 사례담을 많이 들어왔지만, 다행히 남의 얘기로만 끝났다. 무던한 성격이 순풍의 역할을 해내며 돛단 듯 순항을 이어갔다. 식장, 드레스, 메이크업, 헤어, 신혼여행 모두 큰 고민 없이 하루 이틀 만에 결정했다. 다만 때론 고민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결혼식 당일 80년대 머리 스타일로 치장된 서로를 보고, 우린 손잡고 근처 미용실로 뛰었다.

핑계를 대자면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가에서 결혼 얘기가 나온 이후 두 달 후에 식을 치른 우리다. 결혼 날짜를 받기 위해 찾아간 스님에게 엄마가 받은 날이 두 달 후였다. 스님이 찍어준 날짜에 거행된 우리 결혼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시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기도로 시작됐다. 우린 그렇게 부처와 예수그리스도의 축복 속에 결혼했다.


꽤 행복했다. 함께 눈을 감고 뜨는 일도 신기했고, 함께 출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퇴근길에 서로 조금씩은 기다려야 했지만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소소한 일상이 참 행복했다.

문제는 불행도 소소한 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내 삶에 다른 사람을 끼워 넣으면서 삶의 중심을 잃어갔다. 난 조금씩 결혼이 미친 짓이라는 그 영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 생략된 결혼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출근 시간마다 늑장을 부리는 남편, 빚이라도 받으러 온 사람처럼 화장실 문을 수십 번 두드리는 나. 시간이 갈수록 토끼 같은 나와 거북이 같은 그는 매일 서로에게 상처를 냈다.

세상엔 끝이 없는 행복이나 끝이 없는 불행은 없다고 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 자체가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내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불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상처도 점차 아물어갔다. 남편이 먼저 씻고 내가 나중에 씻으며 준비 시간을 맞추는 게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면서 '내'가 아닌 '우리'가 사는 법을 배워갔다.

나는 결혼 예찬론자가 아니다. 축하는 못 해줄망정 악담을 퍼붓는 댓글에 반항하는 1인일 뿐이다. 결혼 예찬론자는 아니지만 결혼의 장점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행복과 불행, 반복의 굴레 속에 분명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결혼을 '1+1=11'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없는 상대의 것을 배우고 얻는 것이란 의미다. 나 역시 결혼 이후 남편의 격려로 대학원을 다니고, 글쓰기도 도전했다. 내 정의대로라면 서로에게 동기를 주며 성장하는 우리는 혼자 서 있을 때보다 앞으로도 열 배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고사성어다. 미쳐야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미칠 듯이 힘들 때 깨달음도 크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hobag555)
#결혼 #마침표 대신 물음표 #결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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