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함박눈이 펑펑, 도쿄 골목엔 꽃이 활짝

[도쿄 옥탑방 일기9화] 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

등록 2018.12.21 14:22수정 2018.12.21 14:2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일본 주택가의 한 가정집 앞에 화분들이 놓여져있다. ⓒ 김경년

  
a

일본 주택가의 한 가정집 앞에 화분들이 놓여져있다. 오른쪽에 신사 입구가 보인다. ⓒ 김경년

 


도쿄가 한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이유

"오늘 아침 함박눈이 펑펑. 너무 춥다."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서울에서 이런 카톡 메시지가 와있다. 12월 중순이니 서울에 눈이 오는 것도 당연하지.

그런데 도쿄는? 겨울이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서울처럼 매섭지는 않다. 인터넷으로 보는 서울 뉴스에는 11월이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두꺼운 겨울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긴 12월이 되어도 얇은 점퍼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겨우 보름 전에 겨울점퍼를 꺼내입었다.

서울은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넘어가기도 하던데, 그럴 때도 도쿄는 거의 영상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며칠 전 도쿄 바로 옆 치바현에 여행갔을 때 치바의 공무원 한 사람(물론 일본인)은 영하 10도의 추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며 서울의 맹추위를 신기해 했다.


그러니 눈은커녕 싸라기도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작년에 눈을 봤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몇 년간 못 봤다고 하니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구동성으로 눈이 오더라도 1월 하순이 돼야 온다고 한다 .

지도에서 보면 비슷한 위도에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리 따뜻한가 봤더니 서울은 대략 위도 37도, 도쿄는 부산과 비슷한 35도다. 오래 전 부산에 살 때도 눈을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도쿄가 따뜻한 이유가 이제 이해가 간다.    
 
a

일본의 한 철공소 앞에 놓인 화분 진열대. 봄이 되면 이곳에도 화사한 꽃이 필 것이다. ⓒ 김경년

  
a

일본의 한 술집 앞에 화분들이 놓여져 있다. ⓒ 김경년

 
a

일본의 가정집 주차장 입구가 화분으로 장식돼 있다. ⓒ 김경년

  
집집마다 너도나도 화초 가꾸기 경쟁

그래서인가. 도쿄의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아직도 꽃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연분홍색 애기동백. 그 외에도 빨강, 노랑, 파랑, 이런 저런 색깔의 이름 모를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있다.

아무래도 날씨가 따뜻하니까 꽃이 많이 남아있는 거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길모퉁이 공간에 심겨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정에서 문 앞에 내놓은 화분들이다. 겨울이라서 꽃이 죽어있는 화분도 많이 있지만 제법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도 많다. 이 많은 꽃들이 봄에 모두 활짝 피면 골목이 얼마나 예쁠까.

화분이 놓여 있는 형태도 다양하다. 문 앞에 일렬로 나란히 놓아둔 것도 있지만, 에어컨 실외기나 창문, 주차장을 이용해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마치 전시작품을 보는 듯하다.

집집마다 화초를 키워서 경쟁적으로 밖에 내놓는다. 웬만한 꽃집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화초를 가꿔놓은 집이 부지기수다. 마당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비좁은 집에서 살다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취미가 화초 가꾸기 아닌가 싶다.

주택뿐 아니라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식당, 술집, 전파상, 심지어 철공소 앞에도 많은 화분이 늘어서 있다. 워낙 집 앞을 잘 관리해 놓으니 구청에서 따로 거리 조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 싶다.

그러면서도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집 앞에 딱 붙여놓는다. 덕분에 그 많은 화분이 나와 있어도 골목길은 여전히 깨끗하고 질서가 있다. 행인들에게 예쁜 꽃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주면서도 "절대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는 듯하다.
 
a

한겨울의 도쿄 주택가 뒷골목 풍경. ⓒ 김경년

 
a

한겨울의 도쿄 주택가 뒷골목 풍경. 집집마다 화분을 내놨지만 통행에 전혀 불편을 주지 않는다. ⓒ 김경년


화초 가꾸기로 이웃과 소통하는 일본인들

길을 지나가다 화분이 예쁜 집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집에 들어가던 할머니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 (멋쩍게 웃으며) 화분들이 참 예뻐서요.
"에구. 고마워라. 근데 다른 집에 비하면 몇 개 안되어서 창피해요."
- 직접 가꾸시나봐요.
"남편이 이제 없으니까 내가 해야지 어쩌겠수."
- 꽃은 어디서 구해오나요.
"전부터 키우던 것도 있고, 옆집하고 서로 가지꺾기를 하거나 모종을 얻어오기도 해요. 요 작은 건 슈퍼에 가서 사온 거야."

개인사 노출을 싫어해 이웃과의 교류가 별로 없는 일본인들이지만 화분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이렇게 가지꺾기도 하고 모종을 얻어오는 등 이웃과 소통하기도 하나보다.

일본에서 5년 넘게 살던 회사 주재원 친구 부부가 귀국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옆집 노인 부부에게 인사하러 갔다가 정원의 꽃과 화분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당신 부부가 이 집에 처음 들어오는 이웃이야"라더란다.

깔끔하게 살지만 참 외롭게도 사는 일본인들이다. 집 앞도 가꾸고 동네 풍경도 아름답게 하고 외로움도 달래주고, 꽃이 참 열일 한다.
 
a

일본의 가정집 문 앞과 베란다에 같은 종류의 꽃들이 장식돼 있다. ⓒ 김경년

  
a

일본 주택가의 2층짜리 가정집 앞에 화분들이 놓여져있다. ⓒ 김경년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화분 #꽃 #도쿄옥탑방일기 #일본골목길 #도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